윤스테이 나온 ‘허니랩'... "바로 제가 만들었습니다"
‘윤스테이’ 주방에서 쓴 다회용 포장팩
밀랍·송진·코코넛오일로 만든 친환경 제품
지난 4월 종영한 tvN 예능 프로그램 ‘윤스테이’는 전남 구례에서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에게 숙박과 음식을 제공하는 한옥 체험 리얼리티였다. 손님들에게 제공한 편의용품은 일회용품이 아니라 ‘제로웨이스트(zero waste)’ 제품이었다. 제로 웨이스트는 생활 속에서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환경 운동이다. 윤스테이는 에코백부터 고체로 된 샴푸와 보디워시, 나무 머리빗, 대나무 칫솔 등을 준비했다.
지난 4월 종영한 tvN ‘윤스테이’에선 허니랩이 만든 허니포켓과 친환경 제품을 쓰는 볼 수 있다. /tvN '윤스테이 캡처' |
윤스테이를 연출한 김세희 PD는 스타뉴스와 인터뷰에서 "나와 메인 작가 둘 다 제로웨이스트 운동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자연과 한옥이 어우러진 윤스테이에서 친환경적인 소재의 소품들은 제법 잘 어울릴 것 같았다"고 했다. 주방에서는 비닐랩이나 지퍼백 대신 친환경 포장팩 ‘허니랩’을 사용하는 정유미, 박서준을 볼 수 있다. 허니랩은 일회용 비닐 랩, 지퍼백과 달리 여러 번 쓸 수 있다. 허니랩은 PPL 없이 윤스테이가 ‘내돈내산’한 제품이다. 허니랩 김동은(30) 대표를 만나 제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tvN '윤스테이'에서 일회용 지퍼백 대신 여러 번 쓸 수 있는 허니랩의 허니포켓을 쓰고 있는 박서준. /tvN '윤스테이'캡처 |
세상에 없던 허니랩의 탄생
2018년 창업한 ‘허니랩’(bit.ly/2STSR9I)은 일회용 비닐 랩이나 지퍼백 대신 쓸 수 있는 ‘친환경 포장팩’을 만든다. 재료는 밀랍(꿀벌이 벌집을 만들기 위해 꿀벌이 분비하는 물질)과 송진, 코코넛오일, 오가닉 천이다. 밀랍과 송진, 코코넛오일을 녹여 오가닉 천에 도포해 만든다. 허니랩은 쓰다가 더러워지면 물로 세척해 여러 번 쓸 수 있다. 최대 6개월까지 사용할 수 있다. 자연에서 유래한 재료로만 만들어 버린 뒤에도 생분해돼 자연으로 돌아간다. 여러 번 쓰다 사용감이 떨어질 땐 별도 판매하는 고체형 허니왁스를 녹여 다시 도포하면 새것처럼 쓸 수 있다.
오가닉 천과 밀랍, 송진, 코코넛 오일로 만든 허니랩. 일회용 랩 대신 음식을 포장, 밀봉할 수 있다. /허니랩 제공 |
가로 25㎝·세로 ㎝ 허니랩 3장이 1만3000원, 지퍼백 형태의 가로 17㎝·높이 20㎝ 허니포켓이 1만7000원이다. 2000원대에 파는 지퍼백(가로 17㎝·높이 20㎝, 20매)과 3900~5000원대인 일회용 비닐 랩(가로 25㎝·길이 50m)과 비교하면 비싸다. 대신 여러 번 쓸 수 있고 일회용 비닐 사용을 줄여 가성비, 가심비는 뛰어나다. 현재 허니랩은 회사와 동명인 허니랩을 다양한 사이즈로 만들고 간편하게 쓸 수 있는 종이로 만든 롤 형태의 허니랩롤, 지퍼백 형태의 허니포켓 등을 판매한다.
일회용 지퍼백 대신 여러 번 쓸 수 있는 '허니 포켓'. /허니랩 제공 |
“고등학교 시절부터 일회용 비닐봉투 쓰는 걸 싫어했어요. 편리해서 쓴 비닐봉투가 결국 쓰레기가 되더라고요. 메고 있던 가방에 물건을 넣거나 물건을 살 때 아예 가방을 챙겨가기 시작했어요. 대학생이 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주방에서 일회용 비닐 랩이 정말 많이 쓰이고 쉽게 버려지는 걸 봤어요. 그때부터 일회용 비닐 봉투를 줄이는 방법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허니랩을 공동 창업한 송권일(왼쪽부터)· 김동은·김찬희 대표. /허니랩 제공 |
김 대표에게 대학 동기이자 허니랩을 함께 창업한 송권일(30) 대표가 ‘밀랍’이란 아이디어를 꺼냈다. 송 대표는 취업보다 ‘양봉’에 관심이 많은 친구였다. 유기농 천에 밀랍을 바르면 방수가 돼 비닐 랩을 대체할 수 있다. 대학 조별 과제를 하다 만난 김찬희(28) 대표도 힘을 보탰다. ‘허니랩’은 밀랍에 송진, 코코넛 오일을 더했다. 송진은 밀랍의 방수 기능을 유지하면서 접착력을 높인다. 코코넛 오일은 천을 부드럽게 만든다. 과일이나 채소 등 식재료를 부드럽게 감싸거나 눌러 포장·밀봉할 수 있다. 2017년 시제품 생산에 들어간 ‘허니랩’을 2018년 8월 팔기 시작했다. 세 청년이 함께 창업한 회사는 제품과 이름이 같다.
