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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금융 - 마이너스 금리란? #2

Summary

- 경기 부양을 위한 완화 정책이 마이너스 금리의 시작

- 그러나 금리가 낮아지면 은행은 자본 융통을 막아 경기가 더 축소되는 부작용이 있음

- 저금리 사회가 지속될수록 좀비 기업 등이 살아남아 혁신이 가로막히게 됨

 

© iStock

 

| 마이너스 금리는 더 큰 마이너스 금리를 부른다

본래 가치를 상실해버린 채권 주식은 그렇다 쳐도 마이너스 채권은 도대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돈을 빌려준 사람이 이자도 못 받고 되레 이자를 줘야 하는 구조이니 말이다.

가격이 만 원(만기 기준)이고 금리가 +10%인 정부 채권이 있다고 하자. 채권의 현재 가격은 9,090원이다. 오늘 9,090원을 주고 미래에 만 원을 돌려받아 +10%의 수익을 내는 구조다.

반대로 채권의 가격이 만 원(만기 기준)이고 금리가 -10%라면 현재 가격은 11,100원이 된다. 오늘 11,100원을 주고 미래에 만 원을 돌려받아 -10%의 손실을 얻는다. 오늘은 최고점인 날이다.

후자의 경우 일견 말이 안되는 투자로 보이지만 무조건적인 손실은 아니다. 금리가 -10%인 시점에 들어갔는데 이후 금리가 -20%가 되면 현재 가치가 미래를 더욱 압도하기 때문이다. 금리가 기존 -10%에서 -20%이 되는 순간 채권의 현재 가치는 11,100원에서 12,500원이 된다. 마이너스 금리의 세계에선 자산의 가치는 더 큰 마이너스가 될수록 올라간다. 다르게 표현하면 마이너스 금리가 더 큰 마이너스 금리를 부르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자 소득이 투자의 기본 목적인 채권은 본연의 가치를 상실한다. 순전히 자본 이득을 위한 투자 상품(commodity)과 유사해진다.

 

저금리가 가져오는 악순환 금융 관점을 떠나 실물 경제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저금리 정책(일시적이지 않고 지속적인)은 구조적으로 경제 성장률을 낮추고 마이너스 금리의 명분을 강화 시킬 가능성이 높다.

금리가 10%인 세계에선 기업들은 최소 10% 이상의 연간 이익을 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자를 감당할 수 없다. 영업 이익이 10% 이하인 기업들은 자연스레 도태되고 사라진다.

5% 금리의 세계에서 기업은 최소 5%의 수익은 내야 하고 1%의 세계에선 1% 영업 이익이 마지노선이다. 이는 곧 금리가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금융 측면에서 허용되는 성장률 또한 같이 내려감을 시사한다.

물론 인과관계를 따지자면 성장률 하락에 금리가 동행하는 것이 좀 더 적합하다. 하락하는 성장률을 촉진시키기 위해 정부나 중앙은행이 백방으로 완화 정책을 펼치며 금리를 낮춰 가기 때문이다. 다만 저금리가 아니었으면 원래 사라졌어야 할 좀비 기업들이나 프로젝트에 호흡기가 부착돼 혁신이 가로막힌다는 비판이 있다. 고착화된 저금리는 그 자체로 저성장을 부른다. 그리고 다시 더 큰 마이너스 금리의 토대를 쌓는다.

플러스 금리는 더 큰 플러스 금리를 부르지 않는다. 반면 마이너스 금리는 그 자체로 자석 역할을 하며 더 큰 마이너스를 부른다.

 

| 마이너스 금리는 되려 긴축이 된다

마이너스 금리의 역설 경기 침체기가 오면 중앙은행은 금리를 낮춘다. 자본의 가격을 낮춰 공급을 더 쉽게 하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컨트롤하는 금리를 정책 금리라고 하는데 이는 모든 금리의 기반이 된다.

정책 금리가 모든 금리의 기반이 되는 것은 맞지만 모두를 완벽하게 컨트롤하는 것은 아니다. 만기가 길어질수록 금리 함수가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10년물 이상인 장기 금리다. 물론 이 또한 정책 금리의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만기가 길어지면 대표적인 리스크가 하나 발생하는데 바로 인플레이션이다. 인플레이션이 상승하면 금리의 실질 수익은 감소한다. 당연히 보상이 필요하다. 이로 인해 장기 금리는 인플레이션 리스크를 반영해 단기 금리 보다 높아진다(단기에서는 물가가 크게 변동할 확률이 낮다).

