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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대사관이 '식혜 부산물 에너지바' 회사와 손 잡은 이유

겔라레 나더르 농무참사관·강병규 올가홀푸드 대표

15일 '제로 푸드웨이스트' 공동 캠페인 선보여

"음식물쓰레기 줄이면 기후·식량 위기 극복 가능"

한국일보

15일 올가홀푸드 방이점에서 제로 푸드웨이스트 행사가 열린 가운데 주한 네덜란드대사관 겔라레 나더르(왼쪽) 농무참사관과 강병규 올가홀푸드 대표가 음식을 선보이고 있다. 주한네덜란드대사관·올가홀푸드 제공

산지에서 버려진 '못난이' 전복과 마늘, 양파가 모여 전복 리조또가, '못난이' 당근과 고기, 토마토가 모여 라구 파스타가 됩니다. 식혜와 맥주에서 버려지는 찌꺼기들이 모여 에너지바가 됩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해마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40억톤의 음식 중 3분의 1이 버려지고 있습니다. 식량의 생산, 유통, 소비 과정에서 생산되는 온실 가스 배출량은 137억톤에 달합니다.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26%에 해당하는 양이죠. 여기에 버려진 음식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전체 배출량의 8%에 달하는 온실가스가 나오고 있죠.


그런데 궁금할지 모르겠네요. 버려지는 식량과 기후 변화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말이죠.


기후 변화로 지구 평균 온도가 섭씨 2도 상승할 경우, 약 1억8,900만명이 지금보다 더 심각한 식량 위기 상황에 놓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식량이 버려지면서 온실가스가 발생하는데 이에 따른 온도 상승으로 식량 위기까지. 버려지는 식량이 식량 위기를 불러오는 악순환입니다.


특히 지난해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부터 호주와 미국 서부의 산불과 아시아의 이례적 폭우 등의 기후 변화까지. 2020년은 우리 모두를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그래서 버려지는 음식을 통해 지구와 환경을 지켜내는 데 공감, 머리를 맞댄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주한 네덜란드대사관과 친환경 유통사 올가홀푸드입니다. 14일 주한 네덜란드대사관에서 겔라레 나더르 주한 네덜란드대사관 농무참사관과 강병규 올가홀푸드 대표를 만났습니다.

못난이 식재료로 고급 음식, 부산물로 에너지바

한국일보

14일 주한 네덜란드대사관에서 겔라레 나더르(왼쪽) 농무참사관과 강병규 올가홀푸드 대표가 음식물쓰레기 줄이기 캠페인에 대해 대화를 하고 있다. 손성원 기자

이들은 처음 만난 사이가 아닌 듯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15일 시작하는 제로 푸드웨이스트 캠페인을 위해 몇 차례 만난 적이 있다고 해요.


무슨 캠페인이냐고요? 15일 올가 방이점에서 '제로 푸드웨이스트 캠페인'이 열렸어요. TVN 식벤져스에서 제로웨이스트 식당을 운영하는 것으로 출연한 송훈 요리연구가가 이날 못난이 식재료들로 전복 리조또와 라구 파스타를 만드는 법을 선보였습니다.


또 '올가의 키친'이라고 나물 반찬 등을 파는 매대에서 일반인 150명 선착순으로 밀패키지와 리너지바를 나눠줬습니다. 리너지바란 리사이클링과 에너지바의 합성어로, 식혜와 맥주 부산물 등을 재활용한 가루로 만들어진 에너지바를 뜻합니다.


이날 나더르 참사관은 영상을 통해 "남고 버려지는 음식을 줄여 우리 지구를 살리는 데 동참해달라"고 호소했고, 강 대표도 "버려지는 식량 자원이 없도록 일상 속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자"고 당부했습니다.

"외식 문화 잘 돼 있는 한국, 하지만 남긴 음식 많아"

한국일보

14일 주한 네덜란드대사관에서 겔라레 나더르(왼쪽) 농무참사관과 강병규 올가홀푸드 대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손성원 기자

그런데 어쩌다가 네덜란드대사관과 올가홀푸드가 만나게 된 걸까요? 먼저 손을 내민 건 주한 네덜란드대사관이었습니다.


나더르 참사관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음식의 질이 정말 좋았고 외식 문화도 잘 돼 있어서 만족스러웠다"면서도 "그런데 정말 많은 음식들이 버려지는 것을 알게 됐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는 "농업이 발달해서 음식물을 정말 아끼는 네덜란드에서 와서 그런지 어떻게 하면 덜 남기게 할 수 있을지 책임감을 느끼게 됐다"며 "한국도 분리 수거, 비닐봉지 필수 구매 등 잘하고 있는 부분이 있어서 '음식물 낭비 줄이기'를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고 전했습니다.


다만 외국 대사관으로서 할 수 있는 일에 제한을 느꼈다는 나더르 참사관. 이런 상황에서 올가홀푸드의 지난해 제로웨이스트 캠페인을 알게 되면서 함께 손 잡자고 제안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습니다.

네덜란드 농업에 감동 받았다는 강 대표 "인연이란..."

한국일보

강병규 올가홀푸드 대표. 올가홀푸드 제공

올가홀푸드는 지난해부터 환경부의 녹색특화매장 시범사범을 선보였다고 합니다. 먼저 포장재를 생분해되는 비닐 등으로 바꾸고, 소분 판매 등으로 녹색 소비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 것이죠.


그렇게 해서 손을 잡게 된 네덜란드대사관과 올가홀푸드. 사실 이들의 인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닌 듯합니다. 강 대표는 2007년 즈음 네덜란드, 독일, 영국 등을 방문해서 동물복지와 선진 농법, 지속가능한 개발, 스마트팜 등을 배우고 온 적이 있다고 해요.


