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극 약속, 어떤 의미가 있나요?
연극에 대한 새삼스러운 질문들
명동예술극장 |
1. 왜 공연시간은 평일 8시, 주말 3시/7시로 정해져 있을까요?
얼마 전까지 저녁 7시 30분 공연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주말도 낮 공연이 4시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고요. 우리나라 삶의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면서 지금의 공연 시간들로 일반화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도시영역의 확장, 주5일 근무 확산, 대중교통의 변화 등 우리의 삶을 둘러싼 일상의 문화가 변화했기 때문입니다. 일과를 마치는 시간/장소에서 공연 시작의 시간/장소까지 잇는 이동수단과 소요시간이 주 변화요인이겠지만 대중교통의 막차시간도 주요한 요인 중의 하나였습니다. 예전에 비해 평균적으로 늦어진 귀가 시간은 ‘인터미션’을 일반화하기도 했습니다. 현재의 시간대가 자리 잡기까지에는, 이러한 변화에 대응했던 공연단체의 다양한 마케팅 시도의 경험이 있었습니다. 한 예로, 예전에 일요일 낮 공연시간을 정하면서 교회 예배시간, 점심 식사시간, 이동시간 및 여유롭게 티켓팅 할 수 있는 시간을 측정하면서 기준 출발지점을 다르게 가정해서 3시가 맞네, 4시가 맞네 하고 논쟁을 벌인 적도 있습니다. 예전엔 주말 4회 공연이 일반적이었지만, 요즈음 일요일 저녁공연을 하지 않는 경우에서 주말 2회까지, 또한 수요일 낮 공연의 확산 등 변화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삶의 환경이 공연시간을 정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2. 왜 공연시간에 늦으면 입장이 안 될까요? 어떤 공연은 가능하고, 어떤 공연은 불가능한가요?
공연이 시작하면 객석과 무대 모두 암전되었다가 무대에 서서히 빛이 들어오면서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지고 어둠 속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제4의 벽을 통해 몰래 그 세상의 탄생을 지켜봅니다. 가끔 생각합니다. 정해진 시간만 되면, 대학로 100여 개 극장에 각기 다른 새로운 세상들이 생겨난다는 것은 얼마나 멋지고 환상적인 일인가요. 이렇듯 어둠으로 현실의 때를 씻고 새로운 세상을 만나야 하는데, 뒤늦게 들어오는 관객들로 소음이 난다거나 시선에 방해가 된다면 그 환상은 깨지게 되겠지요. 그것을 바라고 시간에 맞추어 입장한 관객에게는 얼마나 억울한 일이겠습니까. 또한, 출연자와 관객에게 고도의 집중이 필요한 소통이 요구될 때, 뒤늦은 관객의 입장은 공연 자체를 무산시킬 정도의 방해가 될 것입니다. 요즈음 다수의 공연은 공연단체와 극장 스태프의 합의 하에, 공연 초반 극의 흐름상 집중이 가라앉는 시간을 정해 늦은 관객들을 입장시키고 있긴 합니다. 그런데 극적 장치들이 프로시니엄 무대에 숨겨져 있지도 않고, 공연 시작하기 전 무대와 객석의 암전도 없고, 배우들이 제4의 벽을 무시하고 관객에게 말을 걸고… 등 굳이 무대 위에 환상의 제국을 건설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어떤 공연들은 극장에서 금기시하는 여러 규칙을 무장해제 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상의 공간들-광장, 거리, 창고, 방 등-에서 펼치는 공연이거나 그 환경과 기능을 그대로 극장으로 가져온 공연 같은 경우죠. 이런 경우 관객이 거리낌 없이 입장 또는 퇴장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허용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관객의 입장에서는 공연에 집중해 주는 것이 좋겠죠.
3. 공연장면을 촬영하는 것과 녹음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떤 공연은 촬영이 가능한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작권이나 공연권을 가지고 있는 쪽에서 어디까지 열어 놓느냐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커튼콜은 괜찮다, 무대 장치는 안 된다, 뭐 그냥 다 찍어도 된다, 라든지 말이죠. 하지만 공연장이 촬영과 녹음의 장소는 아니잖아요? 무대와의 소통에 집중해주는 것이 본연의 역할이고 소통에 있어서 ‘매너’인데 말이죠. 물론 촬영과 녹음의 행동이 공연에 활용된다면 도와주는 일이 되겠지만, 일반적인 경우 커뮤니케이션의 상대인 무대 위 출연자와 이러한 행위로 방해받는 주변 관객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근무하던 극장에 비상이 걸린 적이 있었습니다. 공연예정인 해외무용 단체 공연의 본질적인 정보보다 올누드로 출연한다는 가십성 정보가 더 알려지면서, 극장 안내원들이 숨겨져 반입될 수 있는 ‘촬영장비’들을 막아내느라 진땀을 흘린 기억이 납니다. 믿고 대화하고 있던 상대방이 실은 몰래 녹취하고 촬영하고 있었다면 기분이 괜찮을까요? 극장에서는 무대와의 소통에 집중합시다!!!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
4. 공연 중에 휴대전화는 왜 반드시 꺼야 하나요? 어떤 공연은 켜두어도 된다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휴대전화의 액정불빛은 얼마나 방해가 될까요? 공연이 재미없을 때 휴대전화를 하는 것은 큰 잘못인가요?
