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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델루나’ 1분 장면에 40여 명이 3개월…해외서도 인정받은 CG 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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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면 거대한 성이 되는 호텔 외관은 세트 없이 순수 컴퓨터그래픽(CG) 기술로 창조했다. 호텔 내부는 경기 용인시에 6600m²(약 1996평) 규모의 드라마 촬영장에 세트를 지어 촬영했다. 디지털아이디어 제공

‘달빛을 받는 델루나의 외경이, 담쟁이 넝쿨로 꾸물꾸물 덮여간다…’


tvN 드라마 ‘호텔 델루나’ 대본에 실제 등장하는 글귀다. 밤에 찾아오며 낡은 건물이 고층 호텔로 탈바꿈하는 모습을 기억하는 시청자라면 이 표현은 참으로 단출하다. 사실 드라마에서 전남 목포시에 있는 2층짜리 근대역사관이 모델인 건물은 해리포터 호그와트 마법학교보다도 근사한 초대형 호텔로 바뀐다. 이제 국내 영화나 드라마도 덜 떨어진 컴퓨터그래픽(CG)을 ‘국뽕’으로 참고 보는 시대는 진즉에 지나갔다.


최고 시청률 10.45%(닐슨코리아)를 찍은 ‘호텔 델루나’는 특히 국내 시각효과의 수준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한국 드라마에서 특화된 판타지 장르답게 CG분량이 넘쳐난다. 귀신이 소멸되는 특수효과부터 간판이나 현장 스태프를 지우는 소소한 기술까지 이미 4000컷 가까이 CG 작업을 완료했다. 이 드라마의 CG 작업을 맡은 ‘디지털아이디어’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시각효과기술(VFX) 업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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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설립된 시각효과기술(VFX) 업체 ‘디지털아이디어’의 박성진 대표. tvN 제공

21일 경기 고양시 사무실에서 만난 박성진 대표(41)는 ‘호텔의 변신’ 역시 CG가 작품의 질을 끌어올린 대표적 사례라고 설명했다. 사실 처음엔 호텔이 한 5층 정도 높이로 변하는 설정이었다. 하지만 박 대표는 “호텔이 더 화려하고 웅장하게 바뀌어야 드라마 스타일에 어울린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사소한 대목도 CG로 디테일을 살린 것도 비슷한 이유다. 그는 “주인공 만월(아이유)이 매력적인 여성이라 판타지 효과도 더 반짝이고 예뻐야 했다”고 전했다.


디지털아이디어는 ‘퇴마록’(1998년)을 시작으로 국내외 영화와 드라마 400여 편의 CG 제작을 담당해왔다. 기차를 향해 질주하는 수백 명의 좀비 떼(영화 ‘부산행’)나 고구려와 당의 치열한 전투 장면(‘안시성’)도 이 업체가 맡았다. 판타지 드라마 ‘도깨비’(2016년)와 개화기 시대를 다룬 ‘미스터션샤인’(2018년) 등도 마찬가지. 뭣보다 게임과 현실을 오가는 tvN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증강현실(AR) 기술을 사실적으로 구현해 화제를 모았다.


국내 최대 규모의 VFX업체지만, 매주 밀려드는 촬영본 400여 컷을 작업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호텔 델루나’는 전담인력만 250명이 넘게 투입했다. 100% 사전제작 드라마는 아닌지라, 대본과 촬영 일정이 밀려 마감 시간이 피가 마를 때도 여러 번이었다.


“영화는 촬영 뒤 개봉할 때까지 4~6개월 정도 시간이 있어요. 작업량도 2000여 컷 정도죠. 근데 드라마는 제작기간도 유동적이고 분량도 훨씬 많아요. ‘미스터…’은 8000여 컷, ‘알함브라…’는 6000여 컷을 작업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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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호텔 델루나’에서 장만월(아이유)은 죽은 백두산 호랑이의 원혼을 달래준다. 시청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이 호랑이 컴퓨터그래픽(CG) 작업물을 완성하는 데 3개월이 걸렸다. 제작을 담당한 디지털아이디어는 그간 개발연구팀을 만들어 호랑이, 독수리, 고릴라, 용 등 사실적인 크리처(생명체) 기술력을 축적해 왔다. tvN 제공

다행히 ‘호텔 델루나’의 CG에 대한 시청자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다. 특히 드라마 초기부터 눈길을 끈 호랑이 CG는 “실제보다 더 사실적”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박 대표 역시 섬세한 공정을 거친 호랑이에 대한 애정이 크다. 이빨이나 눈알 등 신체를 꼼꼼히 디자인한 뒤 수만 개의 털이나 피부 질감, 무늬를 표현하는 텍스처 작업도 했다. 여기에 근육의 움직임을 얹고(리깅) 실제 촬영 장면에 호랑이를 배치하며(카메라 트래킹), 동작과 표정 등을 넣는 애니메이션 작업, 주변 환경에 따라 음영을 조정(라이팅 렌더링)하는 등 한 마리의 호랑이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10단 계 이상의 고난이도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물론 이런 결과물은 그간의 기술이 축적돼왔기에 가능한 일이다. ‘미스터 고’(2013년)의 고릴라 링링을 만든 경험과 기술 덕분에 일부 공정은 쉽게 넘어갈 수 있었다. 중국 영화 ‘몽키킹’(2014년)의 호랑이, ‘사바하’(2019년)의 뱀도 ‘호텔 델루나’에 변형해 재창조됐다. 드라마에 나오는 열차는 ‘부산행’의 작업물을 바탕으로 재가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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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아이디어 제공