당시 네덜란드의 양계 농가, 돼지 사육장 등을 다녔는데 밀집 사육을 해오던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너무 평안한 곳에서 사육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강 대표는 전했습니다.


또 네덜란드의 슈퍼마켓 체인인 에코플라자를 보고 강 대표는 "그곳에서는 냉장 시설이 다 여닫이 문이더라. 그렇게 하면 에너지 효율과 품질 모두를 높일 수 있다"며 "우리도 그걸 보고 도입했다"라고 전했습니다.


이 때문에 강 대표는 네덜란드대사관 측의 연락을 받고 '이게 무슨 우연인가'라고 생각했고, 대사관 측은 첫 미팅 때 대표가 직접 나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해요.



한국일보

올가 전경. 올가홀푸드 제공

언뜻 보면 유통사와 '제로 푸드웨이스트'와는 거리가 멀 것으로 보이죠. 더 많은 식품을 팔아야 수익을 내는 회사가 음식을 쓰레기를 줄인다니요. 강 대표는 어떤 마음이었을가요.


강 대표는 "당장의 효율성만 보면 오히려 손해일 수 있지만 좀 더 멀리 보고 큰 흐름을 감안하면 지속 가능성이 더 중요한 것으로 봤다"며 "고객들도 그런 믿음 때문에 올가를 찾아 오는 것이라는 교감이 있어서 믿고 나섰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최근 젊은 층에서도 환경 이슈에 대한 관심이 커지다 보니 주로 중장년층이 많았던 고객 구성도 젊은 층으로 넓어지고 있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고 강 대표는 전했습니다.


실제 회사가 공을 들이고 있는 녹색 특화 매장 운영에 대한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댓글을 보면 젊은 층의 반응이 더 뜨겁다고 해요.


이날 방이동 매장을 시작으로 올가는 캠페인 대상을 전국의 86개 매장까지 확대하려는 마음도 먹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올가는 반찬 등을 적은 양으로 나눠 덜어갈 수 있는 '델리존'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강 대표는 "(제로웨이스트 관점에서) 포장 단계에서 시작해 음식물 단계까지 왔다"며 "이제는 무엇이 됐든 더 넓은 범위에서 '제로 웨이스트'를 실현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네덜란드는 지속가능성을 위한 '순환농업' 선두 국가

한국일보

겔라레 나더르 주한 네덜란드대사관 농무참사관. 주한 네덜란드대사관 제공

그런데 네덜란드는 왜 음식물쓰레기를 포함해 제로웨이스트에 큰 관심을 갖는 것일가요. 특히 네덜란드의 핵심 산업인 농축산업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네덜란드 농업부는 유엔의 지속가능한 개발 목표 달성을 위한 실천 방안으로 2030년까지 현 농업 시스템을 순환 농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나더르 참사관에 따르면, 국가 차원에서 먹거리의 불필요한 손실을 최소로 줄이는 공급 사슬을 핵심으로 하는 순환 농업에 집중한다는 것이죠. 먹을거리가 남아돌고 낭비되는 것을 제로에 가깝게 줄이는 것이 목표입니다.


농업과 식품 공급 사슬에서 발생한 잔여물을 재사용하거나 재처리 과정을 거쳐 새로운 제품으로 탄생시키는 푸드 업사이클링도 이에 속하죠. 위에서 얘기했던 '못난이' 재료로 만든 고품격 파스타와 리너지바가 그 예입니다.


나더르 참사관은 "네덜란드는 인구의 10%가 농업 분야에서 일 하고 농업 분야에 대한 사회적 지위도 한국과 비교해 훨씬 높다"면서 "음식을 버리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전했는데요.


제로웨이스트에 대해 그는 "한국에서는 많게는 10가지 반찬이 한꺼번에 나오는데, 네덜란드는 조금씩 직접 가져다 먹는 것을 선호한다"며 "한국은 제로웨이스트도 음식물 자체보다는 플라스틱 같은 포장재에 초점을 맞추는 데 비해 네덜란드는 음식물 자체를 핵심으로 여기는 푸드웨이스트부터 시작한다"고 전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네덜란드에는 오렌지 껍질을 모아서 세제로 만드는 기업도 있고,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 곤충들에게 주고, 그렇게 먹인 곤충들은 닭의 사료로 쓰는 기업도 있다고 합니다. 정말 신기하죠?


나더르 참사관은 "한국은 기후변화 얘기를 하면 주로 자동차 얘기를 하는데 사실 농업 분야가 (온실가스 배출의) 25%가량 책임이 있다"며 "이제 보다 적극적으로 이 얘기를 해야 할 때가 됐다"고 덧붙였습니다.

제로 푸드웨이스트의 마지막은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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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올가홀푸드 방이점에서 '제로 푸드웨이스트 행사가 열렸다. 주한네덜란드대사관·올가홀푸드 제공

네덜란드 대사관과 올가홀푸드의 공동 작업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22일에는 '푸드 뱅크'를 통해 기부 나눔까지 할 예정입니다.


나더르 참사관은 "순환 농업의 마지막은 음식 나눔"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네덜란드에서는 푸드 뱅크가 잘 돼 있다고 하네요. 강 대표도 "올가에서도 푸드뱅크에 음식 기부를 해왔다"고 덧붙였습니다.


정말 버려지고 남는 것 하나 없이 완전히 모두 사용하는 것 같지 않나요? 나더르 참사관과 강 대표는 모두 입을 모아 "지구 온난화 등 기후 변화 이슈는 이제 소비자뿐만 아니라 모든 이해 관계자들이 다같이 힘을 합쳐 대응해야 할 때"라며 "앞으로는 전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 모두가 동참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어떤가요. 이제 제로 푸드웨이스트 실현을 위해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요.


손성원 기자 sohns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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