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푸드’도 패션이다...구찌가 레스토랑을 오픈한 이유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한 장면. 주인공 오드리 헵번(홀리)가 티파니 매장을 들여다보는 모습. |
화려한 이브닝 드레스, 얼굴을 반이나 가린 큰 선글라스, 한 손에는 빵. 티파니 쇼윈도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는 오드리 헵번.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한 장면입니다. 예전에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티파니에서의 아침 식사를 꿈꿔봤을 텐데요. 이젠 꿈이 아니죠. 오래전에 실현이 됐으니까요.
2017년 11월 뉴욕 5번가 티파니 플래그십 스토어 4층에 문을 연 ‘블루 박스 카페’는 늘 예약이 꽉 차 있답니다. 민트 블루로 꾸며진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 사람들은 화려한 티파니 쥬얼리들과 인테리어에 황홀해지지요. 여기다 로컬 푸드로 만든 정통 아메리칸 식사, 뉴욕을 상징하는 시그니처 메뉴를 티파니 스타일로 재해석해 누구나 한 번 쯤은 찾고 싶은 명소가 됐습니다. 고가의 티파니 쥬얼리에 비해 합리적인 메뉴 가격도 손님들의 소확행을 자극합니다.
◇명품이 푸드를 만났을 때
블루박스카페. 출처:티파니 홈페이지. |
티파니를 비롯한 명품 브랜드들이 카페와 레스토랑을 선보이며 명소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가방과 의류 중심에서 벗어나 라이프 스타일 전반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모습입니다. 명품 브랜드들이 만든 카페와 레스토랑은 단순 메뉴가 아닌, 브랜드의 정체성이 담긴 메뉴를 직접 개발해 기존 쇼핑 고객들의 구미를 당깁니다. 여기에 글로벌 투자 큰손들까지 가세해 명품 브랜드들의 사업 확장을 지지합니다.
인도 재벌 무케시 암바니가 이끄는 릴라이언스인더스트리즈는 2020년 미슐랭 스타를 획득한 ‘엠포리오 아르마니 레스토랑’을 인도 뭄바이에 열었습니다. 뭄바이는 파리, 밀라노, 뉴욕, 도쿄, 뮌헨, 두바이에 이어 아르마니 레스토랑이 들어선 일곱 번째 도시입니다. 1998년 파리에 처음 문을 연 아르마니 레스토랑은 현재 전 세계에 20개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아르마니’라는 브랜드 정체성에 맞춰 세련되고 도시적인 느낌의 인테리어, 아르마니가 좋아하는 고품격 파스타는 일류 셰프의 손에서 명품의 맛을 풍깁니다.
카이로 엠포리오 아르마니 카페. 출처 : 아르마니 홈페이지 |
프랑스 루이비통은 2020년 2월 일본 오사카에 ‘르 카페 브이’를 오픈했습니다. 르 카페 브이는 루이비통의 첫 외식업 도전이었습니다. 화려한 신사이바시 중심에 위치한 매장은 유명 건축가 아오키 준과 피터 마리노가 공동 설계했고요. 메뉴는 프랑스와 일본의 풍미를 혼합한 퓨전으로 구성됐습니다. 오픈 키친이 내려다 보이는 테이블과 카운터 좌석, 초콜릿 브라운 일색의 다이닝룸, 여기에 다채로운 가구와 황동 칵테일바, 야외 테라스는 패션 미식가들의 성지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르 카페 브이는 도쿄 긴자에도 두 번째 일본 매장을 열어 고객들을 유혹합니다.
오사카 ‘르 카페 브이’. 출처 : 유튜브 캡처 |
구찌는 2018년 이탈리아 피렌체에 첫 레스토랑 ‘구찌 오스테리아’를 오픈했습니다. 미슐랭 스타를 받은 셰프 마시모 보투라와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만들어낸 초록초록한 느낌의 전통 이탈리안 레스토랑입니다. 이 레스토랑은 ‘구찌 가든’의 일부로, 식사하러 갔다가 자연스럽게 쇼핑과 전시관 관람으로 연결되게 기획됐습니다. 보투라는 이탈리아 모데나에 있는 미슐랭 3스타 식당 오스테리아 프란체스카나를 운영하며 2015년과 2016년 세계 최고의 식당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레스토랑의 중심은 요리입니다. 인테리어와 테이블 웨어 모두 요리를 돋보이게 구성됐습니다. 특히 녹색 벽에는 15세기 정치가 ‘Lorenzo de’ Medici(로렌조 드 메디치)’의 노래인 ‘Canzona of the Seven Planets’의 철자를 새겨,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가 문화 교류의 중심지였음을 상기시켜줍니다. 여기에 핑크 패턴의 접시와 세련된 모노크롬 냅킨은 구찌의 미학을 배가시켜줍니다.
