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자 된 느낌" 카이스트 실패연구소는 오늘도 수신거부 당한다
[김지은의 ‘삶도’ 시즌2 : 실패연대기] <22>카이스트 실패연구소 연구조교수 안혜정
‘실패전문가’로 카이스트 왔지만 ‘좌절’
시행착오 거듭 끝 올해 ‘실패주간’ 성공
안혜정 카이스트 실패연구소 연구조교수를 지난달 22일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 본원에서 만났다. 그는 실패연구소의 유일한 연구교원이다. 대전=이한호 기자 |
‘뭐라고? 실패연구소? 카이스트에서?’
2021년 5월 휴대폰으로 기사를 보던 그는 깜짝 놀라 침대에서 일어났다. “카이스트에 실패연구소를 만들겠다”는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의 발언을 보고서다. ‘실패연구소는 나만의 생각인 줄 알았는데?’ 그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그보다 3년 전인 2018년 9월 ‘시행착오연구소’란 프로젝트를 기획했던 경험 때문이다. ‘개인의 실패 경험 내러티브를 드러내고 공유해 개인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유용하게 전환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는 취지였다. 그 시행착오연구소는 문도 열어보지 못한 채 ‘폐업’했다. 기관과 단체 등에 사업계획서를 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카이스트 '실패연구소(CAFㆍCenter for Ambitious Failure)' 안혜정(40) 연구조교수가 실패연구소에 합류한 계기다. 그는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실패연구자’다. 2018년 행정안전부와 중소벤처기업부가 처음 열었던 ‘실패박람회’(현재는 ‘재도전프로젝트’로 변경)에서 ‘실패 의제 연구’를 맡았다. 실패박람회의 오픈 테이블 156개에서 오간 개인들의 실패 경험을 분석해 연구 보고서를 썼다. 이게 시작이었다. 그는 “실패 의제 연구를 한 뒤 실패라는 주제에 내 인생을 걸어볼 만하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사업자 등록을 하고 시행착오연구소라고 이름 붙인 프로젝트까지 만들어 닻을 올리려 했지만, 출항조차 해보지 못한 것이다.
시행착오 끝에 카이스트의 실패연구소에 와서 드디어 뜻을 펼쳐보나 싶었지만, 순탄치 않았다. 처음 1년은 ‘실패연구소에 들어온 내 선택이 실패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올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실패주간’도 한 번의 실패 끝에 치러진 행사였다. 학생들에게 매달 발송하는 실패연구소의 뉴스레터조차 “받는 사람이 메일을 수신 차단하였습니다”라는 ‘발송 실패’ 메시지가 돌아오기 일쑤였다. 성과로 구성원을 독려하고 자극하는 문화가 보편적이었던 카이스트에서 ‘실패로 말 걸기’는 그만큼 힘들었다.
그는 말했다. “아마 저 역시 이력서에는 적지 못한 실패의 이력 덕분에 실패연구소에 오게 됐을 거예요.” 원래 그는 ‘사회 및 문화 심리학’으로 석사(2013)와 박사(2019) 학위를 받은 심리학자다. 그런데 일로 쌓은 경력은 문화 정책이나 문화 행사 기획이 대부분이다. 광화문 광장 조성 사업 문화 영향 평가 연구, 지방자치단체의 문화마을 조성이나 관련 콘텐츠 개발 방안 연구 같은 사업에 다수 참여했다. 전주세계소리축제ㆍ제천국제음악영화제 등 국제 문화 행사 평가에도 연구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전공 분야와 그간 해온 프로젝트가 언뜻 봐선 잘 이어지지 않아 애매한 이력이죠. 처음 실패연구소에 지원할 때도 연구 이력을 주로 본다면 ‘광탈(빛의 속도로 탈락)’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실패연대기’의 섭외 연락에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옥타브가 올라간 듯했다. 올해 초에 나갔던 ‘실패연대기’의 티저부터 유심히 봐온 독자였다. 지난달 22일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 본원에서 그를 만났다.
인터뷰에선 ‘실패’라는 단어가 난무했다. 그래서 더 유쾌했던 ‘실패연구소의 실패연대기’다.
[실패①] ‘시행착오연구소’ 만들었지만 ‘실패’
안혜정 연구조교수는 국내에선 드문 ‘실패연구자’다. 2018년 ‘실패박람회’에서 실패 의제 연구를 수행했고, 지난해엔 민간기획단으로 참여했다. 대전=이한호 기자 |
-‘2018 실패박람회’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요.
