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된 알리바이 술술 읊던 사이코패스, 심리 부검에 무너졌다
프로파일러의 세계
<4> 오사카 니코틴 살인 사건
2017년 4월 우모(당시 21)씨가 극단적 선택을 위장해 아내 김모(19)씨를 살해하는 데 사용한 니코틴 원액 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
"최 경위, 용의자인 남편 진술이 탄탄하긴 한데 사건이 좀 의심스러워요. 검토 한 번 해주시죠."
미세먼지로 하늘이 뿌옇던 2017년 12월 어느 날. 충남경찰청 프로파일러 최규환 경위에게, 유제욱 세종경찰서 형사1팀장이 찾아왔다. 살인으로 의심되는 사건이 있는데, 용의자 진술이 논리 정연해 프로파일러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유 팀장이 말한 사건의 개요는 이랬다. 2017년 4월 25일 오전 2시 50분쯤 일본 오사카로 신혼여행을 떠난 아내 김모(당시 19)씨가 여행 첫날 사망했다. 사인은 급성 니코틴 중독. 김씨는 호텔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당시 화장실에는 카테터(가느다란 관)와 주사기가 있었다고 한다. 침실에 있던 남편 우모(21)씨는 "쿵 소리가 나 화장실 안을 확인하니 아내가 숨져 있었다"며 일본 경찰에 신고했다. 객실 안에는 둘만 있었고, 내부에 폐쇄회로(CC)TV는 없었다.
우씨는 아내 김씨가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일본 경찰에 진술했다. 사망 직전 김씨는 가족들에게 음성 메시지를 보내 "결혼을 반대해 우울하다, 나 없는 셈 치라"며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말을 남겼다. 김씨는 전에도 자해를 하거나 유서를 쓴 적이 있었다. 일본 경찰은 김씨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판단하고 수사를 종결했다. 김씨의 시신은 화장돼 한국으로 이송됐다.
자살로 묻힐 뻔 한 사건이 다시 떠오른 건 사망 2주 후인 5월 9일이었다. 보험사 조사관이 유 팀장에게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며 수사를 의뢰했다. 우씨는 5월 4일 S화재 보상센터에 사망 보험금 수령을 문의했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충격을 받은 자살 유가족이 사망 일주일 만에 보험금을 신청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당시 자살은 보험금 지급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답을 들은 남편 우씨는 분을 삭히지 못하며 아쉬운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수화기 너머 우씨의 목소리엔 슬픈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보험사는 보험금을 노린 '위장 살인'이 아닐까 의심했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초반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유족이 슬퍼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작정 용의자로 몰 수도 없는 일. 남편 우씨는 태연한 태도로 일관되게 진술했고, 담당 수사관들을 형이나 누나로 부르며 따를 정도로 수사에 협조적이었다. 추후 결정적 단서가 된 우씨의 휴대폰 메모는 이제 막 디지털포렌식 분석을 맡긴 참이었다. 자살 유가족인 우씨를 범인으로 단정하고 수사하기엔 확신이 부족했다. 우씨 진술의 신빙성을 무너뜨리는 게 최우선 과제였다.
완벽해 보였던 시나리오… 조목조목 뜯어보니 모순 수두룩
일본 오사카에서 우씨와 김씨가 묵은 호텔 건물 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
세종서 수사팀과 최 경위는 투트랙으로 움직였다. 수사팀은 앞서 우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일기장을 토대로 우씨가 말한 사건의 경위를 반박할 증거를 찾기 시작했다. 최 경위는 우씨 진술 자체를 분석했다. 이 진술들 사이 모순점을 발견해 진술 내부로부터 신빙성을 깨는 것이 수사팀과 최 경위의 전략이었다.
2018년 1월 29일 최 경위는 우씨의 진술 기록 5가지를 공유 받았다. 세종서 수사팀 기록(2017년 8월ㆍ2018년 1월)과 김씨의 언니 B씨와 어머니 C씨에게 사건 경위를 설명한 내용(2017년 4월ㆍ5월ㆍ10월)이었다.
이를 통해 본 우씨의 스토리는 일관돼 보였다. "샤워를 마친 뒤 아내가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잠시 후 '쿵' 소리가 났다. 가보니 아내가 쓰러져 있었고 약물이 든 주사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 같았다. 아내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진술이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유지됐다.
그러나 최 경위는 우씨의 진술 밖에 존재하는 신혼여행 첫날밤의 호텔방 상황을 재구성해 보려고 시도했다. 아내가 사망할 때 남편은 침실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우씨는 나중에 처형에게는 "침대에 걸터 앉아 졸고 있었다"고 말했다가, 수사관에게는 "이부자리를 정리했다"거나 "침대에 누워있었다"고 하는 등 엇갈린 증언을 했다. 또 우씨는 "아내가 죽기 전 화장실 변기에 앉아 있었다"고 말했는데, 이는 화장실 밖에 있던 우씨가 알 수 없는 정보였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었다.
