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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by 조선일보

“정신질환, 착하고 똑똑한 청년 많이 걸려… 조현병, 살인병 아냐"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조현병 키우는 한국인들... 정신질환엔 누구도 예외 없어"

미국 내 한인 자살률 타인종의 4배… OECD 최고 정신질환국, 한국

극단적 선택 암시하면 "왜 죽고 싶니?" 물어야 충동 줄어

"조현병 여동생 돌보다 미국에서 가족치료 사역 시작"

목사 김영철, 뇌질환 르포 ‘죽고 싶은데 살고 싶다' 펴내

조선일보

미국 남가주 정신건강가족미션(Mental Health Family Mission)의 소장 김영철. 1996년 파송 선교사로 미국에 왔다. 여동생 두 명이 조현병으로 고통받았고, 그를 계기로 뇌질환자와 그 가족을 돌보는 일을 시작했다./사진=이태경 기자

생물학에는 ‘부모는 항상 자식을 이긴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성인이 될 때까지 힘과 처세술, 지식 그리고 경제권에서 대부분 자식을 압도하는 부모가 자식을 이긴다. 그렇게 서서히 폐쇄적인 병동이 된 가족 간의 파괴와 상처는 그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외부에 노출되지 않을 때가 많다.


OECD 자문관인 수잔 오코너 박사는 한국인의 정신건강 의료시스템을 조사한 OECD 보고서에서 ‘한국 사회 전체에 정신적 고통이 만연하다'며 ‘한국을 세계 최고의 정신질환자를 양산해내는 학교’라고 지적했다. 통계에 의하면 한국뿐 아니라 미국의 한인 사회의 자살률도 타인종의 4배 수준.


왜 유독 한국인이 정신질환에 취약한 걸까?


미국에서 활동하는 김영철 목사에게 연락을 취한 건 ‘죽고 싶은데 살고 싶다'라는 그의 책을 본 후였다. ‘영혼의 싸움터를 추적한 르포'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책은 20년간 정신질환자 가족과 함께해온 정밀한 사례집이자 고통의 이유를 묻는 치유의 보고서다.


‘죽고 싶은데 살고 싶다'에서 그는 가족이라는 정신질환의 전쟁터를 누비는 종군 의사처럼 현장을 기술한다. 드러나지 않을 뿐 우울증과 신경증, 조현병과 자기애성 인격장애는 부부끼리, 부모 자식 끼리 그 상처를 주고받으며 놀랍도록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그가 묘사한 미국의 한인 사회는 한국 사회 정중앙의 환부를 확대경처럼 드러낸다.


무정한 부모 앞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명문대 출신의 젊은이들, 망상에 빠져 칼을 든 청년들, 거리를 떠도는 홈리스들… 현장으로 응급 출동하는 김영철과 함께, 그들의 역동을, 회복의 기적을, 막지 못한 참변을, 가슴으로 읽는다.


그는 ‘정신병을 수치로 여기는 한국인의 체면 문화가 병을 키우는 주요인'이라고 지적한다. 무엇이든 잘 해내려는 고도의 생존력도 오히려 가족을 파괴하는 스트레스로 작용한다고.


"정신질환은 착하고 똑똑한 청년들이 많이 걸립니다. 남에게 스트레스나 미움, 분노 등을 풀어내지 못하고 자신이 다 감당하고 참고 지내다가 뇌기능장애가 오는 겁니다. 악한 사람들은 정신질환에 걸리지 않아요. 악한 사람들은 순수한 사람들에게 그 스트레스를 다 떠넘겨 병들게 하고 자신들은 살아 남죠."


김영철은 미국 내 비영리기관 정신건강가족미션(Mental Health Family Mission)의 소장으로, 정신과의사들과 함께 20~30대 청년 질환자들을 주로 돕고 있다.


1996년 선교사로 도미 후, 23년 만에 한국에 나온 김영철을 만났다. 그 자신, 상처 입은 치유자다. 여동생이 조현병으로 오랫동안 고통받았고 그에 대한 죄책감으로 미국에서 뇌질환 환자와 가족을 돌보는 일을 시작했다.


