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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하다 ‘부동산 불로소득’ 예능? MBC ‘돈벌래’ 첫방 논란

제작진 “실거주자~부동산 투자자 아우르는 꿀팁” 취지 설명에도

파일럿 방송 뒤 “지상파가 투기 바람 일으킨다” 부정 여론 쏟아져

한겨레

“현재 광화문에 있는 미국 대사관이 들어오고, 서울시교육청이 옮겨온다. 그렇게 되면 주변에 상권이 유입되어 강북형 가로수길이 될 수 있다. 해방촌 상권이 이쪽으로 내려올 것이다.”


지난 11일 맛보기(파일럿) 방송을 한 <문화방송>(MBC) 예능프로그램 <돈벌래>의 한 장면. 서울 용산구 후암동을 둘러보던 김경민 부동산 전문가의 말에 방송인 조영구가 바로 되받아친다. “여기를 사야겠네요.” 출연자들은 최근 정부의 주택공급계획 발표 이후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용산 정비창 내부를 돌아보고, 인근 한강로동을 걸으면서 “용산 정비창 호재 최대 수혜 지역”이라고 강조한다.


<돈벌래>는 부동산 관련 정보를 알려준다는 취지로 시작한 프로그램이다. ‘알아야 돈을 번다’는 설명처럼 진행자 김구라와 배우 이유리, 김경민 부동산 전문가가 호재 지역을 돌며 시세를 알아보는 등 대신 발품을 팔아준다. 제작진은 방영 전 “부동산 및 재테크에 관련한 예리하고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실거주용 집을 찾는 사람부터 부동산 투자에 관심 있는 이들까지 아우를 수 있는 꿀팁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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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송 <돈벌래> 의 한 장면. 프로그램 갈무리

하지만 방송이 나간 뒤 “지상파가 전 국민에게 부동산 투기 바람을 일으킨다”는 부정적인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가구당 순자산의 76%가 부동산일 정도로 부동산 투자에 관심이 높은 시대라고는 하지만, 이를 예능으로 만들어 소비하는 것이 온당하냐는 지적이다. 방송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집을 투자의 관점으로 접근한 것 자체가 공영방송이 맞냐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공영방송이 불로소득을 부추기는 듯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그 자체로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다.


실제로 맛보기 프로그램의 내용을 살펴보면 실거주용 집을 찾는 사람에게 유익한 정보를 주기보단 부동산을 이용해 돈을 벌 수 있는 정보에 더 집중하는 모양새다. 1회에서는 용산을 소개했는데 “용산과 강남은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다”거나 “강변의 아파트를 사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조영구는 “어디를 사야 하느냐. 시청자에게 정보를 줘야 할 것 아니냐”며 요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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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송 <돈벌래> 의 한 장면. 프로그램 갈무리

부작용은 이미 발생했다. 부동산 관련 인터넷 카페를 들여다보면, 프로그램에서 지티엑스 에이(GTX-A·수도권광역급행철도) 노선을 언급한 것을 두고 파주 지역 집값 상승과 연결하거나, “<돈벌래>에 부산 ○○○가 나오면 프리미엄 더 오르려나요?”라며 프로그램에 자신의 아파트가 소개돼 집값이 뛰기를 기대하는 글도 눈에 띈다.


한편에선 요즘 사람들의 관심사를 균형감 있게 담았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나온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시기적으로 부동산이 과열돼 있는 상황에 나온 점 등이 부적절해 보이지만 내용은 알차고 균형감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재테크 프로그램이라고 표방한 것도 솔직하고, 젊은 사람들에게 부동산에 대한 적당한 지식과 정보를 준다는 취지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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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송 <돈벌래> 의 한 장면. 프로그램 갈무리

하지만 한국에서 부동산 자체가 민감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만듦새를 떠나 기획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윤석진 평론가는 짚는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이 교육의 문제점을 꼬집었지만, 결과론적으로 대중의 뇌리엔 ‘코디네이터’만 남았듯, 프로그램 취지가 어떻든 시청자에게 뒤틀린 정보와 이미지만을 남길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로 “이 지역이 호재”라는 프로그램 속 전문가의 말은 부동산에 관심이 없던 이들조차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야 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게끔 한다. 2회 영등포 지역 예고편에서는 “호재의 천국. 세배나 뛰었지만 아직도 남았다”라는 식의 이야기도 나온다. 윤석진 평론가는 “한국 부동산 문제는 집을 주거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차곡차곡 돈을 모으던 평범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데, 공영방송이 이런 생각을 부추기는 구실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부동산은 선한 의지가 통하지 않는 아이템이다.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은 시청자에게 정보를 왜곡된 방식으로 수용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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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송 <돈벌래> 의 한 장면. 프로그램 갈무리

이 프로그램을 만든 서정문 피디는 “유튜브 등에 잘못된 정보가 넘쳐나고 있어 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등 균형을 갖추려고 노력했다. 프로그램 안에도 정비창을 주거단지가 아닌 애초 계획대로 국제업무지구로 재추진해야 한다는 권영세 국회의원 의견과 이에 반대하는 김경민 전문가의 의견을 고루 전달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럼에도 부동산에 대해 투자 관점에서 접근하는 점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충분히 이해한다. 2편에서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이 프로그램은 2부작 맛보기로 제작했으며, 시청자 반응에 따라 정규 편성 여부를 결정한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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