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머신’ KFX…22만개 부품 ‘눈 달린듯’ 한치의 오차도 없다
7000여개 구조물·550여 전자장비
빈틈없이 시제기 조립 ‘경이적’ 수준
현재 65% 공정…내년 5월 이륙
동체 이동·합체 전자동으로 수행
리벳 위치 잡고 뚫는 작업 동시에
美 록히드마틴에도 없는 첨단 장비
연말까지 누유 확인 시험동도 건설
[한국항공우주 제공] |
한국항공우주 개발센터 전경. [한국항공우주 제공] |
KAI에서 제작한 KFX 실물 모형. 48대 1로 축소한 것이다. 박해묵 기자 |
한국형전투기(KFX) 1호 시제기가 제작되고 있는 경남 사천. 10월의 가을 하늘은 청명했다. 지난 15일 이곳에서 만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관계자는 공군 제3훈련비행단과 항공기 회사 KAI가 왜 경남 사천에 있느냐는 질문에 “방문객들이 늘상 묻는 질문”이라며 “1년 내내 경남 사천 일대의 날씨가 평온해 비행하기가 가장 좋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KFX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82.5만㎡(25만평) 규모의 광활한 KAI 부지에는 최근 10년새 각종 개발센터와 시험동 등이 줄지어 들어서 주변 풍경을 급속도로 변화시키고 있었다. 기자가 KAI를 방문한 당일 마침 KFX사업 참관차 방문한 KAI 전 임원진들 사이에서는 ‘상전벽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KAI 본사로 가는 길목에 늘어선 각각의 사업체 건물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들의 항공사업 진출 내력이 담겨 있었다. 삼성, 대우, 현대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저마다 추진하던 항공사업은 KAI로 통폐합돼 KAI는 이제 대한민국 항공사업의 미래를 오롯이 홀로 어깨에 짊어지고 있다.
9조원 투입, 단군이래 최대 규모 무기개발 사업
현재 KAI가 명운을 걸고 추진 중인 KFX 사업은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무기개발사업으로 불린다. 2015년부터 2028년까지 8조8095억원을 투자해 공군의 노후 전투기 F-4, F-5를 대체하는 국산 전투기를 우리 손으로 직접 연구·개발하는 사업이다.
KFX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22만여개의 표준품(리벳·볼트·너트 등), 7000여개의 구조물, 1200여개의 배관(튜빙), 550여개의 전자장비와 기계장치, 250여개의 전기배선다발(와이어 하니스) 등을 직접 설계·제작해야 한다. 그래서 전투기는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극한의 ‘머신’이라고 불린다.
지난 2015년 12월 방위사업청과 KFX 체계개발사업 계약을 체결한 KAI는 현재까지 수십만개에 달하는 표준품, 구조물, 기계장치 등을 모두 설계하고 제작까지 완료한 상태다. 지난달 3일 드디어 이러한 부품과 장치를 모두 종합해 실제 전투기를 만드는 ‘최종 조립’에 착수했다. 현재 KFX 1호 시제기(시험제작기체) 기준으로 65%의 공정이 진행됐고, 내년 5월 완성될 예정이다.
1300 엔지니어가 7천개 구조물 조립, 65% 공정
사상 최초의 국산 전투기 개발이라는 미증유의 과제에 도전하기 위해 지난 5년여간 수많은 연구인력이 투입됐다. 경남 사천의 KAI 개발센터에는 현재 1300여명의 엔지니어들이 일하고 있다. 인근에 있는 조선업계의 극심한 불황으로 선박설계 경력 엔지니어들을 다수 채용할 수 있게 된 건 역설적으로 크나큰 행운이었다. 최근 수 년간 약 370여명의 선박 관련 엔지니어 등 800여명이 KFX 설계를 위해 KAI에 충원됐다.
KAI 관계자는 “선박 설계나 항공기 설계나 근본은 비슷하다”며 “구조설계 및 해석, 계통설계 등의 분야에서 KAI로 유입된 선박 엔지니어들의 기여가 특히 컸다”고 설명했다.
또한 KAI는 70여개의 교육과정을 개설하고 분야별 심화 교육을 실시, 채용된 경력 엔지니어들의 빠른 현장 투입을 지원했다. KAI측은 “이렇게 개발된 KFX 엔지니어들은 향후 KAI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항공 분야의 중요한 인적 자원이 될 것”이라고 자부했다.