“박사 과정을 밟고 있을 때 실패 의제 연구의 연구원으로 참여하게 됐어요. 시작은 우연이었던 거죠.”
-실패 의제 연구가 뭔가요.
“실패박람회 메인 행사가 오픈 테이블 156개를 설치해서 분야별, 주제별로 참여자들이 실패 경험을 나누는 거였어요. 당시 오간 대화를 기록한 녹취록을 바탕으로 질적 연구를 한 거죠.”
-실패박람회도 그렇지만 실패 의제 연구도 한국에선 드문 연구였을 것 같아요.
“전례가 거의 없었죠. 해외엔 실리콘밸리의 (실패 콘퍼런스인) ‘페일콘(FailCon)’이나, 핀란드의 ‘실패의 날’ 등이 있지만. 당시 느낀 건 참고할 만한 이론적 기반이나 도서, 전문가가 참 없다는 거였어요.”
-실패 의제 연구의 결론은 뭐였나요.
“실패와 그로 인해 느끼는 감정은 상대적이라는 것이었어요. 한국사회에선 실패담보다 성공담이 더 많이 회자되잖아요. 참여자들은 그래서 실패 경험을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었다고 말했어요. 게다가 나만의 경험인 줄 알았던 실패가 알고 보니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경험이었다는 점도 참여자들이 확인한 것 중 하나였죠. 실패를 둘러싼 사회적 관념이 제한적이었던 거예요. 실패의 경험을 공유해서 사회적 자산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도 결론 중 하나였어요.”
-실패 의제 연구를 하고 나서 느낀 게 있나요.
“실패라는 주제에 내 시간을 걸어볼 만하겠다는 거요. 제 전공(사회 및 문화 심리학)은 결국 개인의 경험을 통해 사회 구조나 제도의 문제를 들여다보는 일이니까요. 실패를 놓고 사회에 유용한 프로젝트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행정안전부와 중소벤처기업부가 주최한 ‘2018 실패박람회’에서 학생들이 실패의 정의를 묻는 보드에 생각을 적고 있다. 코리아타임스 자료사진 |
-그래서 ‘시행착오연구소’를 만든 건가요.
“시행착오연구소는 조직이 아니라 프로젝트 이름이에요. 사람들의 실패 경험에서 내러티브를 끌어내고 공유해서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자산으로 만든다는 취지였죠. 나중에 카이스트 실패연구소에 와서 보니 실패연구소의 설립 의도와 굉장히 흡사해서 놀랐어요.”
-시행착오연구소 프로젝트는 잘 됐나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이나 유엔 산하기구가 광역단체 등과 공동 개최하는 창업경진대회 같은 데 기획안을 냈는데 다 탈락했어요. 시행착오연구소 프로젝트를 과연 어디서 해야 하나 혼란에 빠졌던 시기죠. 그러니까 간판만 만들고 실행을 해보지도 못한 거예요. 카이스트 실패연구소도 실은 시행착오연구소라는 아이디어 때문에 지원했는데, 이력서에는 쓰지도 못했죠. 성과가 없으니까.”
그는 시행착오연구소의 시행착오 이후엔 진로를 틀었다. 서울시 시민소통담당관실에서 시정여론조사를 총괄하는 임기제 행정 6급 공무원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던 중 카이스트가 실패연구소를 만든다는 기사를 보게 됐다.
-이광형 총장의 취임 일성 중 실패연구소 설립 계획이 있었죠.
“그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서 휴대폰으로 기사를 보다가 벌떡 일어난 거예요. ‘뭐라고? 실패연구소?’ 실패를 주제로 연구소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저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처음 든 생각은 ‘실패연구소에선 어떤 사람이 일할까’였어요. 그런데 마침 연구교원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났더라고요. 제가 이곳에 관심이 있다는 걸 안 지인이 말해줘서 알았어요.”
-바로 지원했겠네요.
“안 했어요. 친구들도 의아해했죠. ‘카이스트 실패연구소 얘기를 할 때가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신나는 표정과 목소리였는데 왜 지원하지 않았느냐’면서요.”
-그러게요. 왜 지원하지 않았나요.
“내 커리어가 과연 실패연구소에 맞을까 걱정도 됐고요. 당시 다니던 서울시가 직장으로서 안정적이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한 달 만에 또다시 공고가 난 거예요. 마감이 4, 5일 남았을 때 우연히 석ㆍ박사 커뮤니티 플랫폼에서 보게 됐죠.”
-카이스트는 왜 한 달 만에 다시 사람을 뽑은 건가요.