-책에 등장하는 모든 사례가 100% 실화입니까?


"팩트 그대로입니다. 각색은 안 했어요. 다만 그 부모에게 실례가 될까 해서 사는 지역이나 성별은 조금 달리했어요. 지나치게 폭력적인 사례들도 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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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죽고 싶은데 살고 싶다'에서 미국내 무차별 총격 사건의 범인 심문 과정을 리포트하며 ‘악의 실존'에 대한 정신의학계의 연구 주제를 폭넓게 다룬다./사진=이태경 기자

-어떻게 그들을 만나게 됐나요?


"정신건강가족미션이라는 단체를 운영하면서 아픈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만나는 사역을 하고 있어요. 방송과 신문을 통해 알려지면서 저를 찾아 도움을 구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현대 사회의 거의 모든 사람이 알게 모르게 정신적 장애를 겪으면서 정신질환의 거대한 스펙트럼에 포함돼있다고 하셨어요. 그 사실을 어떻게 깨달았나요?


"처음엔 부모님들이 찾아와요. 우리 애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거죠.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녀만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유전자의 영향도 있지만 만약 이 부모를, 이런 환경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건강하게 살 수도 있었을 거예요. 부모와 사회가 아픈 아이들을 만드는 경우가 많아요. 가장 약한 사람이 병자가 되는 거죠. 방치하다 병을 키우는 경우도 많았고요."


-조현병 환자인 여동생의 사례가 절절하게 다가왔습니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증세가 시작됐다고요.


"저희 집안이 3대째 크리스천입니다. 교회와 집만 오가던 제 여동생은 대학에 가서 문화 충격을 받았어요. 선배들이 고린내 진동하는 농구화에 막걸리를 담아서 마시라고 강권했는데 그걸 거부하지 못하고 마셨대요. 왕따 당할까 봐.


87학번이라 시위가 한창이던 때라 학교 가면 전경들이 핸드백의 생리대까지 뒤지고, 교수들은 "교문 밖에서 친구들은 피 흘리는데 너희들은 뭐 하느냐?"고 질타를 했다더군요. 수치심에 괴로워했는데, 가족들이 그 메시지를 제대로 못 읽었어요."


여동생은 그에게 "적응할 수 없으니 다른 학교에 가고 싶다"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김영철은 "굳이 왜 그러느냐"고 무시했다. 어느 날부터 여동생은 학교에 가지 않았다. 깔끔 떨던 아이가 열흘이 넘도록 씻지 않아 냄새가 진동했다. "그때 대화를 시도했어야 했는데 놓치고 말았다"고 김영철은 가늘게 한숨을 쉬었다.


-증세가 어떻게 진행됐나요?


"방에 틀어박혀 온종일 누군가와 얘기를 하더군요. 저를 보고 씨익 웃기도 하고 허공을 향해 큰소리로 웃기도 했어요. "오빠, 이 소리 안 들려?"하며 맨발로 뛰쳐나갈 때도 많았어요. 한겨울 새벽, 동생의 피 묻은 언 발에 양말과 신발을 신겨 데려올 땐 참 많이 울었어요. 그 세월이 10년이었어요."


-많은 가족이 질환을 방치해서 병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고 하셨지요. 왜 그렇게 늦게야 병원에 갔습니까?


