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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노인은 왜 폐지를 주워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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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피상적으로 ‘가난한 노인’을 떠올릴 때, 그 중 대부분은 폐지를 가득 실은 리어카를 끌고 있는 등이 굽은 노인의 모습일 가능성이 높다. 재개발로 판잣집처럼 가난을 상징하는 그림이 점차 사라지면서, 폐지 줍는 노인은 지하철역이나 공원에서 마주치는 노숙인과 더불어 도시의 가난을 소묘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2020년 한국 사회에서 65세 이상 노인은 812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5.7%를 차지한다. 노인인구 비율이 14%를 넘는 고령사회에 진입한지도 4년이 지났다. 고령사회로의 진입은 어느 국가건 불가피하겠으나, 문제는 노인계층의 가난이다. 대한민국 65세 이상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43.8%로 OECD 가입 국가 중 가장 높다. 65~69세 고용률은 두 번째로, 70~74세 고용률은 가장 높다. 말인즉슨, 한국의 노인들은 일을 많이 하는데도 빈곤하다는 뜻이다. 특히 교육과 취업의 과정을 거쳐 직접 임금노동자가 될 수 있었던 기회가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던 여성 노인의 경우 무경력, 저숙련 상태로 나이 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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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관리공단 광고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이 포스터는 폐지가 담긴 리어카와 여행 캐리어를 대치시켜 비판을 받았다.

노후 생활의 경제적 기반도, 기술도 없는 여성 노인이 가장 쉽게 내몰리는 일자리가 바로 재활용 수집이다. 책 ‘가난의 문법’은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여성 도시 노인의 생애사를 통해, 도시 노인의 빈곤 구조를 분석한 책이다. “삶의 경로는 우연”하지만, “필연적으로 재활용품 수집이라는 일로 수렴”되는 과정을 가시화하며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노인들이 그런 일과 생활을 하게 된 원인이 개인의 잘못이 아님”을 밝혀낸다.


책은 1945년생 윤영자의 하루 중 일부와 이에 대한 해석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윤영자는 저자가 사회조사를 진행하며 만났던 노인들이 살아온 생의 조각을 이어 붙여 탄생시킨 가상의 인물이다. 이름은 그 해 출생신고 된 여아의 이름 중 가장 많았던 것에서 따왔고 학력, 출산, 결혼 등의 신상은 일반적인 생애주기에 따라 재구성됐다. 이 같은 방식을 통해 저자는 생계를 위해 일을 하는 70대 노인의 평균적 존재를 구상한다.


“삶이 단순해졌다. 살아야 했기에, 동네서 소일거리를 찾아 일했다. 그런데 장사만 해왔던 팔자라, 남 눈치를 보며 뭣을 만들어야 하는 일이 답답했다. 그렇게 폐지 줍는 일을 시작했다. 혼자 일할 수 있었고, 실내에 처박혀 일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 영자씨는 모순된 마음이었다. 자신의 삶이 원망스럽지만, 그래도 자신이 뭔가 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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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과거 ‘넝마주이’라 불렸던 때에 비하면 현재의 재활용품 수집 일은 보다 고도화됐다. 과거 넝마주이의 일이 고물상과 폐품 매입업자 사이 단순 거래였다면 오늘날은 폐기물 처리 과정에서의 자원순환 정책과 재활용 산업에 매개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동은 그 어떤 제도에 의해서도 인정되지 않으며, 그 어떤 공식적 통계 수치로도 환산되지 않는다.


저자는 윤영자를 중심으로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의 일과, 도구, 쉼터, 위험, 공동체, 소득, 가족관계 등을 촘촘히 복원한다. 여기에 실증적인 각주를 덧붙임으로써 지금껏 단순히 폭로와 경고, 혹은 통계와 ‘가난한 장면’에 그쳤던 가난한 노인 생애사를 우리가 모두 함께 고민해야 할 하나의 사회적 문제로 치환시킨다. 책은 자연스레 질 낮은 노인 일자리에 대한 고민과, 궁극적으로는 노인들이 일을 하지 않더라도 더 나은 기초소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에 대한 강구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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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저자는 “동정과 시혜보다 기본적인 삶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변화”가 바로 우리, “젊은 세대와 부유한 계층”의 책임임을 역설한다. 폐품의 배출과 처리에 대한 책임을 느끼지 않는 소비자와, 상품과 함께 포장재를 생산했으나 처리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는 제조업자, 그리고 도시 당국의 불완전한 쓰레기 수거 시스템이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을 존재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한 발짝 떨어져 그저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기엔 우리 모두가 여기에 개입된 존재이기에, 변화는 바로 우리의 몫이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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