“나중에 알고 보니 합격자가 오지 않겠다고 해서 급하게 다시 모집 공고를 낸 거더라고요. 아무튼 두 번째 공고를 봤을 땐 ‘다른 건 모르겠고, 이번에 지원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라는 생각에 지원서를 냈죠. 탈락하더라도 전형 과정에서 실패연구소가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성과일 거라고 생각하고 지원했어요.”
-이력서에 적진 못했지만, 시행착오연구소를 언급할 기회가 있었나요.
“서류 심사 통과자를 대상으로 면접 때 사업계획 프레젠테이션을 했거든요. 그때 얘기를 했어요.”
그는 합격했고 2021년 10월부터 카이스트 실패연구소의 유일한 연구조교수로 일하고 있다.
[실패②] ‘실패연구소에 온 게 실패인가’
안혜정 연구조교수는 “연재 ‘실패연대기’가 시작될 때부터 관심 있게 봤다”며 여러 질문을 하기도 했다. 실패연구소와 ‘실패연대기’가 만나 느끼는 동질감의 표현이었다. 대전=이한호 기자 |
-카이스트 내에서 실패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분위기가 어땠는지 궁금해요.
“조심스러운 얘기인데, 솔직히 카이스트는 제가 경험한 그 어떤 조직보다 성공 지향 문화가 강한 곳이었어요. 예를 들어 출근해서 학교 포털사이트에 들어가면 학교 구성원이 이룬 크고 작은 성과들이 팝업 메시지로 떠요. 이메일이나 뉴스레터로도 수시로 공유되죠. 그걸 보면서 ‘구성원들의 성취 압박이 상당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패연구소의 실무자는 몇 명인가요.
“소장님을 제외하고 저와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 있어요. 상근 연구조교수는 저 하나예요. 내ㆍ외부 위원으로 이뤄진 운영위원회가 있고요.”
-업무를 하기 쉽지 않았겠네요.
“처음에 와서 한동안 ‘내가 실패연구소에 온 선택이야말로 실패다’라고 생각한 순간이 많았죠.”
-왜 그랬나요.
“혼자서 개척을 해나가야 하니까 불안하기도 하고 외로움도 컸어요. ‘내가 하는 게 맞나’ 싶어 상의를 하려고 해도 고민을 나눌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소장님은 ‘하고 싶은 건 뭐든지 해보라’고 하셨지만, 제겐 말 못할 고충이 있었던 거죠. 어느 날 동생이 그러더라고요. ‘옛날에 시행착오연구소 때 만든 사업 계획이 있잖아. 드디어 그걸 실행해볼 기회가 생긴 거 아니야’라고. 돌아보면 시행착오연구소 때 만든 기획안을 거의 다 실행했죠.”
실패 인식 조사, ‘실패 에세이’ 공모, 실패감을 떠올리는 일상의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그 감정을 얘기하고 나누는 ‘포토 보이스(photo voice)’ 연구 프로젝트 등이다.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뭐였나요.
“카이스트 안에서 실패라는 주제를 말하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었어요. 외부에서 오히려 관심이 컸죠. 운영위원회 외부위원들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주시고요. 그런데 정작 학생들에게 실패연구소의 프로젝트를 던지면 먹히질 않았어요.”
-학생들은 실패연구소를 어떻게 생각하던가요.
“실패연구소가 매달 뉴스레터를 전 구성원에게 보내거든요. 그런데 뉴스레터를 받고 싶지 않다는 회신이 꽤 왔어요. 어떤 학생들은 ‘제발 보내지 말아주세요. 내가 마치 실패한 사람처럼 느껴져요’라면서 읍소하듯 요청하기도 했죠. 실패연구소 뉴스레터를 스팸 처리하는 이용자도 매달 늘어났어요. 지금도 330건 정도 돼요.”
[실패③] 성공해야 말할 수 있는 주제?
카이스트 재학생들이 10월 23일 학내 창의학습관에서 열린 ‘일상에서 포착한 실패의 순간들’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
-실패연구소가 학생들 상대로 프로젝트를 하기 쉽지 않았겠네요.
“그중에서도 ‘망한 과제 자랑대회’가 특히 그랬어요.”
-올해 ‘실패주간’ 때 가장 크게 주목받은 행사 아닌가요.
“그렇죠. 제가 실패연구소에 오고 나서 소장님과 한 첫 미팅에서 냈던 아이디어였어요. 정말 하고 싶었죠. 이 행사는 학생들이 주도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총학생회나 학내 관련 동아리에 협력 의뢰를 했죠.”
