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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라오스 주민들을 울렸나

Weconomy | HERI의 눈


정부가 ‘민관협력’ 우수사례 꼽은 라오스 댐

전력은 태국에 수출, 국내 기업은 이익 챙겨

주민은 두 차례 이주당하고 댐 붕괴 피해까지

국제사회, ‘구속성 원조’ 비판하는 목소리 높여

누가 라오스 주민들을 울렸나

2011년 12월7일. 당시 기획재정부는 보도자료 하나를 내놓았다.


“(…)이번 사업을 계기로 민관협력을 통한 우리 기업의 해외 대규모 인프라 사업 진출이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며, 금번 사례와 같이 우리 정부가 대외협력기금을 통해 측면지원하는 민관협력(PPP) 사업 방식은 더욱 확대될 것이므로 해외진출을 모색하는 우리 기업들은 좀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가 라오스 정부와 메콩강 하류 세피안-세남노이 댐 개발을 위한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제공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는데, 사업의 시공은 에스케이(SK)건설이, 운영은 한국서부발전이 향후 27년간 맡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4쪽짜리 보도자료는 유상원조로 지구촌 이웃도 도울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우리 기업이 시공을 맡아 이익도 낼 수 있으니 ‘1석4조’라며 온통 칭찬 일색이었다. 앞으로 이처럼 ‘바람직한 방식’을 꾸준히 늘려갈 것이라는 강한 의지가 행간에 묻어나왔다.


하지만 이 보도자료가 말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건설 예정지의 주민과 환경은 어떻게 되는지다. 메콩강 일대는 동·식물은 물론이고 어류 자원까지 풍부한 천혜의 보고로, 수많은 사람들이 대대로 메콩강에 물줄기에 기대 농사와 채집, 어업 등으로 생계를 이어오고 있다. 그로부터 약 6년 반의 세월이 흐른 지난 23일. 전 세계는 당시 보도자료가 말하지 않았던 ‘또 하나의 진실’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소 보조댐이 붕괴돼 현재 6600여 가구가 대피 상태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만 24명에 이르고 실종자도 100여 명이나 된다. 댐 붕괴로 쏟아진 물이 국경을 맞댄 캄보디아까지 덮치면서 2차·3차 피해도 우려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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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는 고스란히 현지 주민에게 전가


이번 세피안-세남노이 댐 붕괴 사고에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있다. 바로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거대 자본과 정부가 개발 이익을 챙겨가는 대신, 개발로 인한 위험은 고스란히 힘없는 지역주민에게 전가되는 전형적인 ‘사회적 재난’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이다. 설령 공사를 맡은 에스케이건설의 주장대로 시공상 결함이 적고 이례적인 폭우로 인한 자연재난이라고 해도, 한국·태국·라오스 등 댐 개발과 관련된 나라들의 정부와 기업의 책임이 완전히 면제되는 건 아니다. 세피안-세남노이 댐 개발사업은 인프라 사업 수주에 뛰어든 에스케이건설은 물론이고, 되갚을 의무가 있는 유상원조자금을 국내 기업의 진출 발판으로 삼은 한국 정부, 싸고 안정적 전력 공급을 원한 태국 정부, 수력발전을 통해 빠른 경제성장을 원한 라오스 정부의 이해가 딱 맞아떨어진 결과다. 생태계 파괴와 대규모 이주로 인한 고통은 오롯이 해당 지역 주민들의 몫으로 떠넘겨졌을 뿐이다.


우려의 목소리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전 세계 하천을 중심으로 한 개발이 지역사회 및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감시하는 시민단체인 ‘인터내셔널리버스’(1985년 창설)는 댐 개발과정을 꾸준히 기록하면서 한국 측에 주민들의 목소리를 전달해왔다. 이 단체는 “개발공사를 막무가내로 진행하지 말고 사업 범위, 착공과 준공 시점 등 계획, 주민이 받을 사회적·환경적 영향과 그에 따른 보상이 어떻게 되는지를 설명해달라”고 수차례 요청했다. 하지만 개발을 맡은 한국 측의 대응은 미흡했다. 김용환 수출입은행장(당시)은 19대 국회 시절이던 2013년 국정감사에서 “환경영향평가는 대외비 사항”이라며 소극적인인 태도로 일관하다, 김현미 당시 국회의원(현 국토부장관)으로부터 “수천 명 현지 사람들한테 피해를 주고 우리 기업만 이익을 가져가는데 투명성과 직결된 사안을 공개하지 않으면 4대강과 뭐가 다르냐”는 질타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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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익 명분 내건 개발협력 사업 되돌아볼 때


