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반도체를 선봉에 세웠다
CEO's Spirit 10. 삼성전자가 치러왔던 전쟁과 승리의 방정식
Keywords
-양회 개막: 빅브라더와 뉴페이스
-디스플레이: LCD 함락과 OLED 방어선
-스마트폰: Z 상륙작전과 OVX 개입
-반도체: 메모리 고지전과 파운드리 휴전선
-투자자와 경영자: 큰 방죽도 작은 개미구멍으로 무너진다
이번 달 4일 중국 양회가 막을 올렸다. 양회는 전국인민대표회의와 전국인민정치협상을 통칭하며 중국 정부의 국가 운영방침을 결정하고 공표하는 정치행사다. 특히 올해는 시진핑의 3연임 공식화와 함께 재계 인사의 세대교체가 눈에 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중국의 발전을 이끌었던 빅브라더 마윈 알리바바 회장, 마회텅 텐센트 회장, 리옌훙 바이두 회장가 명단에서 빠졌다. 그리고 그 자리를 장쑤신 화홍반도체 회장, 천톈스 캠브리콘 회장, 레이쥔 샤오미 회장, 허샤오펑 샤오펑 회장 등 뉴페이스가 채웠다. 미국의 강력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기술 전쟁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중국이 기술 자립을 시도하며 대한민국의 주력 산업이 위기에 빠졌다. 지금까지 치러왔던 중국과의 기술 전쟁을 복기하며 승리의 방정식을 만들어보고자 한다.
|1. 디스플레이, 기술이 아니라 대중이다.
2021년 대한민국 디스플레이 업계에 적신호가 켜졌다. BOE, CSOT 등 중국 디스플레이 기업들이 LCD 패널에서 저가 물량 공세를 퍼부으며 마침내 디스플레이 시장점유율 1위가 뒤집혔다. 당시 중국의 시장점유율은 41.5%, 대한민국의 시장점유율은 33.2%로 격차는 무려 10%에 가까웠다. 그리고 2022년 디스플레이 업계 타이틀 역시 중국이 가져갈 것으로 보인다. CRT 디스플레이 시대 이후 후지쯔, 파나소닉의 PDP와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의 LCD의 맞대결에서 대한민국 기업들이 완승을 거두고 디스플레이는 반도체 제국의 수도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중국의 산업 스파이와 정부 보조금에 의해 눈 깜짝할 사이 함락당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LCD 시장에서 철수했고 미처 탈출하지 못한 LG디스플레이는 참사를 피하지 못했다.
중국은 LCD를 넘어 디스플레이 시장 전체를 정복하려고 한다. OLED 패널에 최종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는 대한민국 디스플레이 기업들에 맞서 중국 디스플레이 기업들은 LCD 전투에서 승리했던 공식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BOE는 삼성디스플레이가 지키는 소형 OLED에 침투했다. 심지어 애플은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BOE가 아이폰에 탑재될 OLED 기술을 확보할 때까지 기다려줬다. 다행히도 BOE가 아이폰13용 수율을 맞추지 못하면서 애플은 삼성디스플레이 물량을 늘렸다. CSOT는 LG디스플레이가 지키는 대형 OLED에 침투했다. TCL이 글로벌 TV 시장의 2인자로 발돋움하며 자회사인 CSOT 역시 OLED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여전히 기술은 LG디스플레이가 앞서지만 14억이 넘는 대중을 보유한 중국 내수시장 규모는 압도적이다.
2023년 디스플레이 시장은 갈림길에 섰다. 산전수전 겪으면서 노련미를 갖춘 LCD의 끝판대장 Mini LED와 아니면 혜성처럼 등장하며 전성기를 맞은 OLED의 돌연변이 QD-OLED 또는 WOLED이 선택지다. 보통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좋은 기술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원칙이 있다면 예외도 있듯이 때로는 기술이 승리를 담보하지 못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대중은 기술 자체보다 기술이 주는 효용에 따라 선택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대중이 LCD의 충분한 성능과 저렴한 가격에 만족한다면 굳이 무리해서 OLED 기술로 움직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대한민국 디스플레이 기술과 중국 디스플레이 기술을 비교하는 것은 무기의 경쟁력을 비교하는 것에 불과하다. 어떤 무기도 무력화시키는 인해전술에 맞서려면 대중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2. 스마트폰, 기능이 아니라 경험이다.
