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날 출시해 젤다를 위협했던 '거위' 게임 해봤습니다
'언타이틀드 구즈 게임' 대기화면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오랜 역사에 걸쳐 인간에게 간과 털을 약탈당했던 거위의 대반란을 그린 ‘언타이틀드 구즈 게임’이 지난 20일 출시됐다. 9월 초, ‘이름없는 거위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염소 시뮬레이터’ 못지 않은 기상천외함이 특징인 게임으로 소개한 바 있다.
이 게임은 올해 최고 기대작 중 하나다. 개발사 유튜브 채널에 달린 댓글을 살펴보면 “’젤다의 전설’이 운이 없다. 이 게임과 같은 날 출시라니”라는 댓글이 25일 현재 추천 366개, 비추천 0개를 기록 중이다. 무려 ‘젤다의 전설’을 위협(?)하는 작품이란 얘기다. 이런 멋진 게임이 착한 가격 1만 5,000원이라니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과연 올해 GOTY를 휩쓸 게임인지 직접 플레이 해봤다.
사탄도 놀랄만한 거위의 악랄함
'언타이틀드 구즈 게임' 소개 영상 (영상출처: 개발사 공식 유튜브 채널) |
‘언타이틀드 구즈 게임’은 한국어를 공식 지원한다. 캐릭터 음성 대화가 없고, 텍스트도 많지 않아 번역에 많은 시간이 드는 게임은 아니지만, 한 눈에 봐도 가지런한 한글 글꼴은 현지화에 많은 신경을 기울였다는 느낌을 준다.
게임을 시작하면 풀숲에서 머리만 내밀고 있는 거위가 등장한다. 풀숲에서 나와 불구대천 원수인 인간들이 거주하는 마을까지 이동하면서 조작법을 익히게 된다. 키보드와 마우스 그리고 게임패드 모두 사용 가능하다. 다만, 키보드와 마우스보다 게임패드가 좀 더 조작감이 좋기에 패드를 권한다.
거위가 된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달리기, 꽥꽥 소리지르기, 날개 펼치기, 고개 숙이기, 부리 사용하기 등이다. 단순한 동작이지만, 이를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난장판의 결과가 달라진다.
풀숲에서 머리만 내밀고 있는 거위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조작법을 배우며 대장정이 시작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덤불을 지나고 개울을 건너면 민가가 보인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난장판을 벌일 시간이다. 정원, 상가, 거주구역, 음식점 등 다양한 공간이 있고 이들은 하나로 연결돼 있다. 그리고 거위에게는 공책에 가지런한 글씨로 적힌 ‘할 일’ 목록이 있다. 공책 한 페이지에 ‘할 일’이 대략 5~8가지가 적혀 있으며, 페이지 마지막 줄에 있는 목표를 완수하면 추가 미션이 열린다.
‘할 일’ 내용을 살펴보면 사탄조차도 고개를 저을 정도다. 어린아이를 공중전화 부스 안에 가두기, 애지중지 키운 장미를 잘라버리게 하기 등은 그나마 평범해 보일 정도다. 타이밍에 맞춰 의자를 빼 앉으려던 노인을 엉덩방아를 찧게 만든다거나, 거위 소리에 놀란 정원사가 망치로 자신의 손을 내려치는 모습을 보면 거위라는 조류에 대한 공포심이 생긴다.
망치에 손을 찧어버린 정원사 (사진: 게임메카 촬영) |
노인공경 따위는 없는 거침없는 거위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염소와는 다르다! 난장판도 전략적으로
동물이 인간 마을을 난장판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이 게임은 ‘염소 시뮬레이션’을 단순히 모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언타이틀드 구즈 게임’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높은 ‘전략성’이다. 일반적으로 조류는 머리가 나쁘다고 알려져 있는데, 장난을 잘 치는 우수한 거위가 되기 위해서는 똑똑해야 한다.
‘할 일’ 목록에는 부리만 쓰면 되는 ‘정원사의 열쇠 훔치기’처럼 간단한 것도 존재한다. 그러나 대다수 장난은 두 가지 이상 행동 혹은 장난을 조합해야 성공할 수 있다. 또한, 입장할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날수록 까다로운 ‘할 일’이 주어지기에, 플레이어는 머리를 싸매고 이를 성공시킬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주어진 '할 일' 대부분은 치밀한 연계가 요구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예를 들어 ‘정원사가 밀짚모자를 쓰게 만들기’라는 일이 있다. 이 정원사는 탈모가 있어 항상 모자를 쓰고 있으며, 이에 대한 집착이 상당하다. 이러한 정원사가 평소에 쓰던 모자를 벗고, 밀짚모자를 쓰게 하려면, 전에 쓰고 있는 모자를 빼앗고, 벽에 걸린 밀짚모자로 정원사의 시선을 돌려야 한다.
