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메라4 E하이브리드, 빗속에서도 포르쉐 본능!
태풍은 지나갔는데 전국에 집중호우가 내렸다. 강원도 철원에는 한 시간 만에 113mm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기도 했다. 저녁 뉴스의 어느 기상 전문가는 '양동이로 물을 들이 붙는 수준'이라며 빗대기도 했다.
운이 안좋았던 걸까? 포르쉐 파나메라4 E하이브리드 시승행사가 열린 8월 말, 가을장마가 본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 드리웠고 얼마 지나지 않아 머금고 있던 물줄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행사는 강원도 인제스피디움 서킷에서 열렸다.
시승 행사는 서킷과 일반도로를 달리는 두 가지 가운데 먼저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이다. 기자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날씨를 검색했다. 결국 '지금 비가 내리기 시작했으니 오후 쯤엔 그치겠지?' 라는 생각에 서킷 주행을 오후 시간으로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이는 잔꾀에 불과했다. 서킷 주행을 하는 오후에 물줄기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오전에는 비가 내려도 비교적 괜찮았는데 하늘도 참 야속하다. 온로드 주행시에는 차량의 기능과 조작감을 익히며 전반적인 상황을 살피는 시간이다.
시승행사에 준비된 파나메라는 기본형인 파나메라 4, 이보다 고성능인 파나메라 4S, 그리고 PHEV인 파나메라 4 E하이브리드다. 일반 도로 주행은 4와 4 E하이브리드로, 서킷 주행은 4S와 4 E하이브리드로 체험하게 된다. 시승차의 가격은 파나메라 4가 1억 6470만원, 4S가 1억 9380만원, 4 E하이브리드가 1억 8260만원이다.
파나메라 4 E하이브리드에 탑승하고 인제스피디움 밖으로 나섰다. 포르쉐는 자사의 플래그십 하이퍼카, 918 스파이더를 통해 PHEV 기술을 최초 선보였다. 파나메라 4 E하이브리드는 포르쉐 최초의 사륜구동 하이브리드 모델이다. 포르쉐에 따르면 연비와 강력한 퍼포먼스 그리고 편안함까지 두루 갖췄다.
파나메라 4 E하이브리드는 918 스파이더의 기술을 일부 채용했다. 기본적으로 PHEV 시스템을 본따 적용했다. 버튼을 누르면 F1 머신처럼 순간적인 발진 가속이 쏟아진다. 최고출력 136마력, 최대토크 40.8kg.m를 발휘하는 전기모터는 여러모로 바쁘다. 가속 페달을 밟는 즉시 힘을 보탠다. 기존에는 가속 페달을 80%정도 밟아야 전기 모터가 추가적인 힘을 냈지만, 신형 파나메라는 가속 페달을 밟는 즉시 엔진과 전기 모터가 상호 호환한다.
엔진룸에는 4S 모델에 탑재된 V6 2.9리터 트윈터보 가솔린 엔진이 달려 있다. 4S보단 조금 약한 최고출력 330마력, 최대토크 45.9kg.m를 발휘한다. 전기모터와 조합되면 총 462마력, 71.4kg.m의 막강한 파워를 뿜어낸다. 정지상태에서 100km/h 도달까지 4.6초 밖에 소요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복합 연비는 무려 12.3km/L를 기록했다. 더욱이 배터리를 완충하면 33km까지는 기름 한방울 쓰지않고 주행 가능하다. PHEV의 진가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실제 전기 모터만 사용해 주행하는 E파워 모드는 공인 기록 33km보다 더 주행이 가능하다. 집과 회사에 충전기만 비치된다면 차량 유지비는 거의 들지 않는 셈이다.
변속기는 새로 개발된 8단 PDK 자동변속기가 탑재된다. 전자 클러치 액츄에이터를 이용해 반응 시간을 현저히 단축 시켰다. 엔진 파워는 변속기를 거쳐 뒷바퀴 혹은 네바퀴에 전달된다. 모든 파나메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사륜 구동이 기본이다.
파나메라 4 E하이브리드는 터치 디스플레이 파워 미터기로 전기 에너지 소모 및 회수 용량 등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하다. 반면 그래픽 정보 시인성이 조금은 떨어진다.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충전기를 도킹 후 충전 과정 역시 PCM(포르쉐 커뮤니티 매니지먼트)로 관리 및 확인할 수 있다. 배터리 기본 사양은 3.6 kW이다. 옵션을 통해 7.2kW까지 업그레이드 가능하며 이럴 경우 3시간 반 만에 완충 된다.