"당시에는 정신분열증의 증세를 몰랐어요. 환청이나 환각이라는 것도 몰랐죠. 우리 교회 담임 목사는 저희보다 더 몰라서 무조건 기도와 믿음으로 이겨내라고 했어요. 어느 날 동생이 울면서 "오빠, 나 귀신 들린 거 아니야" 울면서 애원을 하더군요. 그때 어머니가 병원 얘길 하셨어요.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심할 때는 칼로 가족을 위협하던 여동생은 병원에서 치료받자 평범한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회복됐다. 하지만 치료 시기가 늦은 탓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는 없었다. 김영철은 동생을 보살피며 목사가 됐고, 선교사로 파송돼 미국에서 정신질환의 전쟁터에서 힘겹게 싸우는 한인 가족을 돕는 일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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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조현병, 자기애성 인격장애의 현장, 그 가족의 성공과 실패가 총망라된 섬세하고 치밀한 르포 ‘죽고 싶은데 살고 싶다'. 뇌과학서나 신경정신과의사의 리포트와는 또다른 시각의 사려깊은 통찰이 빛난다.


-일반 가정에서 구성원의 뇌질환 상태를 좀 더 일찍 감지할 수는 없습니까?


"감사하게도 신은 우리에게 합리적으로 생각할 힘을 주셨어요. 제 동생 경우처럼 상식에서 벗어나는 말과 행동은 금방 표가 나요. 그 때를 놓치지 말고 카운슬러와 상의하거나 병원에 가서 물어봐야 합니다. 안타까운 건 부모들은 자식이 이상하다는 걸 알아도 몇 년째 그저 방치해요. 의사에게 이상 진단이 나오면 당신들의 체면이 깎인다는 거죠. 이웃, 친척 등 공동체에서 손가락질받을까 주저하면서요."


-자식을 사랑하면서도 자기 체면이 더 중요하다는 건가요?


"놀랍지만 그래요. 자기애성 인격장애자인 부모는 자식이 자기 때문에 병들어 간다는 걸 몰라요. 10년간 방에서 나오지 않던 스텔라라는 여성이 있었어요. 해병대 출신이던 그녀의 아버지는 두 딸을 강하게 키우기 위해 어릴 때부터 스텔라 자매에게 서로 폭력을 행사하도록 시켰어요.


나중에 제가 아버지를 찾아가서 ‘이 아이가 아프다’라는 걸 인정만 해줘도 딸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설득했죠. 부모들의 말은 한결같아요. "내가 보면 아픈 애가 아니다. 성격 문제다. 고생을 안 해서 그렇다." 아픈 걸 인정 안 하면 다음 스텝을 밟을 수가 없어요."


미국 사회에서도 유독 한국인들이 정신질환을 감추려 드는 경향이 강하다고 했다. 유교 500년의 체면 문화는 태평양 건너까지 이어져 ‘자식이 아프면 집안의 수치'라는 인식으로 자리 잡았다.


우울증과 조현병은 반드시 가족이 알아챌만한 이상징후를 보인다. 김영철의 여동생은 환청, 환시, 환후, 환미, 환촉 등 5가지 환각과 망상을 전부 겪었다고 했다.


"여동생 셋이 한방에서 지냈는데 한겨울에 담배 냄새가 난다고 창문을 열어서 동생들이 덜덜 떨면서 지냈어요. 피부를 긁어대며 "오빠 눈엔 안 보이지만, 나는 벌레가 기어가는 게 느껴져"라고 호소했지요. 환각보다 더한 건 망상이에요. 과대망상, 피해망상, 관계망상…"


-그 망상 때문에 사건 사고가 발생하곤 합니다.


"그렇죠.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가 자기를 해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게 관계망상이에요. 길 가다가 눈만 마주쳐도 "왜 날 욕하느냐?"고 하는 게 전형적인 증상이에요."


-환자 가족으로 사역자로 조현병 가족과 함께했는데, 대체 이 뇌질환은 왜 생기는 겁니까?


