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튼 호텔의 성장과 혁신: Hilton 기업 분석
여러분은 글로벌 호텔 브랜드라고 하면 어떤 것이 떠오르시나요? 아마 힐튼을 떠올리시는 분도 많을 것 같은데요. 오늘은 세계 최대 고급 호텔 브랜드 중 하나인 힐튼(Hilton)의 역사와 현재에 대해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 힐튼의 배경: 위기 속에서 경험한 호텔 사업
힐튼 호텔의 창업자인 콘래드 니콜슨 힐튼(Conrad Nicholson Hilton)은 1887년 12월 25일 뉴멕시코주의 샌안토니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노르웨이계 이민자 아버지 거스 힐튼(Augustus Halvorsen Hilton)과 독일계 미국인 어머니 메리 로퍼스와일러(Mary Laufersweiler) 사이에서 유복한 유년 생활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마을에서 가장 큰 2층 집에 살았는데, 2층은 거주공간으로 사용하고 1층은 아버지의 종합 상점으로 운영되었습니다. 콘래드는 아버지를 도우며 좋은 상품을 구별하는 법, 사람들을 만나 거래하는 법 등 장사하는 방법을 차근차근 배워나갔습니다.
아버지의 사업이 성공한 덕분에 콘래드의 가족은 부자들이 모여사는 캘리포니아 항구도시 롱비치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콘래드도 별다른 걱정 없이 학교에서 학업을 이어나가고 있었는데요. 그러던 1907년 미국에 대공황이 찾아왔습니다. 아버지의 종합 상점에 쌓인 상품은 모두 빚더미로 바뀌었고, 콘래드의 가족은 원래 살던 뉴멕시코의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거스 힐튼은 포기하지 않고, 남아있는 재산인 종합 상점의 물품과 큰 집을 활용하여 위기를 헤쳐나갈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이때 시도한 것이 바로 호텔 사업인데요. 당시 경기는 좋지 않았지만 샌안토니오에는 여전히 비즈니스 차 드나드는 상인들과 일거리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1층에서 운영하던 종합 상점 간판을 호텔 간판으로 바꾸고, 아버지는 총지배인, 어머니는 셰프, 콘래드와 동생은 벨보이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호텔이라기에는 거창한 작은 숙박업소였지만, 사업은 성공적이었습니다.
힐튼 창업자 콘래드 힐튼
| 힐튼의 시작: 은행가에서 호텔 경영인으로
이후 콘래드는 많은 경험을 겪었습니다. 1912년에 뉴멕시코 주가 공식적으로 미국에 편입되자, 콘래드는 정치에 나가서 뉴멕시코 주의 공화당 최연소 주 의원으로 당선되었습니다. 이후 정쟁과 공공연한 뒷거래에 지쳐 정치에서 손을 뗀 이후에는 은행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뉴멕시코 주에 은행을 설립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세계 1차 대전이 발발하자 은행을 팔고 군에 입대하기도 했죠.
전역한 이후 콘래드는 다시 은행가가 되기 위해 텍사스로 향했습니다. 당시 텍사스에는 석유 대박을 노리던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고, 석유 사업 활동이 일어나는 곳에는 건축, 상업, 은행업 등이 따라다닌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텍사스에서 인수할 은행을 찾던 콘래드는 뜻밖의 사업 기회를 마주하게 됩니다. 잠시 묵으려고 찾아간 호텔에 손님들이 가득 차 있었던 것인데요. 마침 호텔 주인은 호텔 대신 석유 사업을 통해 성공할 기회를 찾고 싶어 하였고, 콘래드는 해당 호텔을 약 4만 달러(현재가치로 약 60만 달러)에 인수하게 됩니다.
콘래드는 호텔을 성공적으로 운영하였습니다. 객실을 늘리고 고객의 편의성을 고려할 뿐만 아니라, 비누와 성냥 같이 고객에게 지급해야 하는 물품들은 직접 구매하고 관리하였습니다. 그렇게 호텔을 인수할 때 생긴 빚을 2년 만에 다 갚은 콘래드는 이제 자신의 이름으로 호텔을 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콘래드는 텍사스주 달라스 시내에서 가장 지대가 높은 곳에 부지를 구하고, 유명한 건축회사 Lang & Witchell에 건축 디자인을 의뢰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26년, 136만 달러의 건축 비용이 들어간 최초의 힐튼 호텔 '달라스 힐튼 호텔'이 완성되었습니다.