여기는 KFX조종석, 한반도 위를 날다
KAI 개발센터에서 첫 방문지는 KFX 조종성 평가 시뮬레이터(HQS)였다. 이곳에는 KFX와 똑같은 조종석(콕핏)이 설치돼 있고, 조종석 앞에 넓게 펼쳐진 화면에는 실제 한반도 지형을 똑같이 스캔한 정보가 구현돼 KFX를 미리 조종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시연자가 KFX를 이륙시키자 화면에는 주변 지형이 나타나고, 실제 전투기 조종 환경과 똑같은 방식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비행 정보가 표시됐다. 약 10여년 전부터 자동차에도 적용되고 있는 전투기 조종석 앞의 HUD(Head-Up Display) 장비도 가동됐다. 이 장비는 조종사에게 직관적인 비행 정보를 제공, 한결 쉽고 편리한 조종 환경을 구현한다.
조종석의 다양한 전자장비들이 대부분 소프트웨어로 화면에 구현돼 현재 운영하는 전투기보다 훨씬 조종석 공간이 여유롭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전투기 조종간이 구형 전투기보다 훨씬 제어가 쉽다는 평가도 나왔다.
그 다음으로 방문한 항공전자시스템 통합시험장비실(SIL)에서는 KFX용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시스템의 성능검증 작업을 하고 있었다. 30여종의 항전장비를 장착해 그 성능을 평가하고 무장 및 세부계통 장비 20여종과 항공기·표적·외부환경 등의 모의시험을 수행하는 것이다.
록히드마틴조차 보유 못한 자동조립장치와 로봇드릴링 시스템을 적용한 공정
최종 조립 공간인 고정익동에서는 KFX 전방·중앙(날개)·후방 등 부위별 동체 제작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각 동체를 합체시키기 전 복잡한 배선 및 회로 작업을 동체별로 완료해 각 동체를 모듈화하고 최종적으로 이 3개의 동체를 합체하는 작업이다. KAI는 체계개발 기간인 오는 2026년까지 총 6대의 시제기와 지상용 구조시험체 2대를 만들 예정이다.
조립 현장에서 가장 놀라움을 자아낸 것은 전투기업계 선두주자인 미 록히드마틴사조차 보유하지 못한 자동조립장치(FASS)와 대형로봇드릴링시스템(LRDS)의 존재였다. 이 장비는 모두 국내에서 연구·개발된 것으로, 국내 전투기 제조 인프라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비다.
자동주행장치(AGV)를 갖춘 FASS는 3개의 동체를 옮기고 정렬시켜 합체시키는 역할을 전자동으로 수행한다. AGV가 움직이는 원리는 골프장 자동 카트와 같고, 위치 정렬은 동체 지지대 11개에 설치된 레이저를 이용한 것으로, 정밀공차가 ±0.001인치에 달한다.
FASS 도입으로 과거 1명이 달려들어 11일간 하던 조립작업을 2.5일만에 완료할 수 있게 됐다. 작업 효율성이 80% 가량 높아진 것이다.
LRDS는 전투기 동체 조립을 위해 필요한 리벳 작업을 위해 필요한 구멍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장소에 표시하고 뚫는 장비다. 미국에서는 구멍 위치를 표시하는 장비, 구멍을 뚫는 장비가 별도로 존재하지만, 국내에서 개발된 LRDS는 세계 최초로 2가지 기능을 하나의 장비에 통합했다.
마지막 방문지는 아이언버드(실제 전투기의 세부계통 점검용 조립체)로 각종 평가가 진행 중인 계통시험동이었다. 과거 T-50 개발 당시에는 미국 인프라에 의존했던 분야지만, 이번 KFX 개발 과정에서 국내 기술로 해외 선진국 못지않은 인프라를 완벽히 구현했다. KAI는 계통시험동 인근에 KFX 동체의 연료누수 여부를 최종 확인하는 시험동을 연말까지 건설할 계획이다.
KAI 관계자는 “KFX 개발 과정을 거치면서 국내에 전투기 제조를 위한 근본적인 인프라가 갖춰지고 있다. 현재 KAI의 전투기 제조 인프라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말했다.
경남(사천)=김수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