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잡이'로 살기, 얼마나 불편할까? 돌아다녀봤다
#왼손잡이 #편견 #왼손
인류의 10%는 왼손잡이라는데..
[사진=픽사베이] |
저는 왼손잡이입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왼손을 쓰는 게 훨씬 편한 양손잡이입니다. 젓가락질과 연필을 쥐는 것 외에 모든 일상생활에서 왼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학교 선생님이 오른손을 쓰라고 가르치지 않았다면 지금쯤 왼손으로 젓가락과 연필을 쥐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왼손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TV에 출연한 유명인이 왼손을 사용하면 이상하게도 눈에 잘 들어오더군요. 이들을 보면 동질감이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저들도 나와 비슷한 불편함을 겪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기 때문입니다.
사실 평범한 일상생활을 하지 못할 정도로 불편한 것은 아닙니다. 정말 소소하고 작은 곳에서 불편함이 찾아오곤 하죠. 오른손에 맞게 설계된 가위를 왼손으로 사용하다 보면 손가락이 금세 저려온다든지, 새로 산 휴대폰 다이어리 케이스를 끼웠다가 왼손으로 열고 닫는 것이 불편해 바로 빼버린다든지 하는 정도입니다. 서울에 갓 상경했을 땐 왼손으로 교통카드를 찍은 채 오른쪽 지하철 개찰구를 빠져나가려다 쇠막대기에 배를 강타당한 뼈아픈(?) 기억도 있습니다.
언젠가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왼손잡이들이 생활 속 불편함을 토로한 글을 읽으며 엄청나게 공감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불편함은 왜 우리만 감수해야 하는지, 왜 우리는 쉽게 배려받지 못하는 것인지 의아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인류의 대략 10%가 왼손잡이라는데, 세상 모든 물건의 10%는 왜 왼손잡이용이 아닌걸까요? 대한민국의 왼손잡이 인구는 대략 250만명정도로 추정된다는데, 이들을 위한 왼손잡이 전용 물품은 과연 실생활에서 쉽게 만날 수 있을까요? 궁금한 마음에 직접 찾아나서보기로 했습니다.
"왼손잡이에요? 그냥 오른손용 기타 쓰세요"
[낙원악기상가 기타가게의 모습] |
오프라인 매장들을 먼저 둘러봤습니다. 가장 먼저 생각난 곳은 악기용품점이었습니다. 예전에 기타를 배우려고 시도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왼손기타를 구하려고 수소문했다 쉽게 찾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낙원악기상가의 S 기타가게에 방문해 직원에게 "왼손잡이인데, 왼손기타를 살수 있느냐" 물었습니다. 직원은 왼손기타가 있긴 하지만 오른손용 기타를 쓰는 편을 추천했습니다. 왼손기타를 찾는 사람들이 종종 가게를 방문하지만, 생산 자체가 잘 안되고 구하기도 힘들어 웬만하면 오른손 기타를 권한다고 하더군요.
[오른손용 젓가락 교정기] |
생활용품을 취급하는 잡화점도 방문해 봤습니다. 평상시 가장 큰 불편함을 느꼈던 '가위' 판매대부터 찾아가봤습니다. 대략 열 종류 정도의 가위 중 왼손잡이용 가위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대형 서점의 문구 코너에 방문해서야 겨우 일본제 왼손전용 가위 한 종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숟가락, 젓가락이 진열된 판매대에서 유아용 젓가락 교정기를 발견하고 꺼내봤습니다. 손에 잡히는 것은 모두 오른손용이었습니다. 끝까지 들춰봤지만 왼손용은 하나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온라인은 그나마 사정이 나았습니다. 포털 검색창에 '왼손잡이용'이라는 검색어를 넣어보니 각종 오픈마켓의 왼손잡이 물품 페이지가 결과로 떴습니다. 왼손잡이 전용 물품만 취급하는 카테고리가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왼손'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물품을 검색 결과로 제공하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골프장갑, 야구 글러브, 왼손용 재단가위, 각종 공구 등 생각보다 많은 제품이 있는 것을 보고 안도했습니다. 구입은 가능했으나 물품의 종류와 갯수가 턱없이 적은 것은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가위'를 검색했을 때 총 14만건의 결과가 나왔지만, '왼손 가위'로 검색하면 그 결과는 800건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문구용품 제조업체 피스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학생용 왼손 가위의 판매량은 오른손 가위의 35% 수준을 차지했습니다. 그런데도 이를 실제로 취급하는 소매 업체는 많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른 물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총 4만9000건의 골프채 검색결과 중 왼손 전용 골프채는 150건 정도에 그쳤습니다.
왼손잡이를 위한 나라는 없다?
자료를 찾다 재밌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지난 1999년 대한민국에 왼손잡이협회가 창설됐었다는 것을요. 그러나 아쉽게도 1년만에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협회는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소소한 고민을 토로하는 동호회의 성격이 강해 그 명맥을 오래 유지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영국에서 만들어진 왼손잡이 협회가 지난 1976년부터 매년 8월 13일을 '세계 왼손잡이의 날'로 정하고 왼손잡이 인권 신장과 인식 변화 촉구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모습과 비교됩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왼손잡이 전용 상점 / 사진=leftyslefthanded.com 캡쳐] |
비슷한 시기 등장한 왼손잡이 전용 온라인 몰 몇군데도 수지 악화를 이유로 금세 사라졌다고 합니다. 영국과 미국 등 해외에는 왼손잡이용 물품만을 취급하는 상점이 다수 존재하고, 온라인 몰도 활성화 된 사실과 비교하면 조금은 서글픈 일입니다. 일본에서는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대형 문구 업체가 주도적으로 왼손잡이 문구용품 제조와 판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변합니다. 서구에서는 흑인이 대통령이 되고, 같은 성별끼리의 결혼이 허용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사회 깊숙이 자리잡고 있던 편견들을 천천히 떨쳐가고 있는 중입니다. 왼손잡이를 보는 시선도 많이 변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와는 달리 지금은 왼손잡이 아이에게 굳이 오른손을 쓰라고 강요하는 일이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야심차게 왼손잡이 협회가 출범했던 20년 전과 비교해 실질적인 것이 많이 달라졌다고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뜻이겠죠. 오른손잡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듯, 왼손을 사용하는 사람도 당연히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들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날이 온다면 어느 가게에 방문해서든 아무런 어려움 없이 왼손잡이 물품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이혜진 인턴기자 sunset@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