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썬 수사 100일… 우리 사회에 남긴 그림자 세가지
-드러난 경찰 유착 비리…마약 청정국서 ‘마약 공화국’ 오명도
-카톡방 성희롱 등 낮은 韓 성 인지 감수성도 과제
왼쪽부터 빅뱅 승리, 정준영, 로이킴. [연합] |
강남의 유명클럽 ‘버닝썬’ 수사가 마무리 단계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가 수사를 시작(1월30일)한지 오는 8일로 꼭 100일이 된다. 시작은 단순 폭행사건이었지만 이번 수사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경찰과 지역 유지와의 유착은 공공연했고, 마약은 우리 사회 곳곳에 깊이 파고들었음이 확인됐으며, 연예인을 넘어 한국 남성들이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는 지에 대한 철학적 문제까지 제시했다. 경찰은 이르면 이번주 중 승리(본명 이승현)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을 끝으로 수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만연한 ‘경찰-지역’ 유착…수사는 찔끔
사건의 시작은 단순 폭행 사건이었다. 피해자 김상교씨는 클럽에서 클럽 직원들로부터 폭행을 당했는데, 신고자 본인이 오히려 강남경찰서 역삼지구대 경찰관들로부터 폭행당했다는 내용이었다. ‘경찰-클럽’ 유착의 단초였다. 이 과정에서 미성년자 출입을 무마하는 데 힘써줬던 전직 강남경찰서 소속 경찰관이 등장했다. 경찰과 지역 유착의 연결고리로 지목된 ‘강남서 경찰발전위원회’에 버닝썬의 지분을 가진 인사의 친형이 소속돼 있다는 것도 뒤늦게 확인됐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관악서와 유흥업소 사이 유착 의혹도 드러났고, ‘아는 경찰 형님’이 음주운전을 해결해줬다는 단체 대화방 대화 내용이 확인되기도 했다.
문제는 이외 경찰 유착 수사는 지지부진하다는 점이다. ‘경찰총장’으로 불렸던 윤모 총경에 대한 수사는 김영란법 적용이 최대치로 보인다. 유착 사건에 적용 가능한 핵심 혐의인 뇌물죄는 대가성을 입증해야 하는데, 현재까지 드러난 ‘공연 티켓’ 몇장과, 식사와 골프 비용만으로는 뇌물죄 적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인간적 호감으로 만남을 이어갔다”는 두 사람의 진술만 받은 채 대가성을 입증할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내지 못했다. 원경환 서울경찰청장은 “답답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서울 성동경찰서의 ‘정준영 불법촬영’ 부실수사 의혹, 서울 종로·남대문경찰서의 ‘황하나 마약 사건’ 부실수사 의혹 등은 결국 ‘법이란 큰 물고기들만 빠져나가는 촘촘한 그물’이란 비판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는 해석이다.
‘마약 오염국’ 대한민국
클럽에서 공공연히 사용된 마약과 각종 약물들은 한국 사회가 더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시켰다. 경찰에 따르면 최근 두 달여간 진행된 마약 집중단속에서 검거된 관련 사범은 1700여 명에 달한다. 검거된 이들 가운데 1차 범죄인 마약 투약·유통사범은 1677명에 이르고 이는 전년 동기 대비 70.9% 증가한 수치다. 비슷한 기간 실시한 외국인 마약사범 집중단속 결과와 비교하면 국내 마약 사범 규모는 더욱 체감된다. 1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월 25일부터 지난달 25일까지 집중단속을 벌여 검거한 외국인 마약사범은 120여명, 이중 구속은 75건이다. 외국인 마약사범 검거 건수는 내국인 사건에 비하면 10분의 1도 안 되는 규모다.
‘강간 약물’로 불리며 범죄에 악용되는 문제의 마약들이 SNS 등에서 특별한 인증 없이 쉽게 유통되고 있다는 점도 한국사회에 충격으로 다가왔다. 일명 ‘물뽕’(GHBㆍ감마하이드록시뷰티레이트)으로 불리는 최면성 마약은 무색무취인데다 체내에 흡수되더라도 배출이 빨라 검출이 쉽지 않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경각심을 갖게 된 여성들도 늘어났다. 연예인 로버트 할리와 박유천 등 유명인들이 마약 범죄 사건이 잇따라 경찰에 입건되면서 사회적 파장은 더욱 확대됐다.
성범죄 대상화된 여성
버닝썬 스캔들은 한국 남성들의 일그러진 성 인지 수준을 확인케 했다. ‘물뽕’에 취한 여성을 성폭행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을 단체 대화방에 올린 뒤 그들이 나눈 대화는 일부 나쁜 남자 연예인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착실한 청년 이미지로 각광 받았던 로이킴 역시 음란사진을 해당 단체 대화방에 올렸던 것으로 확인됐고, 이외에도 일부 기자와 언론사 대화방에서도 ‘성희롱성 발언’ 등은 차고 넘친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물뽕과 성폭행 논란이 일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업중인 강남클럽도 한국 사회의 일그러진 한 단면이다. 여성들 일부는 클럽 성범죄가 논란이 돼도 경각심을 갖지 않았다. 클럽에 입장할 수 있는 외모를 기준으로 ‘우월감’을 느끼는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해답 역시 한국사회가 풀어가야할 숙제다.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kacew@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