-반응이 미온적이었나요.
“기억나는 반응 중 하나가 ‘실패를 공유하자는 취지가 언뜻 들으면 좋게 느껴지지만, 학생들은 주저할 것이다. 실패는 성공했다는 알리바이가 있어야 말할 수 있는 주제 아니냐’는 거였어요. 아직 뭔가 이룬 게 없는 학생들이 망한 과제 이야기나 실패를 드러낼 때 과연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 불안감이 클 거라는 뜻이었죠.”
-그 얘기를 듣고 어땠나요.
“공감이 되기도 했어요. 실패를 얘기하는 데 ‘자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렇지 않으면 그저 ‘루저’라고 낙인찍힐 수 있으니까. 학생들 반응이 그러니까 자신이 없어지더라고요. ‘망한 과제 자랑대회’를 성공시킬 자신이 없었어요.”
그게 작년 4월의 일이었다. 그런데 1년 6개월 만에 상황은 달라졌다. 올해 10월 23일부터 2주 동안 아예 ‘실패주간’을 선포하고 덩치를 키워 행사를 치렀다. ‘망한 과제 자랑대회’도 물론 성공했다.
-그런데 올해엔 어떻게 실행하게 됐죠.
“포토 보이스 연구의 영향이 커요. 올해 초 학생 31명을 모아서 일상에서 실패감을 느끼게 하는 장면을 찍은 뒤 그 사진을 가지고 감정을 나누는 연구를 했거든요.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학생들에게서 실패를 끌어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나온 아이디어예요. 포토 보이스는 본래 연구 방법 중 하나예요. 실패 포토 보이스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학내 단체에 다시 의뢰를 했더니 이번엔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죠. 실패를 공유해야 하는 이유나 필요성을 체감하는 데 도움이 된 거예요.”
카이스트 실패연구소가 진행한 ‘포토 보이스’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한 학생들이 낸 사진. 일상 속에서 실패감을 느끼게 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참가자들과 생각을 공유하는 연구였다. 왼쪽은 ‘보도블록 위의 청둥오리’, 오른쪽은 ‘혼자만 시든 나뭇잎’이다. 소외감과 열패감을 드러낸 사진들이다. 카이스트 실패연구소 제공 |
-포토 보이스에 참여한 학생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학생들이 찍어온 사진 중 기억나는 게 청둥오리 사진이에요. 학교 연못에 청둥오리들이 살거든요. 그런데 그 학생이 찍은 사진 속 청둥오리는 연못이나 그 옆 잔디밭이 아니라 보도블록에 있었어요. 그 사진을 보자마자 다른 학생이 ‘저거 제가 낸 건가요’하는 거예요. 보도블록을 걷는 청둥오리를 보고 평소 비슷한 감정을 느낀 학생들이 많았다는 뜻이죠.”
-뭐라고 설명하던가요.
“있어야 할 곳이 아닌 데에 있다는 감정이었어요. 카이스트 안에 있다 보면 그렇게 느낄 때가 많다고, 그래서 보도블록의 청둥오리를 보면서 마치 자신을 보는 듯했다는 말이었어요. 그런가 하면 커다란 나무에 초록빛의 나뭇잎이 가득한데 그 사이에서 홀로 시든 나뭇잎 하나를 찍은 학생도 있었어요. 그 사진에도 꽤 많은 학생들이 공감했어요. 일반고 출신이거나 카이스트가 아닌 곳에서 학부를 마친 학생들이 주로 그런 감정을 느끼더라고요.”
-포토 보이스에 참여한 학생들의 변화가 느껴지던가요.
“한 학생의 반응이 기억에 남아요. 처음엔 ‘실패연구소는 나를 연구하는 덴가’ 싶었대요. 자신이 실패하고 있다고 느껴져서. 그런데 3주간 포토 보이스 연구에 참여한 뒤엔 ‘내 삶에 실패가 별로 없는데 나는 왜 내가 실패자라고 느꼈지’라는 생각이 들더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런 발견이 나의 삶엔 성공이고 실패연구소의 이 프로젝트에는 실패일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아마도 카이스트라는 특수한 공간이 주는 실패 감정이겠지요.
“맞아요. 학생들이 낸 ‘실패 에세이’ 중에서 ‘어쩌면 카이스트에 온 것부터가 실패의 시작인지 모른다’라는 내용을 인스타툰(인스타그램 카툰)으로 만들었는데,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았어요. 뭔가 시도했다가 실패해서 드는 감정이 아니라 카이스트의 다른 구성원을 보는 것만으로도 조급한 감정이 들어서 실패하고 있다고 느끼는 거죠.”
