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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을 유기한 오후 생을 감각하게 한 극장

영화평론가 유운성의 1995년 신림동 미림극장

생활을 유기한 오후 생을 감각하게 한
1990년대, 멀티플렉스를 아직 상상하지 못한 때에 도심 곳곳에는 단관극장과 동시상영관이 있었다. 하숙촌을 낀 신림동 녹두거리에도 주머니 가벼운 대학생들을 위한 동시상영관이 몇 있었는데, 미림극장도 그중 하나였다. 습한 평일 오후, 아스팔트의 나른한 열기를 뒤로하고 지하 극장을 찾은 어떤 이들은 그곳에서 영화로 생을 감각하는 법을 익히곤 했다.

기억은 내 머리에 깃드는 일을 점점 가소롭게 여기는 것 같다. 그가 늘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몇 년 전부터 서서히 나와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니까 1995년 초여름 어느 오후,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신림동의 미림극장에 간 적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오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 다행히도 소설가 김경욱이 <미림아트시네마>에서 그곳의 풍경을 미리 묘사해둔 바 있어 그걸 지침으로 삼아 슬쩍 기억이란 놈을 붙잡아본다. “신림 사거리에서 관악산 방면으로 들어오다 보면 시흥 쪽으로 나가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그 분기점 귀퉁이에 있는 건물 지하에 미림극장이 있었다. 미림극장은 두 편의 영화를 동시 상영하는 허름한 재개봉관이었다.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주말이면 그는 미림극장에 갔다. 그곳에서 그는 간혹 아는 얼굴들을 발견하곤 했다.”

“세상의 경쟁으로부터 한 발짝 비켜선” 극장

미림극장에 드나들기 시작한 것은 기숙사를 나와 신림동에 하숙집을 얻은 1993년부터였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주말’보다는 다들 무슨 일인가에 바쁜 평일 오후에 그곳을 찾곤 했다. 영화가 끝나고 지상으로 통하는 계단을 올라 극장 입구를 나섰을 때 여전히 환하게 내리쬐는 햇빛 아래 홀로 있고 싶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영화가 자신을 지켜보는 이들에게 요구하는 생활의 유기(遺棄), 그 버림을 감수한 자들에게만 약간의 죄책감과 더불어 선사하는 생의 감각을 만끽하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평일 오후의 미림극장,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가면 표도 팔고 영사기사 노릇도 하는 아저씨가 친구로 보이는 아저씨 두서넛과 로비의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런데 정말 소파가 있기는 했던가? 탁자는 있었던가?) 한 아저씨가 매표원 겸 영사기사에게 묻는다. “오늘 상영하는 영화는 뭐야?” 그러자 매표원 겸 영사기사는 벽에 걸린 포스터를 슬쩍 훑어보고는 답한다. “응, <고공침투>네.” 상영작 제목을 물은 아저씨는 재차 묻는다. “뭐? <007 II>라고?” 나는 그날 정말 <고공침투>가 상영되었는지 어떤지 알지 못한다. (또한 이 대화가 내가 직접 들은 것인지 나처럼 가끔 미림극장을 찾던 친구에게서 전해 들은 것인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김경욱이 묘사한 대로 “느슨한 분위기, 무엇보다 세상의 경쟁으로부터 한 발짝 비켜선 듯한 영락의 기미”로 가득한 곳이긴 했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히 기억하는데, 무슨 프로그램이 상영되건 상관없이 그곳의 분위기에 그저 몸을 적시기위해 미림극장을 찾은 적은 없다.

어딘가에서 이미 본 영화들 가운데 생활의 유기를 거쳐서만 생의 감각에 가 닿게 만들 것처럼 느껴지는 영화가 상영될 때, 오직 그런 때에만 나는 미림극장을 찾았다. 여느 동시상영관과 마찬가지로 미림극장 프로그램 또한 대체로 액션영화나 에로영화로 꾸려졌지만 다소 이례적인 영화들이 상영되는 경우도 없지는 않았다. 소문으로만 듣던 이런저런 예술영화들이 비디오테크에서 상영되거나 하나둘씩 뒤늦게나마 극장에서 개봉되곤 했던 때라, 그런 영화들이 상영되는 장소에 앉아 있으면 스크린을 향해 종교적 정념을 투사하거나 마비된 듯한 자세로 엄숙한 경배의 제식에 입회 중인 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1986년 작품이지만 이런저런 영화잡지를 통해 한껏 소문이 부풀려진 끝에 1994년에야 개봉된 레오스 카락스의 <나쁜 피>도 그런 영화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제목부터가 ‘오염’의 모티프를 강조하고 있는 이 영화를 그처럼 불온함이 ‘멸균된’ 환경에서 보는 건 온당치 않은 일처럼 여겨졌다. 미림극장은 이런 영화를 위해 마련된 작의(作意) 없는 아트갤러리나 다름없었다.

1995년, 불온함을 먹고 영화가 자란 시간

미림극장 로비를 지나 상영관으로 들어서면 한 편의 영화가 상영 중이다. 그것이 어떤 영화였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동시상영관에서 으레 상영되곤 하는 영화들은 정작 그 공간의 음습함 자체를 버텨내지 못했다. 보는 이에게 생활의 유기를 요구하기도 전에 스스로를 유기해버리는 영화들, 이런 영화들은 그저 우리를 생활로 돌려보낼 뿐이다. 이제는 기억하지 못하는 영화가 끝나고 비로소 <나쁜 피>의 상영이 시작된다. 다섯이 채 안 되는 관객이 앉아, 나 또한 거기에 섞여, (누군가의 앞선 위반을 빌미로) 눈치껏 담배를 피워가며, 앞 좌석에 발을 올리거나 비스듬히 옆으로 기댄 채, 짐짓 무심한 표정으로 스크린을 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는 생활을 유기한 자들이 토해낸 불온함을 양식으로 삼아 스크린 밖으로 조금씩 팽창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우리를 극장 밖 환한 대기 속으로 토해낼 때까지, 팽창하고 또 팽창한다. 뒤돌아보면 미림극장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꼬박 20년 전 초여름의 어느 오후가 내 뒤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 오산이었다. 방금 전에 나왔지만 벌써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게나예나 다를 바 없는 한 영화관을 빠져나와 두 시간 내리 참았던 담배를 피워 무노라면, 그 도취의 순간이 아득하고도 가깝게 떠오르곤 하는 것이다.

글 유운성 / 그림 조성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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