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승츠비’라 불리던 승리는 어떻게 몰락했나
부와 명성 얻은 ‘승츠비’ 캐릭터로 잘나가던 빅뱅 승리
버닝썬 사건으로 낱낱이 드러난 그의 이면
'해외 투자자 성접대' 의혹을 받고 있는 그룹 빅뱅의 승리가 27일 조사받기 위해 서울지방경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승리를 상대로 성접대 의혹을 비롯해 그동안 불거진 의혹 전반을 조사할 방침이다. 연합뉴스 |
‘승츠비’는 잘나가고 있었다. 인기 그룹 빅뱅의 멤버 승리로, 가맹점이 수십 개인 라멘 프랜차이즈와 서울 강남의 클럽을 경영하는 사업가로, 그리고 이 두 가지 정체성이 합쳐져 재미있는 얘깃거리를 지닌 예능인으로 승승장구했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온갖 수단으로 백만장자가 된 뒤 매주 성대한 파티를 여는 제이 개츠비에서 따온 별명처럼, 맨몸으로 서울에 와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자신이 쌓아올린 부와 명성을 마음껏 과시하는 승리의 캐릭터는 허세 가득할지언정 미워할 수 없었다. 지난해 출연한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화제가 된 것 역시, 가맹점주 세미나에 참석하고 외국 파트너와 사업 이야기를 나누며 클럽의 음향과 조명을 점검하는 등 제법 ‘대표다운’ 그의 모습이었다. 승리는 말했다. “사람들이 연예인의 사업이면 이름과 얼굴만 빌려주는 줄 아는데 저는 직접 다 한다.”
“직접 다 한다” 했다가 “처음부터 관여 안 했다”
'나 혼자 산다' 화면 갈무리 |
사업가 승리의 말이 뒤집힌 것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다. 지난 2월 초, 승리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실질적인 클럽의 경영과 운영은 제 역할이 아니었고, 처음부터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1월, 그가 사내이사를 맡아 운영하던 서울 강남의 클럽 ‘버닝썬’에서 일어난 폭행 사건의 피해자가 클럽 경영진과 경찰의 유착 문제를 공론화하고 버닝썬을 둘러싼 마약 유통 의혹까지 수면 위로 올라오자 밝힌 입장이었다. 승리는 폭행 사건이 알려지기 며칠 전 버닝썬의 사내이사직을 사임했다.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이하 YG)의 양현석 대표는 입대를 앞둔 승리가 “군 복무에 관한 법령을 준수하기 위함”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버닝썬에서 이른바 ‘물뽕’이라는 약물을 이용한 여성 대상 성범죄와 불법 촬영이 이루어지는 데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관여했다는 제보에 이어, 승리가 2015년 외국인 투자자에게 성접대를 알선하려 했다는 내용이 담긴 카카오톡 대화가 보도되면서 ‘승츠비’의 이면이 낱낱이 드러났다.
그런데 이런 승리의 세계가 정말 우리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비윤리의 영역일까. 승리를 비롯한 버닝썬 관계자들의 혐의는 현재 경찰과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조사 중이지만, 그동안의 제보가 모두 사실이라고 가정한다면 당연히 분노하고 엄중한 처벌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무엇보다 공분을 자아내는 지점은 여성의 신체가 남성의 욕망을 위한 일종의 도구나 재화처럼 다루어졌다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2016년 MBC <라디오스타>에서 크리스마스 사교 파티를 주최했던 승리가 노출 많은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십수 명의 외국인 여성을 병풍 혹은 트로피처럼 늘어세운 채 의기양양하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MC들은 입을 모아 “이것이 진정한 셀러브리티 라이프”라며 감탄했고, 이 방송은 ‘승츠비’ 캐릭터가 인기를 끄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문제와 근본적으로 다른가? 아예 ‘위대한 승츠비’를 전면에 내세운 넷플릭스 오리지널 코미디 〈YG 전자〉는 또 어땠나. ‘YG 전략자료본부실’ 고문으로 발령받은 승리는 만취한 외국인 여성 투자자에게 이른바 ‘몸캠’(화상 채팅으로 신체 노출 등 성적 행위를 하는 것)을 요구받은 신인 남성 모델이 이를 거부하자 “이 새끼가 배부른 소리 하고 있어! 야, 높으신 분이야!”라며 윽박지른다. 대본임을 고려해도, 위력에 의한 성폭력 상황을 다루며 승리의 ‘속물성’을 내세워 웃음을 유발하려 한 제작진의 접근은 결코 웃어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버닝썬 사태는 그동안 우리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거나 허구라 여겼던 일들이 현실의 불의와 직접 맞닿아 있었음을 외면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한국 예능에서 허용되고 권장된 것
넷플릭스 제공 |
〈YG 전자〉에서는 대마초 흡연, 향정신성의약품 반입 등 약물 문제를 일으킨 소속 가수가 유독 많아 ‘약국’이라는 오명을 얻은 YG를 ‘셀프 디스’하며 소변검사와 도핑 테스트 에피소드를 다루기도 했다. 이는 JTBC <아는 형님>에 출연한 승리가 굳이 ‘마리화나’를 연상시키는 말장난을 하고, 공연 준비 중 몸이 아픈데도 지드래곤 때문에 병원에 가지 못한 사연을 털어놓으며 “내가 그 뒤로 약을 안 해!”라는 의미심장한 멘트를 던져 호응을 얻은 유머 코드의 연장선에 있다.
