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 길이가 절반 이하… ‘단장 증후군’을 아시나요
일상생활 어려운 희귀질환
입으로 음식물 섭취할 수 없어 평생 정맥주사로 영양분 공급
소장의 흡수율 높여주는 치료제 최근 개발됐으나 보험급여 안돼
“치료 위해 제도적 보완 필요”
![]() 삼성서울병원 소아외과 이상훈 교수가 단장증후군 환아의 보호자와 진료 상담을 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집에서 보호자가 단장증후군 환아에게 총정맥영양법(TPN) 주사 투여 전 감염을 줄이기 위해 투여 부위를 소독하는 모습. 삼성서울병원 제공 |
올해 열 살인 태민(가명)이네 집에는 식사 시간이 따로 없다. 일과를 마친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며 저녁을 먹는 풍경은 이 가정에 꿈같은 일이다. 태민이는 이름도 생소한 희귀질환 ‘단장(短腸)증후군’을 앓고 있다. 생후 100일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장 천공이 발생해 소장 대부분을 잘라냈다. 남은 소장이 30cm도 되지 않아 정상적인 식사가 불가능하다.
단장증후군은 선천성 또는 생후 수술로 전체 소장의 50% 이상을 잃어 흡수장애와 영양실조를 일으키는 희귀질환이다. 선천적인 유전자 이상으로 짧은 소장을 가지고 태어났거나 괴사성 장염, 장간막 파열, 크론병 등 복부질환 치료를 위해 소장을 많이 절제했을 때 발생하는 질환이다. 워낙 희귀하다 보니 국내 유병률 등 정확한 역학 자료조차 없는 실정이다.
정맥주사로 생명 유지
우리가 섭취하는 총 칼로리의 90%, 물과 전해질의 80%는 소장에서 흡수한다. 하지만 단장증후군 환자들은 소장의 면적 자체가 좁아 수분과 전해질을 흡수하지 못하고 그대로 배출한다. 또 심한 설사와 지방변 등의 증상을 겪는다. 이 때문에 아이들이 음식 섭취를 거부하기도 한다.
국내 단장증후군 환자들은 근본적인 치료 대신 총정맥영양법(TPN)이라는 주사제에 의존하고 있다. TPN 요법은 입으로 음식물을 섭취할 수 없는 환자에게 정맥주사를 통해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거의 매일 하루 10시간 이상 정맥주사를 투여해야 해 일상생활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태민이 아버지는 “한창 뛰어놀 나이에 몸에 호스를 달고 사는 아이를 보면 가슴이 무너진다”며 “초등학교에 다니는 태민이는 정규 수업 외에 체육이나 소풍 등 야외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삽관 부위 감염은 ‘시한폭탄’
고농도 영양수액을 주입하는 TPN은 몸속 정맥 중 비교적 큰 중심정맥을 통해서만 투여가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중심정맥에 카테터(관)를 삽입해 진행하는데, 삽관 부위가 감염되면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얼마 전 태민이 역시 삽관 부위 감염으로 패혈증이 발생해 응급실을 찾았다. 태민이 아버지는 “TPN 과정에서 아무리 위생에 신경을 써도 감염이 발생할 수 있다”며 “모든 TPN 환자에게 감염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가정에서 TPN 치료를 하는 환자 가운데 카테터 등으로 인한 감염 발생은 연간 0.41∼1.5회에 이를 정도로 매우 빈번하다. 특히 단장증후군 아동의 경우 다른 질환으로 TPN을 진행하는 경우보다 감염 발생 확률이 6배나 더 높다. 다른 환자들보다 면역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단장증후군 아동에게 감염이 발생할 경우 5년 이내 사망률은 30%에 이른다.
근본적 치료제, 식약처 허가 받았지만…
무엇보다 TPN의 가장 큰 문제는 근본적인 치료법이 아니라는 데 있다. 식사로 흡수할 수 없는 영양분을 주사액으로 넣어 생명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대증요법인 셈이다. 단장증후군 환자가 생명을 유지하려면 평생 TPN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선 단장증후군 환자들에게 간편한 피하주사를 놓아 소장의 흡수율을 높이는 치료를 진행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TPN의 사용 기간과 용량을 줄일 수 있다. 일부 환자 중에는 TPN을 완전히 중단한 사례도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피하주사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아직까지 보험급여가 결정되지 않아 현재 환자들이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해당 약제가 비급여로 출시되면 연간 비용이 2억∼3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되면 비용 부담 때문에 대다수 환자에겐 ‘그림의 떡’일 수 있다.
삼성서울병원 소아외과 이상훈 교수는 “단장증후군 환자들은 소장의 영양분 흡수율만 높여주면 호전 가능성이 크고, 환자의 삶의 질도 크게 개선할 수 있다”며 “근본적 치료제가 없어 오랜 시간 괴로워하고 있는 환자와 가족들을 위해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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