그런데 정원사가 쓰고 있는 모자와 벽에 걸린 밀짚모자는 높은 곳에 있어 거위 키로는 닿지 않는다. 일반적인 방법으론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지만, 여러 장난을 ‘연계’하면 성공할 수 있다. 우선 정원에 있는 장미를 뽑거나, 농작물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서 정원사가 고개를 숙이게 만들어야 한다. 이후 모자를 빼앗고 열심히 도망쳐 정원사 시야 밖으로 모자를 떨어뜨려야 한다. 그 이후 정원으로 돌아와 벽에 걸린 밀짚모자를 지긋이 바라보면 정원사가 겁을 먹고 밀짚모자를 쓴다.
다른 예로는 점잖은 노신사의 슬리퍼를 벗기는 것이다. 그런데 일단 오른쪽과 왼쪽 슬리퍼를 벗길 수 있는 기회가 각각 찾아온다. 비결은 신사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이다. 유심히 보면 신문을 볼 때와 차를 마실 때 다리를 꼬는 방향이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각 행동을 할 때까지 기다려 슬리퍼를 벗길 수도 있지만, 찻잔을 빼앗아 신문에만 관심을 갖게 하거나, 신문을 빼앗아 차를 마시게 하는 식으로 원하는 행동을 유도하는 것도 가능하다.
큰 그림이 필요한 모자 바꿔 쓰게 만들기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신발 하나 벗기는 것도 머리를 굴려야 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이처럼 전반적인 과정을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생각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 이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이다. 특별한 목적 없이 마을 전체를 돌아다니며 인간들을 괴롭히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지만, 지혜를 짜내 치밀하게 설계하고 스스로 만든 시나리오에 따라 장난을 성공했을 때의 쾌감은 상당하다. 아울러 공략 방법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어서 전에 했던 ‘할 일’을 다른 방식으로 도전하는 것도 가능하다.
어떻게 이 게임을 즐기느냐는 유저에게 달렸다. 느긋하게 마을 전체를 돌아 다니면서 ‘할 일’과 추가 미션, 히든 미션까지 음미하며 즐겨도 되고, 단 4분 만에 엔딩을 확인할 수도 있다. 이미 완수한 ‘할 일’이라도 다른 방법을 찾아 인간을 괴롭힐 수 있기에 염소보다 머리 좋은 거위라고 말할 수 있다.
괴롭힘부터 이간질까지, 창의성 넘치는 장난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조류보다 못한 주민 NPC는 다소 아쉽다
다만, 머리 좋은 거위에 비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주민 인공지능은 아쉽다. 고차원적인 장난을 생각해내는 거위에 비해 주민들은 거위 울음소리 하나하나에 쉽게 놀라며, 적극적으로 쫓아내는 모습도 드물다. 심지어 밑이 훤하게 보이는 테이블 아래에 숨었는데, 어디로 숨었는지 못 찾겠다고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면 사람이 거위인지, 거위가 사람인지 헷갈릴 정도다.
장난을 치는 과정은 재미있지만 NPC들의 단순한 인공지능이 아쉬운 이유는 이 게임에는 게임오버가 없기 때문이다. 무슨 짓을 해도, 거위가 죽는 일은 없으며, 덕분에 기발한 장난을 생각해낼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하지만, 거위 생존이나 미션 성공을 위협하는 요인이 없어서 긴장감이 부족하다.
인간이 이걸 못 봅니다...(사진: 게임메카 촬영) |
다소 아쉬운 부분은 있으나 ‘언타이틀드 구즈 게임’은 ‘염소 시뮬레이터’ 못지 않은 기이함에, 깊은 전략성과 자유도로 남다른 개성을 드러낸 인디게임이다. 모두들 이 귀여우면서도, 치명적인 거위를 한 번씩 키워보는 것이 어떨까? 거위는 PC와 닌텐도 스위치로 만날 수 있으며, PC 버전은 에픽게임즈 스토어 기간 한정 독점으로 판매되고 있다.
게임메카 서형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