앞서 언급한 기재부 보도자료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간 우리 정부는 유상원조를 국내 기업의 해외진출을 돕는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 2017년 정부가 발간한 ‘공적개발원조(ODA) 백서’에도 “기업이 개발도상국 현지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동시에 해당 지역사회의 삶의 질 개선과 지속가능한 개발에 기여하는 전략적 사회공헌을 추구하는 형태로 발전했다”고 쓰여 있다.


정부가 국내 기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행위를 무조건 비판적인 잣대로만 보는 건 옳지 않다. 문제는 개발협력사업의 우선순위가 바뀌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데 있다. 국제사회에서도 공여국 기업의 진출을 조건으로 제공되는 이른바 ‘구속성 원조’가 원조의 질을 떨어트리고 부정부패의 원인이 된다며 지양하는 분위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협력위원회(DAC)는 절반에 이르는 구속성 원조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며 이 비율을 낮출 것을 꾸준히 권고하고 있다.


이번 세피안-세남노이 댐 붕괴 사고를 계기로 시민단체 일각에서도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 특히 국익을 명분으로 내건 개발협력 사업 자체를 근본적으로 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참여연대·발전대안 피다·환경연합 등은 25일 ‘한국 유상원조에서 벌어진 참사, 한국 정부와 기업 책임 회피할 수 없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강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이사는 “철저한 진상규명과 복구 지원, 해외투자 가이드라인·대외경제협력기금 사용 방식 등 국내 제도 개선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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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나라’의 재난 아닌 ‘우리’의 민낯 살펴야


정부 뿐 아니라 국내 대기업의 사회적책임도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올랐다. 더욱이 시공을 맡은 기업이 에스케이그룹 계열사란 점도 관심거리다. 최태원 에스케이그룹 회장이 평소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것이 기업의 책무”라고 강조해온 터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한 국제 비영리단체 활동가는 “에스케이건설이 자신들의 책임을 축소하고 있지는 않는지 한국내 입장 발표도 예의주시하며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런 식의 개발사업이 지금 이 순간에도 메콩강 일대에서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한국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역시 라오스 인프라 개발을 ‘호재’로 여기는 건 마찬가지다. 자국 기업의 진출을 돕기 위해 정부 차관을 제공하는 것도 닮은꼴이다. 1960년대부터 수력발전을 통한 전력생산이 시작된 메콩강 일대엔 2015년 기준으로 120개 소규모 댐이 지류에 들어서 있고 메콩강 하류지역엔 대규모 댐 11곳이 세워질 예정이다. 라오스 정부는 오는 2030년까지 댐 88개를 더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둔 상태다. 대부분이 한국과 중국 등이 투자해 태국과 베트남에 전력을 파는 사업구조를 띠고 있다.


“전에도 가난했지만, 살면서 이렇게 고통스럽고 배고팠던 적이 없었다.” 댐 개발로 오랜 터전을 잃은 이주민들이 인터내셔널리버스에 전하는 이야기다. 이들이 오래도록 강과 숲에 의지해 살아가던 마을은 하루 아침에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있다. 공동체도, 자연도 빼앗긴 채 정착촌으로 밀려난 이들은 근처 커피 농장에서 커피를 수확하는 등 일용직 노동자로 생계를 유지한다.


이번 사고는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 하나를 던져준다. 우리는 과연 누구의 희생을 딛고 풍요를 누리고 있는가. 메콩강 일대에서 오랜 기간 연구와 감시 활동을 해온 독립연구자 브루스 슈마커는 <한겨레>와 에스엔에스(SNS) 메세지를 이용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거대 재벌인 에스케이건설이 마음만 있다면 충분히 보상하겠다 나설 수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껏 개발 과정에서 파괴된 메콩의 아름다운 자연, 어마어마한 생태계, 거기 살던 사람들의 일상, 생명, 공동체를 보상할 방법이 있기는 할까요? 그게 중요하긴 한가요?”


박선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원 s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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