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까지 일… 힘들어 쓰러지겠다” 숨진 판사가 남긴 글에 동료법관 눈물
휴일 야근뒤 사망 여성판사 영결식
김명수 대법원장 참석 “판사 일상의 단면…법원가족 지킬 필요한 조치 찾을것”
문무일 총장도 전날 조문때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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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판사님의 업무 부담이 과중해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저부터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주말 야근을 한 뒤 자택 화장실에서 19일 숨진 채 발견된 고 이승윤 서울고법 판사(42·여·사법연수원 32기)의 영결식에서 최완주 서울고등법원장이 영결사를 읽자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판사의 마지막 가는 길에는 서울대 법대 95학번·사법연수원 32기 동기, 선후배 법관 등 100여 명이 함께했다. 이들은 “이 판사가 힘든 것을 티내지 않아 이런 일이 생길지 몰랐다. 옆에서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자책했다. 초등학생 1, 5학년 아들을 둔 이 판사가 일과 가정을 모두 챙기는 ‘슈퍼우먼’이라고 생각했을 뿐 과로로 쓰러질 줄은 상상을 못 했다고 했다. 곳곳에서 슬픔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펑펑 쏟거나 오열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약 한 달 전 이 판사는 육아와 일을 함께하는 동료 판사들과의 인터넷 카페에 ‘예전엔 밤새는 것도 괜찮았는데 이제 새벽 3시가 넘어가면 몸이 힘들다. 이러다가 내가 쓰러지면 누가 날 발견할까라는 생각이 든다’는 글을 남긴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동료 법관들은 이 글에 추모 댓글을 달고 있다.
영결식엔 김명수 대법원장이 참석했다. 김 대법원장은 조의를 표하며 “너무 안타깝다”며 매우 슬퍼했다고 한다.
영결식에 다녀온 김 대법원장은 이날 오후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글을 올렸다. 김 대법원장은 이 글에서 “고인이 일요일 저녁에 출근해서 월요일 새벽까지 판결문을 작성한 후 비명에 가신 것은 우리 법원 가족 일상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대법원장으로서 참으로 안타깝고 애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고 했다. 이어 “임신, 출산과 육아, 그 밖에도 여러 모습으로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하여 매 순간 애쓰는 법원 가족들의 삶을 살피고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라고 약속했다.
이 판사의 빈소엔 전날 밤늦게 문무일 검찰총장과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찾아와 조의를 표했다. 이 판사의 남편 박성욱 LIG넥스원 상무(43·연수원 34기)는 검사 출신 변호사다. 빈소에서 유족들과 10분 넘게 얘기를 나눈 문 총장은 조문을 마친 뒤 눈물을 흘렸다. 문 총장은 “이 판사와 개인적인 연은 없지만 같은 법조인으로서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판사는 19일 오전 4시경 자택 안방 화장실의 한쪽 벽면에 비스듬히 기대 쓰러진 채 남편에게 발견됐다. 8일 시부상을 치른 이 판사는 그동안 밀린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토요일과 일요일 모두 법원 청사로 출근해 새벽까지 야근을 했다. 경찰 부검 결과 사인이 ‘뇌출혈’이라는 결과가 나와 과로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호재 hoho@donga.com·정성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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