구찌 오스테리아 서울. 출처 : 홈페이지 |
구찌 오스테리아는 올 3월 서울 이태원에도 상륙했습니다. 미국 비벌리힐스, 도쿄 긴자에 이어 해외에서 세 번째로 오픈한 매장입니다. 이태원 플래그십 스토어 ‘구찌 가옥’ 맨 위층에 위치한 ‘구찌 오스테리아 서울 다 마시모 보투라’는 전통 이탈리안 요리를 유쾌하게 재해석한 게 특징입니다.
보투라 셰프와 전형규 서울 총괄 셰프, 다비데 카르델리니 수석 셰프가 함께 개발한 에밀리아 버거, 토르텔리니와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크림 등은 한국 전통 정원과 아드리아해의 여름을 떠올리게 하는 시그니처 메뉴입니다.
샤넬은 일찌감치 외식업에 발을 들였습니다. 샤넬은 2004년부터 일본 도쿄 긴자에서 레스토랑 ‘베이지 알랭 뒤카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샤넬 플래그십 부티크 10층에 있는 베이지 알랭 뒤카스는 크림색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샤넬 하우스 만큼이나 우아하며 세련미를 강조합니다. 일본 분위기가 가미된 현대 프랑스 요리는 수석 셰프인 고지마 케이가 관리하며, 2개의 미슐랭 스타를 획득했습니다. 가격대는 1000만 원짜리 샤넬 핸드백 하나 값으로 100번 가까이 먹을 수 있는 수준입니다.
불가리도 긴자에서 ‘리스토란테 루카 팡틴’을 운영하는데, 2011년부터 미슐랭 스타를 획득했으며, 2020년에는 ‘50대 아시아 레스토랑’ 순위에서 17위에 올랐습니다. 매장에는 진열장에 고급 쥬얼리와 액세서리를 장식했는데, 손님들은 이보다는 샴페인이나 칵테일, 애프터눈 티에 더 열광한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에르메스는 국내에서 ‘카페 마당’을, 디올은 청담동 ‘하우스 오브 디올’ 5층에 ‘카페 디올’을 열었고, 버버리는 런던 리젠트 스트리트에 ‘토머스 카페’, 랄프로렌은 뉴욕에 ‘폴로 바’, 랑방은 ‘랑방 카페’로 인기몰이 중이랍니다.
◇패션이 된 먹거리...명품, '일상'을 파고 들다
에르메스 ‘블루다이아’ 플레이트와 로열코펜하겐 ‘블루 플루티드 풀레이스’ 컵앤소서. |
명품업계의 이런 움직임은 MZ세대 사이에서 ‘먹거리도 이젠 패션’이라는 인식이 확산된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당신이 먹는 것이 바로 당신”이라는 말처럼 음식이 개인의 계급적, 사회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강력한 지표이기 때문이죠. 이는 뭔가를 입고 걸치는 것만큼 먹는 것도 중요해졌다는 시대상을 반영합니다.
식사란 게 단순히 먹는 것이 아니라 경험, 특히 공유하거나 과시할 수 있는 경험이란 점입니다.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의 대중화로 사람들은 일거수 일투족을 불특정 다수에 공개하는데, 사실 이 근저에는 과시욕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명품 브랜드들이 선보인 카페와 레스토랑들은 사람들의 과시하고 싶어 하는 심리를 딱 파고든 것이지요.
이런 과시욕은 집밥 스타일에도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집밥이 대세가 되면서 밀 키트로 밥상을 차릴지언정 테이블 웨어는 명품으로 쓰자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주부들 사이에서는 덴마크 로열코펜하겐이 식기 콜렉션의 정점으로 알려졌는데요. 샤넬, 에르메스, 구찌 같은 명품 브랜드들도 이에 맞먹는 고가의 감각적인 테이블 웨어로 밥상까지 진출하고 있답니다. 온 가족 명품 백은 못 사도 온 가족이 둘러앉아 즐길 수 있는 명품 밥상. 사람에게 꼭 필요한 ‘의·식·주’ 중 ‘의’의 트렌드 주기가 가장 짧다 보니 명품 브랜드 입장에서는 식생활과 리빙으로 영역을 넓히는 게 현명한 전략인 셈이지요.
“패션은 살면서 접하는 모든 것”이라는 가브리엘 샤넬의 말처럼 패션은 물론 라이프 스타일까지 팔겠다는 명품 브랜드들의 전략이 먹혀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투데이/배수경 기자] sue6870@e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