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완서, 이승과 저승 경계에서도 읽고 쓰던 영원한 현역”
박완서 8주기 추모 소설집 ‘멜랑콜리 해피엔딩’ 참여 함정임-손보미 작가
22일은 박완서 작가의 8주기다. 선생은 1970년대 사회 세태를 짧은 소설로 많이 남겼다. 동아일보DB |
《최수철 조경란 이기호 김숨 정세랑 조남주….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29명의 짧은소설을 모은 ‘멜랑콜리 해피엔딩’(작가정신·1만4000원·사진)이 나왔다. 이들을 한데 모은 힘은 박완서 작가(1931∼2011)이다. 생전 선생이 ‘방 안에 들어앉아 창호지에 바늘구멍을 내고 바깥세상을 엿보는 재미’에 비유했던 짧은소설로 8주기를 기렸다. 이 가운데 함정임(55) 손보미 작가(39)를 17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함 작가는 한 출판사 편집부에서 일하던 시절 맺은 인연으로 20년간 선생을 곁에서 지켜봤다. 그가 쓴 ‘그 겨울의 사흘 동안’에는 작가로 살다 간 어머니의 유작을 정리해 나가는 딸들의 연대가 담겼다. 함 작가는 “작품에 선생님을 적극 등장시켰다. 실화 99%에 허구 1%를 섞었다”고 말했다.
손 작가의 작품 제목은 ‘분실물 찾기의 대가3―바늘귀에 실 꿰기’. 그는 “선생님의 ‘나의 아름다운 이웃’의 부제 ‘바늘구멍으로 엿본 바깥세상 이야기’에서 따왔다”고 설명했다.
두 작가는 선생에 대한 추모 열기가 식지 않는 이유로 깊고 넓은 작품세계를 꼽았다. 함 작가는 “선생님은 작품 그 자체로 성별을 떠나 문단을 평정하고 독자에게 인정받았다”고 했다. 손 작가는 “선생님의 작품은 따뜻함, 기묘함, 신랄함, 부드러움을 종횡무진 넘나든다”고 말했다.
손 “교과서에 실릴 만큼 부드러운 작품, 그로테스크한 이야기, 가슴 절절한 멜로…. 한 사람이 쓴 게 맞나 싶을 정도예요.”
함 “전쟁과 광복 이후 한국 사회를 겪어낸 복잡다난한 인생사가 작품에 녹아들어서 그런 것 같아요.”
여성 후배들에게 남긴 유산도 적지 않다. 손 작가는 “호명되지 못한 채 사라진 여성 작가가 적지 않은데 선생님으로 인해 문학계 토양 자체가 달라졌다”고 했다.
닮고 싶은 선생의 면모는 뭘까. 함 작가는 평생 ‘현역’으로 살다 간 점을 꼽았다.
함 “부지런히 신작 소설과 영화를 챙겨 보셨어요.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도 읽고 쓰는 영원한 현역이셨죠.”
박완서 작가의 8주기 헌정 소설 모음집 ‘멜랑콜리 해피엔딩’에 참여한 함정임(오른쪽), 손보미 작가. 이들은 “타인에게 관대하고 자신에게는 엄격한 태도, 영원한 현역, 깊고 넓은 작품 세계가 박완서 스타일을 완성한다”고 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
손 작가는 소설과 삶이 일치된 점을 본받고 싶다고 했다. 본인은 일상을 소설화해본 적이 없는데, 언젠가는 삶이 소설에 투영될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그러자 함 작가가 손 작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작가는 단계마다 사회나 독자가 이끌어주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계속 쓰다 자연스럽게 그런 시점이 오지 않을까?”
서로를 향해 몸을 돌린 두 사람이 대화를 이어갔다.
함 “선생님은 대선배지만 워낙 격의 없이 대해 주셔서 함께 있는 자리가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았어. ‘박완서 스타일’이랄까. 그나저나 손 작가 눈망울이 선생님을 닮았어. 맑고 예리한…."
손 “눈망울이 닮았다니, 괜히 뿌듯한걸요? 함 선생님도 박 선생님과 비슷한 면이 있어요. 몇 해 전 심사위원으로 만나 2박 3일 동고동락할 때 손수 커피와 빵을 싸오셨죠.”
함 “선생님 댁에 가면 박하 잎을 따다 차를 끓여 주시고 2, 3시간씩 고민을 들어주셨어. 직·간접적으로 겪고 느끼며 닮아가는 것, 이런 게 선생님의 힘인가 봐.”
이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