각종 버튼들과 차량의 특성을 살피다 보니 어느새 온로드 주행을 마쳤다. 주행은 특별할 것이 없다. 일반 도로에다 지역 주민들이 오가는 탓에 과격한 운행은 삼가해야 했다. 오후에 서킷에서 차량의 속내를 들여다 볼 참이다. 인제스피디움으로 복귀 후 점심 식사를 마쳤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서킷 주행을 앞두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서킷 세션은 출력을 한 껏 올린 파나메라 4S 그리고 온로드와 마찬가지로 4 E하이브리드가 준비됐다. 차량은 총 4대다. 원없이 파나메라를 탈 수 있다. 아쉬운 점은 갑작스런 우천으로 '서킷을 타지 못하고 종료되지 않을까'하는 걱정 뿐이다.
하지만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파나메라는 비가 와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전반적인 속도를 통제하는 인스트럭터는 1랩을 돌 때 마다 운전대의 다이얼을 돌려 주행 모드를 노멀,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 순으로 점진적으로 끌어 올렸다. 점점 그룹간 주행 템포는 빨라졌고, 4랩째는 “내가 지금 빗속에서 운전하는 것이 맞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인스트럭터는 너무 과도한 속도로 코너 진입전 언더스티어가 발생하는 상황만 막으면 위험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며, 주행 템포를 관리 중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속도계는 인제서킷 메인 스트리트에서 200km를 넘나들고 있었다. 만약 경쟁사들의 대형 세단들이었다면 행사가 중단되거나 대형 사고가 났을 것이라며 덧붙였다.
파나메라는 차체 5미터, 몸무게 2톤이 넘는 거구임에도 빗 속에서 '미친' 퍼포먼스를 선사했다. 여러가지 장비들과 부품들의 합동 작전이었지만 포르쉐 만의 특징 두 가지를 꼽고 싶다. 바로 사륜구동 시스템과 에어 서스펜션이다.
포르쉐 스포츠카에 탑재된 사륜구동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뒷바퀴로 굴린다. 마른 날이면 짜릿하고 다이나믹한 주행을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행사처럼 비라도 오면 이 시스템의 진가가 발휘된다. 뒷바퀴가 접지력을 잃기라도 하면 너무나도 순식간에 앞바퀴가 회전하며 차체를 견인한다. 재빠른 구동력 배분에 에어 서스펜션이 힘을 싣는다. 성인 남성 종아리 만한 에어 서스펜션은 너무나도 적극적으로 4바퀴가 노면에 접지할 수 있도록 갖은 노력을 다한다. 포르쉐다운 스포츠 성능이다. 장대비 속에서도 트랙션의 대한 걱정보다 보다 안정적인 레코드 라인과 브레이킹에 더 신경을 써도 무방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행사는 계속 진행됐다. 짐카나와 마지막 택시타임까지 모든 세션이 안전하게 마무리 됐다. 911과 같은 스포츠카가 아닌 플래그십 세단이 이렇게 잘 달릴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압권은 택시 타임이다. 기자도 있는 힘 껏 달렸다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프로 드라이버가 파나메라에 오르자 노면에 물이 고인 상태임에도 엔진 울부짓는 소리가 실내를 가득 채웠다. 말그대로 '미친' 퍼포먼스다. 운전자는 조금 무서운 상황이라고 설명했지만 기자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넘치는 스릴을 만끽하고 차에서 내렸다.
결국 집중호우 일기예보를 보며 떠올렸던 걱정은 기우였다. 파나메라에겐 오히려 자신의 진가를 더욱 드러낼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돼 버렸다. 연비와 퍼포먼스를 두루 갖춘 '최고의 차'로 손색이 없지만 단점도 보인다. 다소 부실한 편의장비다. 가장 큰 아쉬움은 농동형 자율주행 시스템의 부재다. 레이더를 통한 차간거리 조절이 되지 않는다. 차선 유지 기능도 썩 훌륭하지 못하다. 유럽에선 극찬을 받는 요소인데 국내 도로 실정에 맞게 끔 관련 시스템을 다시 정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차량을 구입할 운전자의 나이대를 생각해보면 아쉬운 부분임에 틀림 없다. 스포츠 성능을 갖춘 플래그십 세단을 고려한다면 파나메라 4 E하이브리드가 제격이다.
포르쉐는 자동차의 본질인 '잘 달리는 것'을 제대로 실현하는 브랜드다. 파나메라 4 E하이브리드는 거기에 극강의 연비까지 갖췄다. BMW와 메르세데스 벤츠와는 또다른 상품성으로 소비자에게 큰 만족감을 줄 것이라 확신이 든다.
[이데일리 오토in] 카가이 이병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