공연은 무대와 객석 간에 일종의 대화라고 생각합니다. 대화 중 재미가 없다고 대화를 벗어나 딴청을 피운다면 상대방은 정말 불쾌할 것입니다. 재미없는 공연으로 먼저 불쾌하셨다고요? 하지만, 예정된 공연을 선택하신 관객은 암묵적으로 공연이 끝날 때까지의 공연진행에 동의하신 것으로 간주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공연은 최종적으로 평가받아야 하며 이 공연을 선택하신 분이 혼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연진행과 관계없는 개인적인 행동으로 무대 위 출연자들의 집중이 흐트러진다든지, 중요한 환경이 깨져버린다면 다른 관객에게는 회복될 수 없는 피해를 입히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핸드폰 벨소리, 진동소리, 그리고 특히 액정의 불빛은 아무리 최소화한다 해도 집중을 요구하는 어두운 정적의 공간에서는 커다란 방해요소로 작용합니다. 물론 위에서 말씀드린 일상의 공간을 상정한 열린 공연들도 있겠지만, 이러할 때도 그냥 지나가던 행인이 아니라면 극도로 자제하는 것이 매너라고 생각합니다.
5. 공연 중에 음식물을 섭취하거나 이동하는 것을 금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간혹 이를 막지 않는 공연도 있는데 왜 그런가요?
음식물은 무대와 객석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자 하는 이유도 있고 더 크게는 극장의 상태를 제대로 보존하기 위한 이유도 있습니다. 해외에서 공연관람을 하는 중에 인터미션 시간에 공식적으로 아이스크림, 물, 맥주 등의 음식물이 반입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공연이 끝나고 퇴장할 때 객석 바닥엔 적지 않은 쓰레기들이 널려져 있었습니다. 아마도 상업 공연장이라 극장 분위기와 부대 수입을 위해 감내하는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듣기로는 인터미션 때 영업을 해야 하는 유니온과의 약속이라고도 합니다. 우리는 예전에 이런 경우 극장에 벌레가 생기거나 쥐가 든다고 했습니다. 모두 상상하기 싫은 대상들이죠. 커피나 탄산음료들을 쏟아 바닥 카펫이나 좌석 시트에 묻으면 냄새가 나거나 색이 잘 지워지지도 않죠. 운영예산이 많지 않은 극장은 빠른 속도로 낡아갈 것입니다. 또 영화관처럼 부스럭대거나 씹는 소리도 늦은 관객들의 입장과 휴대전화기 액정처럼 무대와 객석의 소통에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특별히 열린 경우도 있겠지만, 그것은 소통을 더 극대화하기 위한 특별한 장치로써 활용될 때일 것입니다.
6. 관객은 공연 중에 드러나는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남들보다 더 크게 웃거나 우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클래식 콘서트에서 ‘안다 박수’라고 있습니다. 연주의 여운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다 끝났다는 걸 알고 있음을 과시하기 위해 여운을 끊고 먼저 박수 치는 경우를 말하죠. 마찬가지로 공연이 주는 느낌보다는 개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한 맥락 없는 반응은 다른 관객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습니다. 공연 진행과 상관없이 사적으로 알고 있는 출연자에 대한 기억과 무대 위 모습이 불일치할 때 터져 나오는 과시적인 웃음 같은 경우 말입니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 무대에 반응하는 객석의 표현에 ‘어떻게’라는 규칙이나 방식이 있을 수 있을까요? 표현의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도 진솔하고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통이 잘 이루어졌다면 무대와 객석이 서로에게 어울리는 표현을 기가 막히게 잘 찾아내어 발산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7. 관객은 예술가가 일방적으로 만들어놓은 공연의 규칙을 꼭 준수해야만 하나요? 이에 대한 항의나 의견을 표시할 수는 없나요?
무엇이든 일방적인 것은 긴 생명력을 갖지 못합니다. ‘공연의 규칙’이란 아마도 예술가가 일방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기보다는 그동안 시도되었던 소통의 방식과 그 방식에서 빚어졌던 여러 경험을 근거로 해서 만들어진 약속이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예술가들이 예우받기 위해 만들어진 규칙이라기보다 무대와 객석 사이에 명징하고 지속 가능한 소통의 흐름을 보장받기 위한 ‘규칙’으로 바라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공연과 관련된 여러 가지 조건들도 상황이 변하면서 바뀔 수 있습니다. 그 힘은 예술가와 관객 모두 공연을 통한 소통의 진솔한 경험이 공유되고 확산될 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의와 의견 제시를 할 수 있는 공간은 예전보다 많아졌습니다. 더군다나 관객은 공연 생산과 향유, 유통의 주체로서 그 의견이 갖는 무게는 적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연’이라는 가치를 다양하게 경험하면서 발생하는 항의와 의견 제시, 그리고 우수 사례의 공유 확산은 관객과 예술가 모두에게 공연의 가치를 지속 가능하게 재창조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사족.
개인적인 경험으로 쓴 글입니다. 제가 이야기 한 것보다도 더 중요한 기능이나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지점들을 적극적으로 개진해주시면 저에게도 큰 도움이 되고 더 중요한 자료로서 활용이 될 것입니다. 많은 의견 개진 부탁드립니다.
사진. 각 극장 제공
글. 조형준 (재)안산문화재단 공연기획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