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영화 보는 주말극장 ‘옥인상영관’
순수한 즐거움으로 움직이는 동네 극장
2013년 옥인동의 2층 주택을 개조해 조용히 문을 연 동네 극장 ‘옥인상영관’은 관객을 만날 기회가 없던 단편영화·비주류 영상이 주로 상영되는 곳이다. 다섯 명의 운영진이 ‘재미있는 걸 해보자’며 시작한 공간이 3년째 소소한 관객들과 영화를 나눌 수 있는 까닭은 ‘최선의 느슨함’을 지키는 데 있다.
‘마음 맞는 친구들과 공유하는 아지트’는 누구나 가지는 ‘로망’ 중 하나다. 어릴 적 친하게 지내던 친구 아무개 집 다락방에서 만화책을 나눠 보고 ‘누구네 집엔 무슨 게임과 장난감이 있다더라’를 심각하게 얘기하며 대통령, 뮤지션, 영화감독 등 위험한 장래 희망을 거론하던 기억이 있다면 그 공간의 따스함을 쉽게 잊지 못할 것이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좀 더 나이를 먹은 후 친구들과 모여 ‘우리 뭐할까’를 고민하다 종착지는 십중팔구 카페나 술집이 되는 것을 경험하며 종종 ‘다른 공간’에 대한 갈증을 느끼기도 한다.
‘옥인상영관’은 종로구 옥인동, 흔히 ‘서촌’으로 불리는 동네의 안쪽에 위치한 작은 비영리 상영관이다.극장 개봉작이 아닌, 상영관을 찾지 못한 영화나 실험영상 등 ‘여간해서 보기 힘든’ 영화·영상에 열려 있는 곳이다. 이곳의 운영자는 다섯 명의 친구들. 중·고등학교 때 만난 이들은 조각가, 매거진 에디터, 가구회사직원 등 각자 다른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이 이 공간을 처음 계획할 때 그랬다. ‘매일 술만 마시지 말고, 기왕 놀 것 재미있는 판을 한번 벌여보자.’ 마침 한 친구가 어릴 적 살던 집이 비어 있었고 이들은 그곳을 아지트 삼아 놀아보기로 했다. ‘모두에게 열려 있는’ 아지트로 만들어서.
관객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가 관객과 만날 수 있도록
영화는 가장 대중적인 문화예술 장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창작자의 작품을 선보이는 공간’의 문턱은 높다. 공연이나 전시를 할 수 있는 공간은 크고 작은 규모로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은 멀티플렉스를 제외하면 없다시피하다. 제작비를 투자 받아 만든 상업영화나 독립영화 외에도 영화학도를 비롯한 다양한 이들이 나름의 목적으로 영화를 만드는데, 이들이 관객과 만날 기회는 극히 드물거나 없는 것이다. 옥인동의 아지트가 옥인’상영관’이 된 이유다. “예술 작업은 다른 이들에게 노출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마련이고 영화는 더더욱 그렇죠. 관객을 상정하고 만드는 매체인데 막상 상영할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더라고요.” 미술 작업을 하는 김종우 운영자는 창작자의 어려움을 알기에, 영화 중에서도 이슈가 되거나 조명받기힘든 ‘단편영화’를 상영하기로 정했다.
물론 아무 영화나 상영할 수는 없다. 옥인상영관은 개관 시기(운영 사정상 동절기 12월~2월은 휴관하고 3월에 개관한다.) 전에 작품 및 프로그램 기획 공모를 받고 이때 들어온 영화들을 참고해 상영 프로그램을 짠다. 만든 이의 고민이 엿보이는 작품 2~4 편을 묶어 한 시간 남짓의 상영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편이다. 상영 기회를 많이 얻지 못한 독립장편영화도 종종 포함된다. 개관 첫 번째 상영작 <나프탈렌>을 비롯해 <주리> <벌거숭이> 등이 개별상영됐고, 단편영화 기획전인 <옥인오겠지> <보통사람-평범할영화제>, 미술작가들의 작업 모음 <부르스가 말하길, Bruce Says>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옥인상영관에서 관객과 만났다. 작년에는 지인의 소개로 러시아 단편영화제(<이놈스키 저놈스키-러시아 단편영화제>)도 진행했다. 직접 감독들로부터 상영 허가를 얻고 자막을 번역·제작해 상영했는데, 해외 상영이 처음인 러시아 감독 측의 걱정과는 달리 ‘누구나 비슷한 생각을 하고 사는구나’ 싶을 정도로 보편적인 고민이 들어 있는 작품이었다고. 들인 품에 비해 많은 사람이 보지 못한 게 아쉬워 한 번 더 상영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작품들이다.
‘재미’의 지속을 위한 느슨한 전략
입장료 5000원, 토~일요일 운영, 첫 상영 오후 1시~마지막 상영 오후 6시. 옥인상영관이 운영되는 기본 틀이다. 임차료 걱정에서 자유로운 덕에 관객의 입장료로 공간 운영이 어느 정도 가능하고(운영비를 제외한 금액은 상영작의 감독에게 돌아간다.), 수익보다는 ‘즐거움을 나누려는’ 목적이 컸기에 운영진 각자가 ‘즐거움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규칙을 지키려고 한다. “저희는 단지 재미있는 일을 찾아 가볍게 시작했는데 영화를 만든 분들이나 관객들께는 가벼운 곳이 아니더라고요. 그렇다보니 책임감을 느끼게 되죠.” 참여하는 영화 창작자나 관객이 아직 많은 편은 아니지만, 전날 극장에서 밤을 새워서라도 주말에 시간을 지켜 극장 문을 열고, 품을 들여 상영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옥인상영관의 다음, 그다음의 재미를 찾아가려는게 김종우 씨를 비롯한 운영진의 마음이다.
2000년대 이후 멀티플렉스의 아성이 견고해지고 비디오테이프나 DVD가 아닌 ‘파일’을 내려받아 영화를 보는 시대가 오면서, 다양한 영화를 상영하던 작은 공간은 사라지고 그런 공간을 찾던 이들은 PC앞 ‘나홀로 영화’족(族)이 되었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되지 않은 영화도 어떻게든 구할 수 있는 시대지만 그것을 공유하고 이야기하며 즐기는 사람들은 ‘공간’이 없으면 만나기 힘들다. “틈만 나면 찾아오는 관객, 영화 보러 왔다가 같이 술 마시고 가는 관객을 좋아하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영화는 관객과 만나서 좋고 관객은 다른 관객과 함께여서 재미있는 곳이 옥인상영관 운영진이 지향하는 바다. 얼마 전에는 옥인상영관에 들렀던 한 관객이 ‘이런 극장도 가능하구나’라고 아이디어를 얻곤 본가인 광주에 동네극장 ‘망월상영관’을 열었다. 시대의 그늘이 짙더라도 결코 퇴색되지 않는 꿈과 질리지 않는 즐거움은 누구에게나 존재하고, 그것을 순수하게 유지하며 삶의 동력으로 삼는 것은 가능하다. 옥인상영관은 2015년을 코미디 영화로 시작했다. 20분 이내의 단편 네 편을 묶은 <해동 후 가열>을 본 후, 극장 한 켠에 쌓인 비디오테이프를 뒤적이는 주말은 어떨까. (상영정보 www.okintheatre.com)
글 이아림 | 사진 옥인상영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