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눈, 안개, 유리창을 좋아한 사진가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
사울 레이터 지음, 조동섭 옮김/윌북·2만원
흐릿한 물체, 유리나 거울을 통해 겹겹이 발생하는 반영과 투영 속의 거리, 마네킹처럼 보이는 사람, 회화에서 잘라내온 듯한 풍경,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순간. 비현실적인 원근법, 때로는 일본 목판화 우키요에를 떠올리게 하는 간결한 구성. 이런 특징을 가진 사울 레이터의 사진집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 한국어판이 나왔다.
사울 레이터(1923~2013)는 미국 피츠버그의 독실한 유대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아들을 라비(성직자)로 키우고 싶어했지만, 레이터는 1946년에 화가가 되기 위해 뉴욕으로 떠났다. 유진 스미스의 조언에 따라 사진도 찍기 시작했고, 당시의 주류 사진계에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컬러사진을 이미 1948년부터 시작했다. 나중에 컬러사진의 아버지라고 불리게 되는 윌리엄 이글스턴이 1965년이 되어서야 실험적으로 컬러를 시도하게 되는 것과 비교하면 레이터의 컬러사진이 얼마나 혁신적으로 앞선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는 그 무렵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뉴욕에서 살았고, 패션잡지에 실리는 상업사진에 주력했을 뿐 작품 발표나 사진집을 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진을 시작한 지 60년 만인 2006년에 독일의 출판사 ‘슈타이들’의 대표가 뉴욕에 왔다가 사울의 사진을 접하고 첫 사진집 <초기 컬러작품>(Early Color)이 나오면서 뒤늦게 세상 사람들이 사울 레이터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무제, 1952년. |
이 책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엔 그가 찍은 패션, 컬러, 흑백사진부터 그가 그린 회화 작품까지 230점이 골고루 들어 있다. 또한 그가 남긴 어록도 새길 만하다.
“내 사진이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의 공간에서 미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은 타당하다. 사람들이 미를 추구하기 위해 저 멀리 떨어진 동화의 나라까지 갈 필요가 없다. 요즘 같은 시대에선 어리석음, 비참함, 무례함…. 이런 것들이야말로 숙독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2009년 인터뷰) 무엇을 찍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다.
그는 빛보다 비, 눈, 안개, 거울, 유리창을 좋아했다. “나는 유명한 사람의 사진보다 빗방울로 덮인 유리창이 더 흥미롭다.” 어떻게 찍는지에 대한 답이다.
눈, 1960년 |
그는 2009년 한 잡지와 인터뷰에서 “나에게 (사진과 관련된) 철학은 없다. 다만 카메라가 있을 뿐”이라고 했다. 책에는 이런 대목도 나온다. “레이터의 현상 조수가 지쳐서 말한 적이 있다. ‘우산은 이제 그만 하세요!’ 그 말에 레이터는 간단히 대꾸했다. ‘나는 우산이 정말 좋아!’” 사진철학에 대한 그의 답이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사진 윌북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