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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장경진

'키다리 아저씨'

2시간을 붙드는 이지숙 VS 2인극이라는 동전의 양면

'키다리 아저씨'

2시간을 붙드는 이지숙, LIKE 

한 점의 티끌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맑은 이지숙의 목소리는 <여신님이 보고 계셔>의 여신님부터 <왕세자 실종사건>의 자숙, <빨래>의 나영, <안녕 유에프오>의 유경에 이르기까지 순수를 간직한 여성들을 만들어낸다. 이들에게서 상처를 툭툭 털고 일어나는 씩씩함과 함께 어딘지 모르게 슬픈 기운도 동시에 받는다면, 그것은 잘 웃고 잘 우는 이지숙의 얼굴이 주는 힘 때문이기도 하다. 배우가 가진 외형적 조건이 캐릭터로 연결되는 것은 일반적이지만, 이지숙만큼 자신의 강점을 알고 그것을 연기에 투영하는 배우는 많지 않다. <키다리 아저씨>의 제루샤는 그동안의 이지숙이 여러 작품을 통해 벼려왔던 자신의 노하우를 집약시킨 버전에 가깝다. 원작소설이 섬세하게 포착해낸 여성의 미묘한 감정은 기타, 첼로, 건반으로만 이루어진 어쿠스틱 사운드와 누구나 한 번쯤 느껴 봤을 법한 한국어 가사에 이지숙의 목소리가 얹히며 강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극 초반에 배치된 원맨쇼에 가까운 장면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약 5세가량의 아이와 끝을 날리는 듯한 창법으로 냉정한 고아원 원장을 표현해내며 관객의 상상력을 돕는다. 덕분에 관객은 “제루샤를 많이 좋아하게 될 것 같아요”라는 다소 오글거리는 대사에도, “나 혼자 뒤쳐졌어요”라는 슬픔에도 쉽게 공감한다. 시침 떼고 편지의 분위기에 맞춰 목소리의 톤을 달리하거나 인물의 성장만큼 단단해지는 그의 발성은 음악만으로도 캐릭터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모범 답안처럼도 보인다. 그야말로 지금 이지숙의 모든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

'키다리 아저씨'

2인극이라는 동전의 양면, DISLIKE 

이지숙의 다양한 발성과 목소리, 표정과 뉘앙스를 살리는 연기와 소설에서는 완벽하게 지워졌던 키다리 아저씨의 감정 변화를 포착해낸 뮤지컬은 2시간 동안 관객의 시선을 붙든다. 그러나 2인극과 서간문이라는 형식상 <키다리 아저씨>가 갖는 한계는 명확하다. 제루샤가 다양한 경험을 하며 한 명의 독립적인 여성으로 성장하는 학교와 록 윌로우 농장, 맨해튼 등은 편지에서 묘사되는 것 이상의 구체성을 띌 수 없어 간단한 텍스트나 영상, 대사만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 원세트 역시 2인극에는 효과적이고 제루샤와 제르비스의 공간을 분리함으로써 두 사람의 만남을 극적으로 그려내지만, 동선의 제약은 작품을 단조롭게 만든다. 그래서 <키다리 아저씨>는 손 떼 묻은 커다란 상자와 가방, 책, 편지 등의 아날로그한 소품들과 음악이 만들어내는 풍성한 감성, 배우의 역량으로 빈틈을 메운다. 때문에 배우가 짊어진 짐은 많을 수밖에 없고, 배우의 컨디션에 따라 변차가 큰 극이 될 위험도 존재한다. <키다리 아저씨>는 어차피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면, 구조적 한계를 인정하고 2인극이 가진 장점에 최대한 몰두하는 것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연출의 과감함은 모든 것을 잡으려 애쓰다 가장 중요하게 말해야 하는 것을 놓치고 마는 많은 작품보다 영리하다. 주인공이 웃을 때 함께 웃고 울 때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그 단순한 명제의 증명이 <키다리 아저씨>에 있다.

 

사진제공 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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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진
소개글
웹매거진 아이즈 공연 담당 기자. 눈치 보는 글만큼은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오늘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