| 힐튼의 성장: 성공과 위기의 반복
첫 힐튼 호텔이 완성된 이후, 콘래드는 운영 중인 호텔 개수를 늘려나갔습니다. 우선 1927년에는 세계 최초로 냉수가 나오고 에어컨이 설치된 호텔을 텍사스주 웨이코에 오픈했습니다. 지금은 당연하다고 생각되지만, 당시 호텔은 숙식을 제공하는 것 외에 별다른 편의시설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시도와 뛰어난 사업 수완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린 힐튼은 매년 새로운 호텔 계획을 세울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성공 못지않게 위기도 빠르게 찾아왔습니다. 1929년에 경제 대공황이 발생한 것인데요. 당시 미국의 호텔은 약 85%가 파산했고, 콘래드도 돈을 갚지 못해 일부 호텔을 빼앗겼습니다. 파산 직전까지 간 콘래드는 회복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마지막 남은 돈과 친구의 도움으로 석유 사업에 투자를 했습니다. 기적적으로 콘래드의 석유 사업은 3년 만에 크게 성공하였고, 콘래드는 융자를 갚으며 5개의 호텔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당시 호텔 산업이 회복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은 많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콘래드는 호텔 가격이 많이 떨어진 시기가 기회라고 생각하며 투자자를 모아 호텔을 하나씩 인수해갔습니다. 1935년 엘파소의 파소 델 노르테 호텔 인수를 시작으로, 롱뷰 그렉 호텔, 롱비치에 있는 브레이커스 호텔, 샌프란시스코의 패린시스 드레이크 경 호텔을 인수하였고, 1939년에는 엘버커키 힐튼 호텔을 새로 짓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힐튼은 미국 3개 주에 호텔을 소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후 힐튼은 1943년에 뉴욕의 루즈벨트 호텔을 인수하며 동부에 진출했고, 1945년에는 미국 3대 호텔로 불리며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호텔이던 시카고의 스티븐스 호텔과, VIP 인사들이 찾는 전통 있는 호텔 팔머 하우스까지 차근차근 인수했습니다. 1947년에는 매입했던 루즈벨트 호텔에 TV를 설치하며 세계 최초로 텔레비전이 있는 호텔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949년에 해외법인 힐튼 인터내셔널을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해외 진출을 시작했습니다.
힐튼의 이익 추이. 2016년부터 부동산 사업을 분할했다. (출처. Statista)
| 힐튼의 현재와 미래: 브랜드 파워가 지속될 수 있을까
최고의 글로벌 호텔 브랜드 중 하나가 된 힐튼은 현재 전 세계 122개 국가에 약 6800개의 시설과 백만 개의 방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비록 코로나로 인해 2020년 매출이 많이 하락했지만, 2019년까지 견조한 상승세를 유지해왔습니다.
힐튼의 이익 중 73%는 미국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유럽(11%)과 아시아(10%)의 비중은 크지 않은 편인데요. 힐튼은 이러한 매출 편중을 완화하기 위하여 미국 외 지역의 투자를 계속해서 확대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코로나 기간에도 타사 대비 높은 4~5%의 객실 수 성장률을 유지해 왔으며, 현재 건설 중인 시설을 포함한 객실 비중은 미국 40%, 아시아 36%, 유럽 9%, 중동 및 아프리카 9%로 다각화되어 있는 편입니다.
또한 힐튼은 아너스 로열티 프로그램을 통해 더 나은 개인화된 투숙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고 합니다. 숙박일에 따라 더 많은 혜택을 주고, 힐튼의 포인트를 아마존이나 Lyft 등과 연동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요. 힐튼은 2022년 약 1억 3천만 명이 아너스 프로그램에 가입되어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힐튼이 강조하고 있는 아너스 프로그램은 다른 일반 멤버십 프로그램과 크게 다른 것이 없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최근 들어 호텔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특색 있는 호텔이 많아지고 있는데요. 이러한 상황에서 앞으로도 힐튼의 브랜드 파워가 계속해서 유지될지는 확신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출처. 힐튼 홈페이지
오늘은 힐튼 호텔에 대해 살펴보았는데요. 과연 코로나 종식을 기회로 힐튼이 다시금 성장세를 이어나갈 수 있을지 앞으로도 계속해서 지켜봐야겠습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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