이처럼 ‘쿨한’ 농담이 반복되면서 ‘약국’은 오명이 아니라 수위가 조금 높은 별명쯤으로 의미가 희석되었지만, 최근 승리는 빅뱅 멤버 중 세 번째로 마약 검사를 받았다. 그래서 승리가 남긴, 혹은 승리를 둘러싼 농담들은 그동안 한국 예능에서 무엇이 허용되고 권장되었는지에 유의미한 참고가 될 것이다. <아는 형님>에서는 숙소에 승리의 이름이 적힌 채 남겨진 외장하드가 이른바 ‘야동’으로 가득했다는 주제의 농담이 한참 이어졌다. 함께 출연한 아이콘의 멤버가 “배우별로 분류되어 승리의 이상형을 다 알 수 있었다”고 폭로한 것처럼, 불법 음란물은 ‘야동’이라는 가벼운 뉘앙스의 단어 뒤에 숨어 남성 출연자들의 공통 화제로 거리낌 없이 오르내린다. 마치 평범한 취미나 취향을 이야기하는 듯한 이 과정에서 포르노의 폭력성, 여성의 성적 객체화, 수많은 불법 촬영물이 ‘야동’이라 통칭되며 유통되는 현실이 지워지지만, 한국 예능은 오랜 관성에 따라 “진지 빨면 귀가 조치”시킬 기세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고민을 외면해왔다.
성평등 감수성 부재, 경고와 징계
'섹션TV 연예통신' 화면 갈무리 |
그러나 지난 2월 여성가족부에서 발간한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 개정판처럼, 방송 제작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에게 최소한의 성찰과 사회적 책임감을 기대하는 변화의 물결은 이미 시작되었고 이 흐름에서 출연자 또한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8월 tvN <짠내투어>에서 승리는 초대 손님인 구구단의 세정에게 맥주병을 건네며 남자 다섯 명 중 호감 가는 상대에게 술을 따르라고 말했다. 대본이 아닌 승리의 즉흥적인 발언이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해당 장면이 성희롱을 정당화할 우려가 있고, 방송사 자체 심의 과정에서 지적했음에도 이를 여과 없이 방송해 제작진의 성평등 감수성 부재를 드러냈다고 판단해 ‘경고’와 ‘해당 방송 프로그램의 관계자에 대한 징계’ 등을 결정했다. 김종훈 CP(책임PD)는 “예능 PD들이 재미에 대한 욕심 때문에 사회의 트렌드나 양성평등의 가치를 깜빡 잊을 때가 있다. 이번 기회에 크게 반성하겠다”고 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들은 승리에게도 성평등 감수성 부재 문제를 공유하도록 요구했다. 어쩌면 이는 하나의 뚜렷한 신호였는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그냥 지나쳤을지 모를 장면에 시청자가 민원을 넣고, 불과 2년 전만 해도 여성이 한 명도 없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여성들의 목소리가 들어가고, 방송 프로그램 제작진이 과오를 통감할 수밖에 없을 만큼 세상이 달라졌다는 신호. 하지만 승리에게는 이 신호가 전달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승츠비’의 세계는 지금 무너지는 중이다.
YG엔터테인먼트 제공 |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의 제안
[방송의 성평등 감수성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연상시키는 ‘영계’ ‘꿀벅지’, 남성의 외모를 우열의 문제로 다루는 ‘180㎝ 미만 루저’는 방송에서 사라져야 할 단어입니다.”
지난 2월 여성가족부가 제작·배포한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이하 ‘성평등 안내서’)의 일부 내용이다. 2017년 4월에 펴낸 ‘양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를 개정·보완한 것이다. 방송 제작자가 성평등한 시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 안내용 자료다. ‘성평등 안내서’는 프로그램 주제 선정에서부터 성평등 관점 반영, 남성과 여성을 균형 있게 대표, 성폭력·가정폭력 정당화 지양, 성차별적 언어 사용 자제 등을 원칙으로 제시했다.
‘성평등 안내서’에서는 방송에서 보이는 외모지상주의의 문제를 지적한다. 이 문제를 부록 ‘방송 프로그램의 다양한 외모 재현을 위한 가이드라인’에 세밀하게 담았다. 출연자를 외모를 중심으로 소개하고 결국 아름다운 사람이 선택된다는 신화를 만드는 한 연애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을 예로 들었다. 방송 출연자들의 외모를 비교하며 특정 외모를 신화화하거나 희화화하는 등의 연출도 꼬집었다. 2018년 전파를 탄 한 드라마에서 잘생긴 남자 주연배우가 등장할 때 등 뒤에서 후광을 비추거나,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성 출연자에게 ‘여신 강림’이란 자막을 넣는 연출이 그 예다.
‘성평등 안내서’는 혐오와 차별 없는 성평등 방송을 위해 제작 가이드(지침)를 제안한다. 여성은 토론·운동·모험에 부적합하다거나 남성은 가사·육아에 부적합하다는 등 성별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반영돼 있지 않은지 점검한다. 프로그램 기획 의도에 성형을 부추기거나 외모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외모지상주의 가치가 반영되었는지도 살펴본다. 여성 출연자는 유독 외모를 기준으로 삼아 섭외한 건 아닌지 점검한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최지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