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음식 먹는 당신, 부끄럽지 않으세요?"
[이혁의 눈]
지하철 내 음식 섭취 민원 해마다 증가.. 타인 배려 없는 모습에 '골머리'
햄버거·라면·커피 등 음식 종류도 다양.. 뒤처리도 깔끔하지 않아 쓰레기에 '몸살'
"지하철에서는 음식물 단속 대상 아냐".. 해외서는 벌금 부과하며 강력하게 제재
# 직장인 A(36)씨는 며칠 전 출근할 때 지하철에서 특별한 경험(?)을 했다. 20대로 보이는 여성이 핫도그에 케첩까지 발라 먹는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A씨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않고 어찌나 맛있게 먹던지 놀랐다”며 “조금만 참으면 좋겠는데 굳이 사람이 많은 지하철 내에서 음식을 먹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회사에서 일을 마치고 퇴근한 B(32)씨는 지하철에 탑승하자마자 기분이 불쾌했다. 지하철 칸 안이 온통 음식물 냄새로 가득 찼기 때문이다. 주위를 살펴보니 젊은 커플이 햄버거와 콜라를 나눠 먹고 있었다. B씨는 옆 칸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이번에 커피가 쏟아져 끈적끈적한 바닥을 밟았다. B씨는 “지하철에서 먹는 음식 때문에 피해를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법적으로 강력한 제재가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지하철에서 햄버거·치킨·김밥 등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음식물을 섭취하는 사람들이 많다. 뒤처리도 깔끔하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사진=연합뉴스, 픽사베이 |
지하철 음식물 섭취 때문에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배고픈 건 이해하지만 이기적인 행동들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이다. 도시락, 피자, 치킨, 햄버거, 커피 등 섭취하는 음식물도 다양하다.
밀폐된 공간에서는 음식 냄새를 환기시키기 어렵다.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그들의 행동은 불쾌감을 준다. 음식물을 섭취하고 뒤처리가 깔끔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음식물 찌꺼기가 바닥에 흩어져 있어도 치우지 않고, 먹다 남은 음식물을 지하철 선반 위에 올려놓거나 쓰레기통에 버린다. 하지만 버스와 달리 지하철은 마땅한 제재 방법이 없는 상태다.
"지하철 음식물 반입, 단속 대상 아니고 법으로 제재할 수 없어"
서울교통공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전동차 내 음식 섭취 관련 민원 현황’은 2015년 218건, 2016년 233건이었으나 2017년 572건으로 증가하더니 지난해에는 1,249건으로 대폭 늘었다. 4년 동안 약 6배가 늘어난 수치다.
현재 지하철은 ‘여객운송약관’에 의거, 악취가 나거나 불결함을 주는 물품은 휴대 금지 사항이지만 음식물이라고 특정되어 있지 않다. 즉, 커피·햄버거 등 음식물은 단속 대상이 아니다.
지하철 음식물 섭취에 대해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현재 지하철 내 음식물 섭취를 단속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다”며 “지난해 버스가 음식물 반입 금지를 시행했을 때, 도시철도 운영 기관들과 회의를 했지만 강제적으로 제재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어 “지하철은 버스와 달리 음식물 규제를 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며 “진동이 심하지 않아 음식물을 흘리는 경우가 비교적 적다”고 덧붙였다.
서울교통공사는 음식물 섭취를 예방하기 위해 에티켓 홍보를 적극적으로 하는 방향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관계자는 “지하철 역사 및 전동차 내 LCD 모니터를 통해 음식물 섭취 관련 동영상을 상시 표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하철에서 음식물을 섭취하는 행위는 모두를 불편하게 한다. /사진=서울교통공사 동영상 캡처 |
방송 무시하고 타인 배려 실종.. 뒤처리는 '나 몰라라'
임산부 C(35)씨는 지하철에서 햄버거를 먹는 여성 때문에 힘들었다. 입덧이 심해 냄새가 역겨웠지만 전에도 한 마디 했다가 싸운 적이 있고, 서로 감정이 상할까 봐 참았다. 그러나 버티기 힘들어 민원을 넣었다. 몇 분 후 지하철 내에서 음식물 섭취하지 말라는 방송이 나왔지만 여성은 신경 쓰지 않고, 햄버거를 다 먹고 감자튀김까지 마저 먹었다.
C씨는 “방송을 무시하고 주위 시선도 신경 쓰지 않는 여성의 정신력이 정말 대단하다”며 “아무리 배가 고파도 최소한의 배려를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D(32)씨는 한 달 전 지하철에서 후각 테러를 당했다. 모녀가 양손에 핫바, 소시지, 커피 등 잔뜩 들고 와서 쩝쩝 소리를 내며 음식을 먹었기 때문이다. 조용히 먹는 것도 아니고 냄새가 심한데 모녀의 당당한 행동에 불쾌했다.
D씨는 “애가 어리면 이해하겠는데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딸과 중년의 엄마가 핫바와 소시지를 바꿔 먹기도 했다”며 “지하철 의자에 부스러기가 떨어졌는데 다 먹고 나서 태연하게 화장을 하는 모습에 소름 끼쳤다”라고 밝혔다.
이외에도 커뮤니티에서 비슷한 사례들을 찾을 수 있었다. “아저씨가 자리에 앉더니 컵밥을 먹었다”, “출근하는데 중년 남성이 서서 컵라면을 먹었다”, “중년 여성이 자리에 앉아 밥이랑 반찬을 무릎에 펼쳐놓고 도시락을 먹었다” 등 피해를 당한 글들이 잇따랐다.
지하철 역사 안에 있는 음식점들. 출근길에 사람들이 커피와 빵을 사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사진=이혁 기자 |
냄새나지 않으면 괜찮을까?.. 해외는 최대 70만원 벌금 부과하기도
음식물 냄새가 나지 않는다면 괜찮을까? 이 문제에 대해선 찬반이 엇갈렸다.
차수진(가명·34)씨는 “마개가 있는 음료수나 작은 비스킷 정도는 먹어도 괜찮다”고 주장했다. 차씨는 “냄새가 나지 않아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허기를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다”며 “뒤처리도 간편하기 때문에 이해해 주는 게 좋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영희(가명·36)씨는 냄새 유무에 상관없이 지하철에서의 음식 섭취 행위는 예절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김씨는 “냄새가 나지 않더라고 빨대로 음료를 빨아들이는 소리나 입안에서 음식물을 오물오물 씹는 소리는 귀에 거슬린다”며 “사람들이 북적북적 거려 서 있는 것조차 힘든데 굳이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지하철 역사 내 음식물 판매점이나 과자·음료수 자판기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냥 지나치려 해도 냄새가 나서 눈길이 가고, 배가 고프면 유혹 당하기 쉽기 때문이다.
한편,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홍콩은 지하철 내 음식물 섭취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데 적발되면 최대 약 30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대만은 벌금이 최대 70만원 이며, 싱가포르는 최대 42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하철역은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공장소다. 공공장소에서는 타인을 배려하며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예절이 필요하다. 즉, 지하철 음식물 섭취에 대해 법으로 강요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나에겐 맛있는 냄새일지 모르지만 타인에게는 불쾌한 냄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hyuk7179@fnnews.com 이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