[실패란] 과정일 뿐… 쓸모없는 게 아니다
그는 “내가 실패연구소에 올 수 있었던 건, 이력서에 다 담지 못한 ‘실패의 이력’ 덕분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대전=이한호 기자 |
2주간 열린 카이스트의 첫 ‘실패주간’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망한 과제 자랑대회’였다. 교양 수업이 이뤄져 학생들이 가장 많이 오가는 공간인 창의학습관 로비에서 열렸다. 언론이 취재하기엔 좁고 불편할 수 있지만, 행사의 주인공인 학생들이 참관하기엔 최적의 장소였다. 행사의 주인공인 학생들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어떻게 이뤄졌나요.
“모두 10명이 발표자로 나선 뒤 청중으로 참여한 학생들의 투표로 순위를 가리는 방식이었어요. 초기부터 외부의 관심이 너무 커서 실은 ‘망했다’ 싶었어요. 그런데 대회 당일에 무척 놀랐죠. 발표가 시작되자마자 공간의 공기가 바뀌는 거예요. 발표를 듣는 학생들의 집중력이 대단했어요. 엄청 귀를 기울이더라고요. 약 100명이 청중으로 참여했고 그중 80명이 투표했어요. 발표자 1명당 5분씩 발표해 90분간 이뤄진 행사인데 이 정도면 참여율이 높은 거예요.”
-우여곡절 끝에 열렸지만 성공한 거네요.
“선례를 만들었다는 게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해요. 인지도를 높이자는 목표도 있었는데 확실히 효과가 있었고요. 학생들에게 실패를 주제로 말을 걸고 싶었거든요. ‘실패를 입 밖에 내어 보니 의외로 다른 사람도 나와 비슷하구나’라는 걸 느낄 수 있도록.”
카이스트 안에서 ‘실패의 언어’를 만들고 싶었던 거다.
-2018년부터 계속 ‘실패’와 함께 살고 있으니, 자신의 실패를 생각할 기회도 많을 것 같아요.
“따져보면 제 이력서는 설명이 많이 필요한 이력서거든요. 그래서 스스로 쪼그라들 때가 많았어요. 학계에선 ‘심리학 전공자가 문화 정책이나 문화 기획 프로젝트를 많이 했네’ 싶을 거고, 문화판에선 저처럼 심리학 전공자가 거의 없고요. 하나의 큰 줄기로 설명되지 않는 이력서죠. 그래도 이력서 행간에 실패의 경험과 도전이 많으니 서류 심사는 몰라도 면접에서 떨어진 적은 거의 없어요.”
-실패연구소의 연구조교수로서 실패를 정의하면 뭐라고 생각하나요.
“결국 시간이 지나봐야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것이죠. 콜럼버스는 인도를 찾아 항해를 시작했지만, 도착한 곳은 아메리카 대륙이었잖아요.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콜럼버스의 입장에서는 실패였겠죠. 그러나 지금 우리는 아무도 그걸 실패라고 하지 않잖아요. 신대륙 발견이라고 평가하지. 실패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활용되는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그 실패의 경험에서 길어 올린 삶의 도가 있다면 뭘까요.
“쓸모없는 경험이란 없다. 길게 보면, 지금의 경험은 인생의 과정일 뿐이죠. 저 역시 시행착오연구소를 기획한 당시엔 실패했지만, 그 덕에 실패연구소에 오게 됐잖아요.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Connecting the dot(모든 과거의 경험이 하나로 연결돼 큰일을 할 수 있다)’이죠.”
‘실패연대기’의 취지는 이렇다. “실패를 키워드로 한 사람의 인생을 다시 엮어 보는 시도. 실패를 테마로 한 ‘실패 이력서’다. 이를 바탕으로 실패를 바라보는 고정관념을 반전시키고, 실패의 역동성과 가능성을 가늠해본다.”
그를 인터뷰하면서 머릿속에 내내 ‘실패 이력서’가 떠오른 이유다. 성과를 나열한 이력서가 아닌 ‘실패 이력서’를 써봐야 하는 것 아닐까. ‘Connecting the dot’을 곱씹어 볼수록 지금의 이력서는 절반짜리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력서에 없는 행간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는 데서 고유한 자산은 만들어질 테다.
대전= 김지은 선임기자 luna@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