"저는 의학적인 관점과 영적인 관점을 균형 있게 보려고 해요. 일단은 유전과 환경으로 촉발된다는 게 의학적 관점이에요. 스트레스나 강박관념에 대처 능력이 약한 사람이 뇌질환 발병률이 높습니다. 의학적으로는 위장병 같은 신체 질환과 다르지 않아요. 그런데 의사가 처방한 약만 잘 먹는다고 치료가 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신체질환 이상의 무엇이 있다고 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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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에 물이 세는 데 성경에서 답을 찾으면 하나님니 화냅니다. 당장 지붕 수리공을 찾아가야죠.” 김영철은 뇌질환 기미가 감지되면 교회의 목사가 아닌 병원의 의사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아직도 가야 할 길' 시리즈로 유명한 미국의 저명한 정신과 의사인 M 스캇 펙도 ‘거짓의 사람들'에서 바로 그 영적인 ‘악의 실체'를 깊게 파고 들었지요. 목사님의 치료 방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처방전도 없고 기적의 능력도 없지만, 오직 ‘함께 한다’고요?


"그렇습니다. 치료 방법과 약이 있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에요.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합니다."


-그게 직설적으로 말하면 사랑입니까?


"좀더 단순해요. ‘함께함' 그 자체에요. 고통의 공유죠. 같이 시간을 보내고 옆에서 말을 들어주는 거예요. 뇌질환으로 부모를 구타해서 접근금지 명령을 받은 아이도 버림받았다고 슬퍼해요. "너 많이 힘들겠다"고 처지를 이해해주고 돌봐줍니다. 고통받는 부모들도 찾아갑니다. "어머니, 마음 압니다. 저도 지켜봤어요." 이런 ‘함께 함'만으로 가족들이 조금씩 희망의 빛을 발견하고 상태가 나아져요."


-한국에서도 편견 없는 ‘가족 치료’가 절실합니다.


"압니다. 하지만 미국의 이민 사회가 상황이 좀 더 심각해요. 많은 분이 오해하는 게 있어요. 영어 잘하면 백인과 어울릴 수 있다는 환상입니다. 실상은 안 그래요. 초등 중등학교까진 그럭저럭 어울려도 고교 이후엔 백인, 흑인, 멕시칸, 한국인 등이 인종별로 그룹 지어 다닙니다. 미국에서 태어나서 난 한국말을 못 할 경우가 가장 심각해요. 대학에 가면 한국인 그룹에도 못 끼니 소외감이 엄청 나죠."


-정체성 혼돈의 시작이군요.


"그렇죠. 청년들이 대학에서 설 자리가 없어요. 친구 없어도 식구들이 따뜻하게 맞아주면 출구가 있어요. 그런데 이민자 부모들은 부자도 빈자도 시간이 없어요. 아이들은 집에서도 밖에서도 혼자죠. 유일한 안식처가 교회인데 교회에서 상처받는 경우도 많아요."


-자기애가 강한 무자비한 부모들이 아이들의 마음을 해치는 경우도 허다하더군요.


"애가 죽어가는 걸 보고도 "아빠가 미안하다" 그 한마디를 못 해요. "불쌍하지 않으냐?"고 물으면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사과해야 하느냐?"고 반문하죠. 병원에 가지 않는 이런 환자들이 가장 위험해요. 정상인처럼 보이는 환자 때문에 애꿎은 정상인들이 병들어 가거든요. 착하고 똑똑해서 희생당한 아이들을 보면 ‘부모가 이렇게 악할 수 있구나' 싶을 때가 많아요."


-한국 사회에도 공감이 안 되고 감정이입 능력이 없는 자기애성 인격장애(NPD) 환자들이 점점 늘고 있어요. 스티브잡스가 반면교사가 되긴 했지만, 사실 나르시시즘 환자는 치료도 거의 불가능한 걸로 알고 있어요.


"주로 고학력 공주병 왕자병 환자들이 많아요. 완벽주의자에 사회적 지위도 있어서 객관적인 자기 인식이 힘들죠. 머리가 좋아 상대방의 수를 읽고 논리로 자기방어를 일삼으니 답이 없어요. 약도 없고요. 자기 중심성이 인이 박였으니 타인의 마음 따윈 안 보이는 거예요. 공감이 안 되니 남의 처지는 가볍게 무시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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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을 주고 받는 가족들. 자기애성 인격장애 환자들에 의해 파괴된 자녀들은 부모를 자랑스럽게 할만큼 잘해야 하지만, 결코 부모를 넘어서서는 안된다는 모순된 메시지를 주입받는다. 이 부모들은 자녀의 뇌질환을 촉발하는 에이전트 역할을 한다.