2018년을 기점으로 스마트폰 업계에는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2018년 16%의 시장점유율로 애플(14%)을 넘어서고 삼성전자(20%)의 턱밑까지 추격했던 화웨이는 2019년 미국의 무역 제재 대상 기업으로 지정되며 붕괴되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스마트폰 기업은 그 수혜를 입지 못했다. 프리미엄 마켓에서는 애플이, 매스 마켓에서는 중국 스마트폰 기업들이 포지셔닝을 구축하며 화웨이의 고객들을 흡수했기 때문이다. 두 시장에 애매하게 발을 걸치고 있던 삼성전자는 중심을 잃었고, 두 시장 어디에도 자리를 잡지 못한 LG전자는 시장을 떠났다. 궁지에 몰린 삼성전자는 전면전을 피해 Z 상륙작전을 개시했다. 2019년 첫 번째 갤럭시Z 시리즈를 출시한 삼성전자는 2022년 폴더블폰 시장점유율 80% 이상을 차지하며 반격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
어느덧 삼성전자는 다섯 번째 갤럭시Z 시리즈 출시를 앞두고 있다. 새로운 폼팩터로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갤럭시노트 시리즈의 기능을 이식하여 시장을 선점하는 데 데 성공했다. 하지만 2022년 폴더블폰이 전체 스마트폰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1%에 불과하다. 폴더블폰 대중화가 멀게만 느껴지는 가운데 중국으로부터 미세먼지가 불어오기 시작했다. 일명 OVX라고 불리는 오포, 비보, 샤오미는 준수한 성능에 저렴한 가격의 폴더블폰을 내놓고 있다. OVX의 개입에 오히려 폴더블폰 대중화가 앞당겨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삼성전자의 몫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다. 게다가 애플의 폴더블폰 진출은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다. 여러 가지 기능을 추가하고 있지만 애플은 완전히 색다른 경험을 선사하며 스마트폰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3년 스마트폰 시장에는 냉전의 기운이 감돈다. 글로벌 매크로 불확실성으로 수요가 위축되고 전쟁의 향방을 바꿀 애플의 폴더블폰이 2024년 이후 출시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기존 바 형태의 스마트폰에서 중국 스마트폰 기업들이 같은 기능을 낮은 가격에 내놓자 다급한 마음에 가드를 내렸다가 애플에게 어퍼컷을 맞는 실수를 저질렀다. 폴더블폰이라는 새 전장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펼쳐질 것이다. 기능이라는 전투에서는 팽팽하게 맞설 것이고, 가격이라는 전투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이다. 몇 번의 전투에서 지더라도 전쟁에서 이기려면 경험이라는 전투에서 압승을 거두어야 한다. 폴더블(Foldable)은 접고 펼 수 있다는 뜻이지 접는 게 전부는 아니다. 과연 접고 펴는 스마트폰으로 어떤 즐거운 경험을 선사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3. 반도체, 기업이 아니라 연합이다.
대한민국 디스플레이와 스마트폰 업계가 중국에 맞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가운데 반도체는 상대적으로 선방 중이다. 대한민국 기업들이 지배하고 있는 메모리에 깃발을 꽂기 위해 중국 기업들이 기어오르고 있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기술로, 미국과 일본은 무역으로 끌어내리고 있다. CXMT가 3D DRAM 선점에 나섰다거나 YMTC가 232단 NAND 양산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리지만 시장 판도를 뒤집을 만한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다. 게다가 메모리 산업은 초기 투자 비용이 막대하고 소수 업체들로 과점화 되어있어 신규 진입이 어렵다. 일부 언론에서 제기하는 위기론과 별개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그동안 쌓아 올린 내공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기업들이 메모리 고지전에서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한편 메모리에 단단한 요새를 구축한 삼성전자가 다음 요충지로 삼은 파운드리에서는 공방전이 펼쳐지고 있다. 2017년 SMIC가 FinFET 최고 전문가 양몽송을 영입하며 28nm에서 단숨에 14nm로 전진하자 2020년 미국은 SMIC를 제재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군이 반도체 장비 수출을 규제하면서 10nm와 7nm 사이 어딘가 파운드리 휴전선을 그은 것이다. TSMC, 삼성전자는 7nm 이하 선단공정으로 넘어왔고 UMC, 글로벌파운드리는 10nm 이상 성숙공정에 남아있고 인텔은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한편 2022년 SMIC가 7nm에 진입하며 도발을 했지만 충분한 물량과 수율을 달성하지는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기업 간의 다자 경쟁에서 연합과 악당의 대결로 대립 구도가 변경되면서 묘한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2023년 반도체 시장에 핵폭탄이 떨어졌다. 미국은 선전포고를 하며 반도체 기업에게 동원령을 내렸다. 그러자 중국은 빅테크에서 반도체로 장수를 바꾸며 맞불작전을 펼쳤다. 미국에게 배신을 당하고 중국에는 인질을 붙잡힌 대한민국 반도체 기업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역사를 되돌아 보면 반도체 산업의 패권은 정부의 큰 결정에 따라 움직였다. 미국과 일본의 플라자 합의, 대한민국의 반도체 빅딜이 대표적이다. 따라서 기업의 손발이 묶인 지금은 정부가 움직일 때다. 혹자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기업을 돕는 것을 반칙이라고 하지만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는 경고를 받더라도 반칙으로 적의 움직임을 차단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다른 국가와 힘을 합치기 전에 내부적으로 정부와 기업이 동일한 목표를 공유하는 연합을 약속해야 한다.
대한민국 기업들은 정경유착의 폐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외로운 싸움을 치러왔다. 그 사이 중국은 대한민국이 공들여 쌓은 탑을 번번이 무너뜨렸다. 아직 중국의 반도체 기술이 삼성전자를 따라오려면 멀었다고 하지만, 디스플레이와 스마트폰 시장에서 주도권을 빼앗겼던 기억은 대한민국 산업계에 트라우마를 남겼다. 따라서 큰 방죽도 작은 개미구멍에 무너진다는 점을 명심하고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투자자는 경기와 업황이 회복되는 타이밍을 맞추고 있지만, 경영자는 문제의 본질을 고민해야 한다. 기업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방정식에는 통제 불가능한 상수와 통제 가능한 변수가 섞여있다. 장기전이 예상되는 중국과의 기술 전쟁에서 삼성전자 경영진이 변수를 하나씩 풀어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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