금리 함수가 달라 장기 금리는 정책 금리의 영향에 100% 예속되지 않는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1% 인하시켰다고 장기 금리가 1% 하락하는 그림은 쉽사리 나오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에서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 중앙은행은 정책 금리를 넘어서 장기 금리를 건드리는데 해당 방법이 바로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다. 양적 완화란 장기 채권을 매입해 인위적으로 장기 금리를 떨어트리는 행위를 뜻한다.

마이너스 금리의 시발점은 결국 경기 부양을 위한 중앙은행의 완화 정책에 있다. 경기 침체가 오면 금리를 낮추고 상황이 더 심각해지면 양적 완화를 통해 장기 금리도 낮춘다. 제로 금리에 육박한 금리는 제로의 한계를 뚫고 마이너스 세계에 도달한다.

매우 흥미롭게도 역설적으로 금리가 마이너스가 되는 순간 경기 부양이라는 초기 목적은 퇴색된다. 되려 반대 효과를 낳는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은행이 자본 융통을 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은행은 장단기 금리 차이를 기반으로 영업을 한다. 사람들은 은행에 예금을 하지만 이는 언제든지 인출할 수 있는 돈이다. 즉 단기다. 반대로 사람들은 은행으로부터 장기로 돈을 대출받기를 원한다. 즉 은행업의 기준이 되는 예금은 단기고 대출은 장기가 된다. 이러한 미스매치의 리스크를 대출 금리에 더해 장단기 금리 차이로 장사를 하는 것이 바로 은행이다.

 

은행: 1% 수준의 단기 예금 금리를 지불하고 3% 수준의 장기 대출 금리를 수취한다 ▶ +2% 차익

 

은행: 1% 수준의 단기 예금 금리를 지불하고 -1% 수준의 장기 대출 금리를 수취한다 ▶ -2% 차익

 

은행업의 구조를 보면 소비/투자 촉진을 위한 마이너스 금리가 어째서 되려 긴축을 낳는지 알 수 있다. 일차적으로 양적 완화가 지속돼 장단기 금리 차이가 좁아지면 은행 입장에선 악재다. 왜냐면 은행은 단기로 돈을 빌려 장기로 대출을 해줘야 하는데 장단기 차이가 없다면 은행이 굳이 리스크를 지고 대출을 해 줄 동기가 축소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단기 및 장기 금리가 마이너스로 빠지면 그야말로 재앙이 된다.

금리가 하락해 제로 금리를 넘어 마이너스로 갈수록 은행의 본업인 자본 융통은 감소하게 된다. 자본 융통이 감소할수록 사회에 순환되는 돈은 줄어들어 중앙은행 및 정부가 초기에 원한 소비와 투자 촉진의 목적과는 정반대 방향의 그림이 그려지게 된다. 촉진을 위한 노력이 긴축이란 과실을 맺는 것이다.

 

이상한 나라에서 정상적인 나라로 마이너스 금리가 오래 지속된 일본 은행들의 영업이익이 전 세계적으로 저조하고 민간의 소비와 투자가 크게 늘지 않는 것은 결코 서프라이즈가 아니다. 그리고 최근 유럽을 필두로 전 세계가 일본을 따라가는 추세다. Japanification이라 불리는 현상이다.

 

“경기 부양을 위해 도입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이 되려 긴축을 낳는다” – 바로 마이너스 금리의 역설이다.

 

위와 같이 마이너스 금리는 단순히 ‘더 낮은’ 금리로 볼 수 없으며 기존 금융 상식을 뒤집는다. 동시에 기존에 마이너스 금리에 기대했던 대출 증대 및 경기 활성화 같은 효과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현재 가치가 미래를 압도해 자산 가치 상승만을 야기할 뿐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마이너스 금리는 위험하다. 그리고 그 위험한 영역으로부터 각국 중앙은행들은 최대한 거리를 벌리기 위해 지금 금리 인상 노선을 밟고 있다.

이상한 나라의 금융에서 정상적인 세상의 금융으로의 회귀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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