-‘한국 사회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정신적 질환과 고통이 만연하다'는 수잔 오코너 박사의 OECD 보고서를 인용하셨어요. 한국인들은 부부끼리, 부모자식끼리, 그리고 학교 시스템에서조차 정신질환자들을 양산하고 있다고요. 왕따와 폭력적 댓글 문화를 비롯해서 충격적인 보고였습니다.


"작년에 LA에 있는 미국인 정신의학단체의 슈퍼바이저 세미나에서도 "왜 LA 한인타운의 한인 자살률이 다른 인종보다 4배나 많은가?"라고 의문을 제기했어요. 한인 사망률의 절반 이상이 자살이에요. 미국인들도 어떻게 한인들을 도와야 할지 고민이라는 거죠."


-하지만 한국인들의 사회 적응력은 타인종에 비해 더 뛰어나지 않습니까? 오히려 생존력을 너무 앞세워서 문제인가요?


"큰 맥락에서는 같아요. 가족이 구성원의 우울증을 무시하고 병을 키워서 자살에 이르는 거죠. 제가 장례예식을 인도한 스캇이라는 남자는 겉으로 보면 성공한 기업인이었는데, 추수 감사절 전날 권총 자살했어요. 아내와 친구들이 충격을 받았죠. 제가 보니 유서에 모든 게 나와 있어요. "내가 이렇게 살 자신이 없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잖아"라고. 주변에서 진지하게 듣고 개입했다면 막을 수 있었어요."


-왜 그 신호를 보지 못하는 걸까요?


"무지해서죠. 한편으론 각자의 삶이 힘겨워서고요. 한국처럼 미국 한인 사회도 부부가 맞벌이하지 않고는 살기 힘들어요. 한국에서 명문대 나온 부인들도 슈퍼에서 손가락 관절이 나가도록 캐셔를 하죠. 자식 교육을 위해 한국을 떠나왔지만, 정작 아이들은 명문대에 들어가서부터 방황을 시작해요.


UC버클리에 100명이 들어가도 졸업 시즌엔 20명이 남고 그 스펙으로도 제대로된 직장에 들어가는 청년은 최종적으로 7~8명이에요. 한국식 교육으로 입학한 아이들은 첫학기에 C 학점을 받으면 우울증에 걸려요. 일명 C 쇼크죠. 백인들은 C 학점을 받아도 웃지만, 한국 아이는 실패하면 부모를 실망시킨다는 강박에 자기 인생을 못 누려요."


그 모든 상황을 보았기에 김영철은 자신의 아이들이 대학에 갔을 때 두 가지를 당부했다고 한다. 첫째, 성적은 B 학점을 목표로 할 것. 둘째, 친구를 많이 사귀며 실컷 놀 것. 무리하게 장학금 받으려고 강의실과 집만 오가다 정신질환의 늪에 빠진 청년을 숱하게 봤기 때문이다.


-부모들과 그 문제로 이야기를 해보았나요?


"네. 하지만 아이 인생에 더는 간섭하지 말라고 하면 분노합니다. 당신들의 존재 가치가 자식을 미국 명문대 보내는 거였으니까요. "내가 희생해서 자식이 좋은 대학 좋은 직업을 갖게 하고 싶었다"는 거죠.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은 아이가 졸업도 못 하고 정신질환에 시달릴까요? 의외로 가난해서 부모가 신경 쓸 여력이 없는 가정의 아이들이 건강해요. 스스로 공부하기로 결정한 아이들이 성공적인 대학 생활을 하죠."


-차별이나 편애가 뇌질환을 촉발하는 주요 변수라고도 했습니다.


