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화해 위한 헌신적 부성애…과연 누구의 판타지일까
황진미의 TV톡톡
<하나 뿐인 내편>(KBS2)
노인 발언권 큰 삼대가 한 집에
중년 로맨스·출생의 비밀 등 설정
충성도 높은 연령층 기호에 맞춰
속물적 모성애·절절한 부성애
신데렐라형 결혼과 가족 반대 등
굳어진 시청률 공식 그대로 사용
주말드라마 <하나 뿐인 내편>(한국방송2)의 최고 시청률이 40%를 찍었다. 평일드라마 시청률이 10%를 넘기도 힘든데, 얼마나 재미가 있기에? 하지만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수년간 <한국방송2> 채널의 주말드라마 시청률은 언제나 높았으니까. <내 딸 서영이> <왕가네 식구들> <가족끼리 왜이래> <황금빛 내 인생>의 최고 시청률이 40%를 넘었다. 낮은 시청률을 보인 작품들도 있었다. <최고다 이순신> <참 좋은 시절> <파랑새의 집> <부탁해요 엄마> <아이가 다섯>의 최고 시청률은 30% 내외였다.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아버지가 이상해> <같이 살래요>는 최고 시청률이 35%를 오가는 ‘중박’ 작품으로 꼽힌다.
한쪽에서는 <미스터 선샤인>(티브이엔) 같은 대작이나, <붉은 달 푸른 해>(문화방송) 같은 치밀한 스릴러나,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티브이엔)처럼 완전히 새로운 소재의 드라마가 방송되지만, 비슷비슷한 가족드라마가 수년째 무슨 학기제마냥 1년에 두 편씩 방송되는 것도 놀랍거니와 이런 드라마의 시청률이 다른 드라마들의 3배 이상 나온다니, 무엇 때문일까.
수년째 똑같은 주말드라마
일단은 충성도 높은 노년층의 본방사수가 주효해 보인다. 즉 노년의 시청자들이 주말 저녁상을 물린 시간에 티브이(TV)를 틀어놓는 시청패턴이 굳어진 것이다. 익숙한 소재와 형식과 캐스팅일수록 시청률이 잘나온다. 조금 다른 시도를 하면 시청률이 떨어진다. 일례로 재혼부부의 아이들 키우기를 그린 <아이가 다섯>은 호평을 받았지만 시청률은 저조했다.
반면 시청률이 높았던 드라마들은 공통점을 지닌다. 우선 반드시 삼대가 함께 사는 가정이 나온다. 평일인데도 삼대가 둘러앉아 식사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실제로는 보기 드문 광경이다. 삼대가 함께 사는 집을 그리려다 보니, 뭔가 물려줄 게 있는 재벌 집이 나오거나 오랫동안 고집스레 기술과 가게를 유지해 온 장인이 등장한다. <내 딸 서영이> <황금빛 내 인생> <하나뿐인 내편> 등이 전자에 속하고,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가족끼리 왜 이래> <같이 살래요> 등이 후자에 속한다.
가정 안에서 노인의 발언권이 높고, 극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높다. 가령 <하나뿐인 내편>의 치매에 걸린 할머니는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주고 아들의 효도를 받는 인물로, 주요 사건사고의 주역이다. <황금빛 내 인생>의 노양호(김병기) 회장은 80살이 넘어도 실권을 쥐고 심지어 새장가를 간다. 이는 물론 현실의 반영이 아니다. 요즘 노인인구가 증가하고 있지만, 상당수의 노인들이 혼자 살거나 노인들끼리 산다. 자식들과 함께 살더라도 가정 내 노인의 입지는 강하지 않다. 온가족이 쩔쩔매는 효도를 받는 설정은 노인 시청자들의 소망충족적 판타지인 셈이다.
또한 중년의 인물들이 드라마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다. 표면상의 주인공은 연애와 결혼을 하는 자식들이지만, 진짜 주인공은 부모들이다. <하나뿐인 내편> <황금빛 내 인생> <아버지가 이상해> <가족끼리 왜이래> <내 딸 서영이>에서 실질적인 주인공은 모두 아버지들이었다.
이처럼 중·노년층의 비중이 높다보니, 불치병 설정도 자주 나온다. <월계수 양복점의 신사들>에서 이만술(신구)은 실명을 하고, <같이 살래요>에서 이미연(장미희)은 루이체 치매에 걸리고, <황금빛 내 인생> <가족끼리 왜 이래>에서는 암에 걸린다. 중년 로맨스도 빠지지 않는다. <가족끼리 왜 이래> <같이 살래요> <하나뿐인 내편>에서 중년의 주인공들은 로맨스를 꽃피운다.
