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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따뜻한 전통안료 vs 무겁고 탁한 현대안료

‘광화문’ 현판 안료 모니터링 실험

담백-따뜻한 전통안료 vs 무겁고 탁

서울 종로구 경복궁 내 궐내각사 터에서 진행 중인 광화문 현판 모니터링 실험장에서 14일 문화재청 관계자들이 현판에 사용한 전통안료와 현대안료를 점검하고 있다. 왼쪽 절반은 전통안료와 아교를 사용했고 나머지 한쪽은 현대안료를 칠했다. 문화재청은 올해 상반기 안에 새로 복원하는 광화문 현판에 사용할 안료를 선택할 예정이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절반은 담백하면서 따뜻한 느낌을 주는 색감이 포근하게 다가온다. 반면 다른 한쪽은 다소 무거운 색채에 공격적인 모습이다.


14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의 궐내각사 터. 4개의 천막이 들어서 있는 이곳은 문화재청이 대규모 문화재 복원 공사의 작업장으로 사용하는 현장이다. 이 가운데 한 개는 천장이 뚫려 있다. 지난해 3월부터 진행한 광화문 현판의 안료 모니터링 실험이 한창이기 때문이다. 이날 동행한 김태영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사무관은 “실제 현판이 내걸릴 상황과 비슷하게 햇빛과 비, 바람 등 외부 환경에 노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광화문 현판 모니터링 현장이 언론에 공개되는 건 이번이 처음. 천막 안으로 들어가 실험 중인 광화문 현판 앞으로 다가섰다. 오른쪽의 ‘광(光)’과 ‘화(化)’ 글자 주변의 검은색 바탕면과 테두리에는 현대안료가, ‘화’의 나머지 부분과 ‘문(門)’ 글씨 쪽에는 전통안료가 칠해져 있는 상태로 둘 사이의 색감은 극명하게 대비됐다.

담백-따뜻한 전통안료 vs 무겁고 탁

전통안료를 칠한 왼쪽 부분은 상대적으로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오른쪽의 현대안료는 다소 무겁고 공격적인 모습이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검은색으로 칠해진 바탕 면을 살펴보니 전통안료가 칠해진 곳은 투명하고, 깊은 느낌을 주는 반면 현대안료가 쓰인 쪽은 다소 탁한 색감이었다. 테두리 부분인 붉은색은 색감 차이가 두드러졌는데, 전통안료가 상대적으로 투명하면서도 밝은 느낌을 줬다. 광화문 현판의 모니터링에는 총 10가지의 색상을 적용해 실험하고 있다.

검은 바탕에 금색 글씨… 동판까지 고증 완료

광화문 현판은 현재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로 복원돼 있다. 그러나 2016년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 소장 사진에서 검은색 바탕에 금색 글씨라는 점이 확인됐다. 지난해에는 1865∼68년 경복궁의 중건 과정을 상세히 담은 ‘경복궁 영건일기’를 분석한 연구 결과, 금색 글자 위에 동판으로 도금했던 사실까지 고증됐다.


이에 문화재청은 지난해 광화문 현판 복원 계획을 세웠지만 이번에는 새로운 조건이 붙었다. 단절된 전통안료를 복원해 사용하자는 의견이 나온 것.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014년부터 5년째 전통안료 복원을 위한 연구를 진행해 왔다. 15종의 전통안료 색상과 수비법, 연표법 등 안료 재현 기술 등을 복원해 냈다. 이 기술을 처음으로 시범 적용한 것이 광화문 현판이다.


전통안료가 이제야 복원 현장에 등장한 건 일제강점기와 경제개발 시기를 거치면서 명맥이 끊겼기 때문이다. 비용이 많이 들고 내구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따라 1972년 문화재 복원 시방서에서 전통안료와 아교(접착제)가 제외되고, 현대안료와 접착제로 대체됐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불국사와 창덕궁 등의 단청조차 모두 현대안료를 사용했다.


정혜영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광화문 현판 모니터링 결과 전통안료의 내구성과 색감이 현대안료에 뒤지지 않는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며 “경제성만 따지면 현대안료를 쓰는 게 낫지만 전통의 복원과 광화문의 상징성을 두루 고려하면 전통안료가 더 적합하다”고 밝혔다.

새롭게 복원하는 숭례문에 적용될 전통안료

현재 진행하는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광화문 현판에 사용될 안료의 종류는 올해 상반기 안에 결정될 예정이다. 문화재청은 전통안료의 성능과 내구성이 입증되면 앞으로 복원 현장 전반에서 이를 활용할 방침이다. 특히 2013년 단청이 떨어져 나가는 박락 현상이 발생했던 숭례문 재복원에도 적용한다.


당시 숭례문은 전통안료로 단청을 했지만 시공을 맡은 단청장이 전통아교 대신 화학접착제를 사용해 박락 현상을 초래했다. 일부에선 일본 안료와 아교를 섞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국보 1호의 자존심에 상처를 냈다는 비판도 나왔다.


한 단청장은 “일본의 경우 전통안료와 아교 기술이 끊이지 않고 전수됐지만, 한국은 명맥이 끊겼다는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며 “수천 년간 일본과 교류를 하면서 양국의 전통안료와 아교가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무조건 배격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전통 단청 안료 복원이 걸음마 단계라는 점에서 숭례문 재단청은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정연 문화재청 궁능문화재과장은 “전통안료든 현대안료든 영원불변한 것은 없고, 일정 시기가 되면 모두 수리와 보수를 거쳐야 한다”며 “전통단청을 복원 현장에서 사용하기 위한 표준시방서, 셈법 등 법령 정비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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