“처음에는 소비자 반응이 물음표 그 자체였어요.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제품이니까요. 밀랍·송진·코코넛오일 등의 소재뿐 아니라 여러 번 세척해서 쓴다는 게 생소했던 거죠.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인식이 조금씩 바뀌었어요. 일회용 비닐 랩이나 지퍼백을 쓰면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줄일 수 있고 미세 플라스틱, 환경호르몬 걱정까지 덜 수 있습니다. 비닐과 달리 공기가 통해서 야채나 과일 등을 더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고요. 주고객층이 살림하는 20~40대 주부들인데 재구매하는 경우가 많아요. 주방에서 직접 써보고 만족한다는 뜻이겠지요. 입소문을 타고 온라인몰(bit.ly/2STSR9I)에서도 인기입니다.”
허니랩은 물로 세척해 여러 번 쓸 수 있다. /허니랩 제공 |
어쩌다 창업, 이제는 환경 교육까지
김동은 대표의 원래 목표는 창업이 아니었다. 인천대에서 일본어를 전공하던 김 대표는 경제학과로 전과했다. 졸업 후 막연하게 남들처럼 취업을 할 거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환경 문제에 관심은 있었지만 환경 운동을 하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러나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환경 문제와 자원 분배에 대한 고민을 본격적으로 하게 됐다. 수업과 창업동아리 활동에서 비슷한 고민과 아이디어를 가진 두 친구를 만나 27살에 창업의 길에 들어섰다.
“아무런 경험 없이 시작한 창업이라 어려움이 많았어요. 몸으로 부딪혀야 하는 일이 많았어요. 돈도 한푼 없었고요. 창업 초기 인천대 창업지원단과 창업사관학교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중소기업벤처진흥공단 지원사업도 큰 힘이 됐죠. 가장 힘들었던 건 제품 출시를 위해 식약처 허가를 받는 거였어요. 허니랩이라는 제품이 국내에서 처음 만들어지는 거라 절차도 심사 과정도 까다로웠거든요. 행정관청을 설득하고 식품위생법 기준에 맞추기 위해 8개월 가까운 시간이 걸렸습니다.”
학생들에게 환경 교육을 하고 있는 김동은 대표. /허니랩 제공 |
우여곡절 끝에 허니랩이 세상에 나온 뒤 김 대표는 환경 교육을 시작했다. 제품을 알리기 위한 일종의 마케팅이었다. 소비자에게 생소한 제품을 백번 설명하는 것보다 허니랩을 왜 만들게 됐는지 설명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판단이었다. 허니랩이 있는 인천에는 수도권매립지가 있다. 불필요한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것 그에 부합하는 제품, 버려지는 쓰레기에 대한 관심이 큰 지역이다. 덕분에 환경 교육에 대한 수요도 많다. 어쩌다 시작한 창업, 환경 교육이지만 김 대표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허니랩을 앞으로 전문적인 환경 교육 기업으로도 키울 생각이다.
“창업 초기 예상했던 것보다는 시장 반응이 좋았어요. 출시 1년 만에 매출이 2배로 늘었습니다. 사실 허니랩은 한번 사면 오래 쓰는 제품이라 큰 매출을 기대할 수 없고 그걸 기대하고 만든 회사나 제품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제품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볼 땐 오히려 더 고맙습니다. 내가 사회에 조금은 기여하고 있구나 뿌듯하기도 하고요. 우리 가치에 동의하는 분들을 위해 앞으로 더 다양한 제품을 만들 계획입니다. 주방뿐 아니라 많은 곳에서 쓸 수 있게요”
김 대표는 이날 대중교통으로 인터뷰 장소에 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환경을 보호하는 한 방법이라고 했다. 허니랩을 쓰지 않더라도 생활 속에서 환경을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실천법도 귀띔했다. 배달 음식을 시키지 않고 그릇을 가져가 담아오거나, 우산에 달린 커버를 묶어두고 비닐 대신 사용하는 것,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 쓰기 등이다. 조금 불편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쉬운 일이었다.
글 CCBB 키코에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