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한국제품 구입액만 12조… ‘떨고 있는’ ITㆍ반도체 기업
미국, 한국에 ‘화웨이 절교’ 요구땐 대다수 기업 휘청
미중 무역 갈등으로 미국이 노골적인 반(反) 화웨이 행보를 이어가자,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 정보통신(IT)ㆍ전자 업체들이 미래 전략을 짜지 못하는 등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미국이 안보를 이유로 동맹국인 한국에 화웨이와의 전면 거래 금지를 요구하면, 최악의 경우 5세대(5G) 이동통신 등 주요 IT 사업에서 이탈하는 한국 업체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사태가 장기화 되면 중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반도체 산업 역시 바닥 없는 추락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화웨이가 지난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한국 기업들이 생산한 제품을 구매한 금액은 100억달러(약 11조8,500억원)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한국이 중국에 수출한 전체 금액의 6.1%에 달하는 수치다. 화웨이와의 거래가 전면 금지될 경우 국내 ITㆍ전자 업체 대다수가 휘청일 거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미국은 화웨이를 거래 제한 기업 명단에 올려놨지만, 거래 중단 범위를 어디까지 할지, 또 화웨이와 거래하는 제 3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세컨더리 보이콧’ 등을 실행할지 여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향후 미국이 자국 안보를 이유로 더 강도 높은 제재안을 시행한다면 한국 기업이 화웨이와 아예 거래할 수 없게 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화웨이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신사업을 추진해온 LG유플러스 등 한국 기업이 입는 타격은 심각한 수준이 될 전망이다. LG유플러스는 국내 이동통신 3사 가운데 유일하게 화웨이 5G 통신 장비를 사용하고 있다. LG유플러스 측은 “5G 기지국 장비 물량을 이미 확보했기 때문에 망 구축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향후 망 추가 구축과 유지 보수 등에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 미국의 요구 등으로 망 교체 작업에 나서야 할 경우 5G 사업 경쟁력은 크게 약화할 전망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보안 문제가 명백히 드러나 화웨이 통신망을 교체해야 한다면 그 비용도 문제지만 교체 시간도 많이 걸려 LG유플러스는 5G 사업에서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유선망 구축에는 다른 통신사들도 모두 화웨이 장비를 썼기 때문에 장비 교체는 사실상 불가능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 중국 매출 비중. 그래픽=강준구 기자 |
중국 수출 물량이 많은 국내 반도체 업계도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중국 내 IT 시장이 크게 활성화 되면서 최근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은 이 시장을 장악한 메모리 반도체 최대 공급자다.
SK하이닉스의 올해 1분기 중국 매출은 3조 1,600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47%를 차지했다. 삼성전자의 중국 매출 비중도 15%에 달한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에 주요 반도체 생산공장을 운영하고 있어, 중국과의 관계 경색이 생산 차질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2016년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이슈가 불거졌을 때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 조치를 단행했다. 그 결과 주 타깃이 된 롯데는 현지에서 운영중인 100여개의 롯데마트 문을 닫고 중국 시장에서 철수해야 했다.
올해 1분기 삼성전자의 세계 지역별 매출. 그래픽=강준구 기자 |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에 안보 이슈가 더해지고, 한국이 결국 미국 편에 설 수 밖에 없을 때 문제가 심각해 진다”며 “중국이 과거 롯데에 했던 것처럼 한국 기업이 운영중인 공장 시설 등에 대해 과도한 규제 잣대를 들이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화웨이 사태가 장기화 되면 과거 사드 사태 때보다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우리 경제가 입은 피해액은 16조원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對) 중국 소재부품 수출액 120조원의 13%에 불과하다. 때문에 이 분야에 중국이 손을 대면 우리 IT 산업이 받는 타격은 천문학적 규모가 될 거란 우려가 나온다.
미국과 중국이 타협을 통해 전면전을 벌이지 않는 시나리오가 우리에겐 최선이다. 이종욱 삼성증권 연구원은 “미국이 화웨이를 거래 제한 기업에 올렸으나, 이 조치가 언제부터 시행될 지 구체적으로 확정된 것은 없다”며 “제한 조치가 시행되기 전에 미ㆍ중 무역 분쟁이 타결 되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