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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는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되는 이유

대화는 언제나 어렵습니다. 상대의 기분을 살펴가며 ‘지금 무슨 말을 해야 하나’를 순간순간 판단해야 하니 대화는 자동차를 운전해 꼬부랑 고갯길을 올라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 말 저 말 쉽게 내뱉으면 대화는 끊어지고 사고 나기 십상입니다. 무엇보다 누구와 대화하느냐에 따라 그 까다로움의 정도가 달라지는데, 제일 버거운 대화 상대는 뭐니 뭐니 해도 사춘기 청소년 자녀입니다.


정신과 의사인 저도 마찬가지로 어렵습니다. 사춘기 딸이 가끔은 버릇없이 구는 것 같아 따끔하게 야단을 쳐야겠다 싶다가도 하루 종일 얼마나 공부에 시달렸기에 저렇게 예민해졌나 싶어 그냥 참고 넘어갈 때가 많습니다. 잠도 푹 자고 자기가 좋아하는 책도 읽고 나면 딸은 기분이 좋아져서 유쾌하게 재잘댑니다.


이럴 때 보면 사춘기가 무서운 게 아니라 공부에 지쳐서 자기도 모르게 짜증 부리는 것이구나 싶어 안쓰럽습니다. 어른도 일에 시달리면 날카롭게 변하기 마련인데 공부에 짓눌린 청소년은 오죽하겠습니까. 따지고 보면 중학교 2학년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는 말이 나온 것도 이 무렵부터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공부의 틀 안으로 아이들을 본격적으로 밀어넣기 때문일 겁니다.​​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우울한 자녀를 어떤 말로 위로해주면 좋을까요?

공부가 힘들다는 딸에게 “그깟 공부 중요하지 않아”라고 하면 마음이 편해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공부 욕심이 있는 자녀라면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을 부모가 몰라준다며 서운하게 여깁니다. 그렇다고 반대로 “힘들어도 더 열심히 해봐. 넌 잘할 수 있어”라고 하면 응원으로 받아들일까요? 긍정적인 마음을 불어넣으려고 한 말이 오히려 마음을 무겁게 만들 공산이 큽니다. 그렇잖아도 지치고 힘든데 더 잘하라고 하니 자녀 입장에서는 더 큰 압박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공부에 지친 자녀를 위로할 때 다음 순서를 지키면 좋겠습니다

스트레스받고 우울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기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길 원합니다. 그러니 대화의 출발은 상대의 솔직한 감정을 언어로 정확하게 표현해주는 것입니다.

상담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언어로 대신 묘사해주는 것 자체가 치료의 효과를 줍니다. 상대가 그 감정을 갖게 된 이유와 결과를 판단하거나 유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읽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위로해주려 한 말이 오히려 부담을 주거나 상처가 되는 것도 이 첫 번째 단계 없이 곧바로 “힘내라, 별것 아니야, 넌 할 수 있어”라며 해결책을 성급하게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왜 그렇게 느끼는지 무엇 때문에 괴로운지에 대한 분석은 그다음에 하길 원합니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급하게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원하더라도 인정의 단계를 지나서 나중에 듣고 싶어 합니다.

학업 스트레스를 받는 자녀는 “그래, 네가 공부하느라 많이 힘들구나”라는 말을 첫 번째로 듣고 싶어 할 겁니다. 그다음이 “네가 무엇 때문에 괴로운지 조금 더 자세하게 말해줄래?”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빠(엄마)생각에는 이렇게 해보면 좋을 것 같아”라고 조언해볼 수 있겠죠.

자녀가 지금 경험하는 고통이 무슨 의미인지 해석하려는 시도는 가장 마지막 단계에 오면 좋습니다. 쉽게 말해 “학창 시절에 공부하느라 괴로워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게 너를 성장시켰다는 걸 깨닫게 될 거야”라는 의미 부여는 맨 마지막에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말부터 먼저 꺼내면 ‘꼰대’ 소리부터 들을 겁니다.

아무리 위로하려고 해도 잘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대화의 순서나 표현이 서툴러서 그런 것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난 말과 마음속 진심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자식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아요. 좋은 대학 가야 한다고 압박하지도 않아요”라고 해놓고 본심은 ‘내 아이가 공부를 더 잘했으면 좋겠다. 명문대에 진학하면 좋겠다’라면, 어떤 말로 포장해도 결국엔 본심이 반드시 자녀에게 전달되기 마련입니다.

저도 가끔 딸에게 “공부 잘하는 것보다 네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으면 좋겠어”라고 녹음기 틀어놓은 것처럼 말합니다. 하지만 딸이 좋은 성적 받아왔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걸 보면서 공부를 잘하면 좋겠다는 욕심이 내 안에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이럴 때는 부모부터 자기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봐야 합니다. ‘혹시 내 욕심이 아이와의 대화를 가로막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마흔의 문제에는 선명한 해법이나 단순한 원리가 없습니다. 타인이 거쳐간 길은 그것이 아무리 좋고 옳아 보여도 절대로 내것이 될 수 없으니까요. 마흔의 마음 공부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길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마음 공부가 필요할까요?

바로, 마음 공부의 핵심은 상실의 고통을 끌어안고 전환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곧 마흔이 되는 서른에게, 동시에 마음은 아직도 서른에 머물러 있는 마흔을 위한 이야기를 글에 담아두었습니다.

마흔의 길목, 없어질 것만 보지 마세요.

당신에게 아직 남아 있는 소중한 것이 더 많으니까요.​

참조 : 마흔, 마음 공부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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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1초를 아껴주는 정성 | 도서출판 길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