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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과 스토리지가 하나 되는 그 날. 유니버설 메모리의 꿈

램과 스토리지가 하나 되는 그 날.
메모리에는 계급이 있다. CPU와 한몸이 되어 초고속으로 정보를 담아두는 값비싼 SRAM 캐시, 그리고 이보다는 싸고 느리지만, 그래도 비싸고 충분히 빠른 DRAM. 그리고 느리고 수명제한이 있지만,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를 보관하는 저장공간 NAND 플래시 메모리까지.

이렇게 계산을 하거나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공간이지만 전원이 꺼지면 사라지는 램, 그리고 프로그램이나 데이터를 담아 두는 저장소인 스토리지로 구분되는 것이 상식이었다. 컴퓨터 사양은 예컨대 8GB 램에 256GB 스토리지와 같은 구성이 되는데, 컴퓨터를 느려지게 하거나 답답하게 만드는 것은 대개 램의 압박 탓이다. 램값이 금값이다 보니 무한정 늘리 수는 없다. 한정된 비용으로 램과 스토리지를 적절히 조율하는 것이 컴퓨터를 고르는 교양이었다.

컴퓨터는 해마다 빨라진다. 여러분의 첫 컴퓨터를 떠올려보자. 저장공간 용량은 얼마였던가. 모르긴 몰라도 아마 지금 사용 중인 램 용량이 처음 구매한 컴퓨터의 저장공간을 뛰어넘은 이들이 많을 것이다. 분명히 언젠가는 지금 저장공간 용량에 맞먹는 예를 들면 256GB의 램을 태연히 쓰는 날도 곧 찾아올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를 기다리지 말고 지금 그냥 256GB를 메모리로 쓸 수는 없을까 생각해보는 것이 공학적 사고다. 만약 메모리의 모든 계급적 역할 구분이 사라지고 단 하나의 메모리 공간에서 계산도 저장도 다 가능하다면 어떻게 될까?

소프트웨어는 갑자기 수십 배로 늘어난 메모리 공간에 자기 작업에 필요한 모든 데이터를 쌓아두고 계산하고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예전처럼 비좁은 램에서 어떻게든 해보려고 이리저리 데이터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일도 사라질 것이다. 바로 꿈의 유니버설 메모리다.

이제 그런 메모리를 만들면 된다. 문제는 늘 어떻게 만드느냐에 있다. 우선 플래시 메모리가 유망하다. 램과 비교하면 용량 대비 단연 저렴하다. 게다가 불휘발성(NV, Non-Volatile), 즉 전원이 꺼져도 되고, 램처럼 전력 낭비가 심하지도 않다. 하지만 속도와 수명이라는 약점이 있다. 램처럼 빠르지만 동시에 전력 낭비가 심하지는 않고, 플래시 메모리처럼 전원이 꺼져도 저장되어 있고 용량도 크지만 동시에 저렴한 꿈의 차세대 메모리를 기다려야만 했다.

3D XPoint(3D 크로스포인트, 인텔은 옵테인이라는 상품명으로 출시)도 비슷한 꿈을 꾼 차세대 메모리 중의 하나였다. 올해부터 램 슬롯인 DIMM 슬롯용도 나올 예정이고, 지금도 설정으로 램처럼 쓸 수도 있다지만 여전히 DRAM의 속도는 내고 있지 못하고 값도 비싸다. 속도도 예상과는 달리 일반 NAND 플래시 메모리보다 몇 배 빠른 수준. 물론 엄청난 속도이지만 시장이 실망한 것도 당연하다.

이렇다 보니 과연 유니버설 메모리의 꿈이 가능할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NVDIMM 등 차세대 DDR5 DRAM 규격은 램을 꽂던 소켓에서 플래시 메모리가 꽂히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 일반 램과 NAND 플래시를 한데 섞는 모양새다. 이처럼 유니버설 메모리의 꿈은 시들지 않는다.

차세대 메모리의 꿈은 컴퓨터 아키텍쳐나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방식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수백 TB의 초거대 메인 메모리를 다루고 싶은 욕망은 그치지 않는다. 이것이 힘들기에 거대 인터넷 기업은 시스템을 이리 엮고 저리 엮어 거대한 서버 군단을 만든다. 내년에 CPU가 좋아지리라는 것은 예측 가능한 일이지만, 내년에 메모리가 풍족해 지리라는 희망은 생각 같지 않았던 것이 그간의 역사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나저나 충분히 빨라진 플래시 메모리가 램처럼 쓰이는 유니버설 메모리가 찾아온다면, 그다음에 벌어질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충분히 빨라진 네트워크 덕에 클라우드가 메모리와 하나가 되는 진정한 유니버설 메모리의 세계일 것이다.

미래의 컴퓨터에게 하드디스크와 같은 저장공간은 과도기의 추억이 될지도 모른다. 컴퓨터에는 저장능력까지 갖춘 메모리만 한두 장 꽂혀 있고, 저장공간이란 당연히 클라우드라고 생각하는 근미래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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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hyun
채널명
김국현
소개글
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