그런데 중년의 남녀가 사뭇 다르게 그려진다. 아버지는 비록 사회적인 실패를 겪을지라도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왕가네 식구들> <황금빛 내 인생> <가족끼리 왜 그래>의 아버지들은 현명하고 관대하며 가족들 간의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발언권도 가장 강하다. 반면 엄마는 속물로 그려진다. <아버지가 이상해>의 오복녀(송옥숙), <왕가네 식구들>의 이앙금(김혜숙)은 흉물스러운 사고뭉치다. 이런 엄마에게 아버지는 진저리를 친다. <황금빛 내 인생>에서 최재성과 서태수는 계급은 달라도 속물적인 아내에게 질린 남편들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런 묘사는 가부장적이고 여성 혐오적이다.
신데렐라 구도의 결혼과, 부모의 결혼 반대도 여전하다. 가난하고 착한 여주인공이 재벌가 남성과 결혼하거나, 재벌은 아닐지라도 상당히 차이나는 결혼의 구도가 반복된다. <하나뿐인 내편>의 김도란(유이)이 전자에, <월계수 양복점의 신사들>의 나연실(조윤희)이 후자에 속한다. 이런 구도 속에서 ‘개념녀’가 형상화되며, 악녀와의 대립이 그려진다. 김도란은 나름 씩씩한 여성이지만, 자신의 욕망은 드러나지 않으며 가족에 대한 애착이 가득하다. 나연실은 며느리 되기를 자처하는 현모양처형 인물이다. 반면 악녀들은 자본주의적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가령 <왕가네 식구들>의 수박(오현경)과 영달처럼 남자를 돈으로 판단하고 허영과 사치를 일삼는 존재로 그려지거나, <월계수 양복점의 신사들>의 최지연(차주영)처럼 출세욕에 눈이 멀어 남자를 배신하는 여자로 그려진다.
출생의 비밀과 혈연에 대한 집착도 자주 나온다. <황금빛 내 인생>은 재벌가의 잃어버린 딸을 찾는 내용이, <같이 살래요>에서는 정자를 기증한 친부를 찾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유독 퇴행적인 ‘하나뿐인 내편’
<하나뿐인 내편>은 이런 모든 특징들을 가장 퇴행적으로 응축한 드라마다. 이전 드라마들은 가족주의적인 서사를 전개하면서도 가족이데올로기에 약간의 균열과 사보타주가 일어나는 것을 보여주었다. 가령 <내 딸 서영이>의 부모와 절연한 딸이나, <가족끼리 왜 이래>의 아버지의 불효소송이나, <아버지가 이상해>의 ‘졸혼 선언’과 <황금빛 내 인생>의 ‘가장 졸업 선언’ 이 그것이다. 하지만 <하나뿐인 내편>은 이런 균열의 지점이 전혀 없다. 씩씩한 여성이 본래 자신의 꿈과는 무관하게 신데렐라식 결혼을 하는 상황을 보여주면서, 결혼 후에도 그가 친부의 존재로 인해 시부모에게 무릎 꿇고 비는 상황을 연출해 보인다. 또한 극악한 어머니와 그리운 아버지를 극단적으로 대비시킨다. 소양자(임예진)는 도란을 차별과 학대로 키워놓고 자식이 장성하자 뭔가를 뜯어먹으려는 최악의 엄마이다. 반면 두 명의 아버지는 모두 기댈 언덕이다. 김동철의 부성이 현실적이라면, 강수일(최수종)의 부정은 판타지적이다. 드라마는 신파적인 사연을 경유하여, 언제나 곁에서 딸을 지켜주면서도 아버지로서의 권위는 일체 내세우지 않는 환상적인 아버지상을 주조해낸다. 이는 배우 최수종의 이미지와 결합하여 독특한 효과를 발휘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내 딸 서영이>와 <황금빛 내인생>을 거쳐 <하나뿐인 내편>에 이르기까지 왜 부정을 강조하며 부녀가 화해하는 것에 이토록 집착하는지 궁금증이 생긴다. 이는 현실의 곤궁하고 서먹한 부녀관계를 역으로 비추는 것은 아닐까. 페미니즘은 가부장적 질서에 대한 반기를 중요한 동력으로 삼으며, 가부장적 질서를 체현하고 있는 중년 남성의 권력에 대한 반감의 정서를 드러낸다. 서먹한 부녀 사이를 이어준다는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아빠를 부탁해>에 출현했던 ‘아버지들’ 중 상당수가 성추행에 연루되었듯이, 아버지와 딸의 화해는 집안 안팎에서 딸 혹은 ‘딸 같은 여성’을 착취해온 아버지들의 원죄로 인해 불가능한 기획이 되어버렸다.
드라마 속 다정하고 헌신적이며 심지어 일체의 권위도 내려놓은 아버지는 누구의 판타지일까. 딸들과 화해하고 딸의 이해와 사랑을 받고 싶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마초-한남’ 아버지의 판타지가 아닐까. 여러모로 퇴행적이고 변태적인 드라마이다.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