파란색 배경(크로마키)을 뒤로 우주인(이시언)과 만월이 만나는 3회 장면은 겨우 1분 내외지만, 촬영 화면에 3D 우주정거장을 입히는 작업만 40여 명이 3개월을 들였다. 30여 종 귀신들의 서로 다른 디테일도 CG로 살렸다. 실제 촬영 본에 배우의 얼굴을 스캔해 작업한 CG를 덧입히는 방식이다. 박 대표는 “분장 후 파란 조명을 비추는 방법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점점 시청자들이 리얼리티를 원하다보니 품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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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마 설지원(이다윗)에게 살해당한 귀신(사진 왼쪽). tvN 제공

CG 장면은 단순히 때깔 좋은 화면을 만드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출연배우들이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중요하다. 만월의 칼이 고목에 꽂히며 객잔이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은 모형 칼과 나무모양의 스펀지를 활용해 아이유의 이해를 도왔다. 호랑이 대역으로 현장 스태프가 어슬렁어슬렁 움직이는 모션 연기해 촬영장이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박 대표는 “CG로 대체할 도구를 보고 배우가 먼저 퀄리티를 걱정하기도 한다”고 웃었다.


2011년부터 중국 시장에 진출해 규모를 키워온 디지털아이디어는 지난해 반가운 계약도 따냈다. 지난해 ‘앤트맨과 와스프’, 올해 ‘스파이더맨:파 프롬 홈’ 등 마블 영화의 스크린X 가공 자격(영화관 좌우벽면 영상 제작)을 획득했다. 박 대표는 “한 달 반 정도 제작한 영상 (수준을) 보고 마블에서 깜짝 놀랐다”며 “제작비가 할리우드 수준만 된다면 그들보다 더 좋은 CG를 뽑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시각효과 기술 꾸준한 성장…CG산업 전망 밝지만은 않아


국내 시각효과 기술(VFX)은 20여 년 동안 줄기찬 성장을 거듭하며 세계적 수준에 버금가는 진보를 이뤄냈다. 국내에서 컴퓨터그래픽(CG) 기술이 처음 등장한 영화는 ‘구미호’(1994년)였다. 당시 배우 고소영이 여우로 변신하는 과정은 하나의 형체가 전혀 다른 이미지로 변하는 ‘모핑’ 기술을 썼다. 물론 ‘쥬라기 공원’(1993년) 등 미국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하면 기술력은 격차가 컸다.


‘쉬리’(1998년)에선 고층 빌딩 폭파와 도심 총격전에 CG가 쓰였다. 지금과 비교하면 길지 않은 분량이었지만 이후 조금씩 활용도는 늘어났다. ‘태극기 휘날리며’(2003년)에선 팔다리가 잘려나간 군인들을 비롯해 인해전술을 펼치는 중공군이 생생하게 구현됐고, ‘중천’(2006년)에선 실제 배우의 외모로 동작을 대신하는 ‘디지털 액터’ 기술을 선보였다. 그 성과로 한국의 CG업체들이 모여 만든 컨소시엄은 할리우드에 진출해 영화 ‘포비든 킹덤’(2008년)의 특수효과 작업을 총괄하기도 했다.


‘해운대’(2009년)에선 CG작업에만 50억 원을 투입했다. 지진해일(쓰나미)이 부산을 덮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2017년부터 개봉한 ‘신과 함께’ 시리즈는 영화에 나오는 장면의 약 90%에 CG를 사용했다. 드라마 역시 영화만큼 카메라 등 장비가 동일해지고 스태프 인적 교류가 정착되며 두 분야의 CG기술 격차도 해소되고 있는 추세다.


중국 시장 진출은 2010년대부터 이뤄졌다. 덕분에 국내 업체 수도 100여 개로 늘었고, 100명 이상 인력을 가진 대형업체들도 생겨났다. ‘적인걸2’(2013년), ‘미인어’(2016년), ‘홍해행동’(2018년), ‘유랑지구’(2019년) 등 중국에서 좋은 흥행 성적을 낸 블록버스터 영화에는 매크로그래프, 덱스터스튜디오, 디지털아이디어 등 국내 업체들이 참여했다.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국내 CG 산업의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외 진출로 활로를 모색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국내 블록버스터 영화가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업체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것도 악조건이다. 한 VFX업체 관계자는 “제작비에서 인건비를 제하면 연구개발에 비용을 투입할 여력이 없다. 일부 대형업체를 제외한 군소업체들의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고 했다.


주 52시간 근로제 적용도 걱정거리다. VFX업계 관계자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제작 단가를 올릴 수밖에 없지만 경쟁이 치열해 영업이익을 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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