최 경위의 경험상 이런 진술상 모순은 순발력 좋은 계획범들에게 나타나는 특징이다. 아무리 머리가 좋은 범인이라도, 사건 현장의 모든 디테일을 완벽하게 구상하는 건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런 질문을 받을 때 계획범은 순발력을 발휘해 디테일을 지어내게 되는데, 세부 정보가 워낙 많아 반드시 진술 사이에 모순이 생긴다. 최 경위는 우씨의 진술에서 이런 불일치를 13건이나 발견할 수 있었다.
수사팀이 압수해 분석한 증거물에도 우씨 진술을 무너뜨릴 내용이 나오기 시작했다. 우씨 자택에서 확보한 일기장에 따르면, 우씨는 2016년부터 보험금을 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일기장에는 '여자친구와 싸우고 설득해 보험에 가입시킨다. 예상 금액 10억(2016년 3월 기록)' 등의 메모가 빼곡히 담겨 있었다. 또 우씨가 2016년 자신을 수익자로 하는 보험을 든 뒤, 친구를 오사카로 데려가 비슷한 방법으로 니코틴 주입을 시도하려다 실패한 정황도 나왔다.
경찰이 포위망을 좁히자, 우씨의 태도는 180도 바뀌었다. 형ㆍ누나 하며 따랐던 수사관들에게 반말을 했고, 몇 시간을 노래만 불러 수사관들을 자극하기도 했다. 불리한 질문을 받으면 "그딴 걸 왜 묻냐"며 면박을 줬다. 우씨의 돌변은 궁지에 몰려 당황한 사람의 공격성이 표출된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착한 척'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본색이 드러난 것일 뿐이었다.
죽은 아내의 심리를 부검하다
계획살인의 증거가 속속 드러났음에도 우씨는 여전히 뻔뻔했다. 아내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특히 사망 전 아내가 가족에게 보낸 음성메시지, 자해 이력, 유서를 쓴 적 있다는 사실을 집요하게 강조했다.
경찰 수사는 아내 김씨가 극단적 선택을 할 동기가 없었던 점을 규명하는 데 집중됐다. 최 경위가 떠올린 수단은 '심리 부검'이었다. 심리 부검은 고인의 주변인을 면담해 생전 심리상태를 복원하는 프로파일링 기법이다. 일반 부검이 시신을 분석해 고인의 물리적 사망 경위를 밝히는 일이라면, 심리 부검은 마음을 뜯어보는 셈이다. 심리부검이 경찰 수사에 실제 쓰이는 일은 극히 드물지만, 여러 증거 앞에서도 자백하지 않는 우씨를 무너뜨리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해봐야 했다.
분석은 2주간 이뤄졌다. 대상은 11명. 김씨의 부모님과 언니, 초등ㆍ중학교 친구, 아르바이트 동료들까지 만났다. 유가족과 지인들은 기다렸다는 듯 억울함을 쏟아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한 점이 한둘이 아닌데 일본 경찰이 단순 자살로 사건을 종결했다는 것이다.
특히 언니 B씨가 전해준 우씨와 김씨의 관계는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우씨는 '김씨가 가족 때문에 우울해하며 우씨와 결혼을 하고 싶어한다'고 김씨 주변인들이 믿게 하는 데 상당히 공을 들였다. 김씨 가족들에게 김씨인 척 "임신을 했으니 우씨와 결혼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식이었다. 알고 보니 이전에 김씨가 썼다는 유서도 우씨가 강제로 쓰게 한 것이었다. 친구들은 김씨의 자해 경험이 우씨의 데이트 폭력 때문이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최 경위는 "자살 가능성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결론 내렸다. 김씨는 친구들에게 우씨와의 일본 여행이 설렌다고 했고, 휴대폰으로 '이쁜 아이 이름'을 검색하는 등 결혼생활을 기대했던 정황도 나왔다. 이후 최 경위가 진행한 사이코패스(PCL-R) 검사에서 우씨는 40점 만점에 26점을 받았는데, 이는 강호순(27점), 조두순(29점), 이영학(25점)과 비슷한 점수다.
2018년 8월 30일 대전지법은 살인ㆍ살인미수ㆍ보험사기방지특별법위반ㆍ상해ㆍ강요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우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씨의 심리부검보고서를 증거로 채택했다. 심리부검보고서가 법원에서 인정받은 첫 사례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상고를 기각하고 무기징역을 선고한 1심 판결을 확정했다.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