"형제자매 중에 유독 뛰어난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 나머지 아이들이 우울증을 겪어요. 탁월한 자녀는 제 갈 길을 잘 가는데, 부모는 명예욕에 유독 그런 그 아이에게만 집중하죠. 제가 만난 아픈 청년들도 형제자매가 다 명문대를 나왔어요. 열쇠는 부모에게 있어요. 진심으로 "네 인생을 살아라"고 격려해줘야 해요. 뛰어난 형제와 비교하지 말고 "네가 살아있는 것만으로 기쁘다"고 온 마음으로 반복해서 말해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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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질환을 겪을 가능성이 있어요. 어떤 자극이나 계기를 통해 발병하는가 않는가의 차이죠.”/사진=이태경 기자

-쉽고도 어려운 일이군요!


"그렇지요. 자신은 편애로 상처준 적 없다고 해도 자녀가 비교당한다고 느낀다면 표현방식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 명문 약대에 입학한 아이가 자살 시도를 했어요. 그 애 엄마가 "이제 다 필요 없다. 너만 있으면 돼"하고는 뒤돌아서 한숨을 쉬어요. 아이들은 공기의 흐름까지 느껴요. 그 이중 메시지 때문에 더 힘들어하죠. 그 아이는 10번을 자살 시도해서 발목뼈가 다 부서졌어요. "엄마는 위선자"라면서."


-어린 시절 상처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튀어나올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모두가 뇌질환의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UC 얼바인을 졸업한 청년인데 계속 자살 시도를 해서 제가 물었어요. "뭐가 제일 힘드니?" 엄마가 무섭대요. 성장 과정에 폭력은 없었어요. 다만 어릴 때 부부싸움을 하던 엄마가 9살 된 아이를 끌어안고 그랬대요. "너랑 나랑 같이 죽자!" 그때부터 죽임을 당하는 공포가 엄습해서, 엄마를 멀리했답니다.


공부는 잘했지만, 불안이 높아 졸업 후에 좋은 직장을 못 잡았어요. 그게 트리거가 돼서 자살 충동에 시달렸고요. 칼로 허벅지를 심하게 자해해서, 제가 그 청년 동의 하에 정신병원에 입원시켰습니다. 큰 불행도 씩씩하게 이겨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작은 스트레스조차 곪아서 크게 터지기도 해요. "


-고통을 제거하고 삶을 설명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이토록 고통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무어라 위로합니까?


"저는 고통은 신이 보내주신 선물이라고 합니다."


‘죽고 싶은데 살고 싶다'에는 고통과 감사의 신비한 인과관계에 대한 사례가 나온다. 부모에게 폭력을 일삼던 20대 여성 미셸은 어느 날 정신병원에 찾아온 부모에게 고백했다. "그동안 미안했어요. 엄마, 아빠 고마워요." 완치는 요원하지만, 부모도 깨달았다. 가끔은 딸아이와 웃으며 산책하는 그 선물같은 하루가 축복이라고.


환자는 기쁨 속에 있는데 가족은 고통에 잠긴 경우도 있다. 선천적인 뇌장애로 태어난 성진은 휠체어와 전기장치를 달고 살았지만, 항상 웃고 즐거워했다. 놀랍게도 그는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지 않았다. 어느 날 성진의 부모가 말했다. "성진이가 불행한 게 아니라 아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 불행한 것이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당한 사람들이 꼭 하는 질문이 있지요. "왜 꼭 그게 나여야만 합니까?"


"고통은 너무 아프고 슬픈 포장지에 싸여 있어서 그 선물을 자발적으로 풀어보고 싶은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선물인 것은 분명해요. 고통을 통과해야 ‘내가 누구인지' ‘신은 어떤 분인지'를 알 수 있어요. 더 높은 차원에서 내 삶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을 수 있지요."


-그 선물은 잊을만하면 또 새로운 포장으로 배달되더군요. 성경의 ‘욥기'처럼 말이지요.


평온하게 말을 이어가던 김영철의 얼굴이 갑자기 슬픔으로 일그러졌다.


"저도 아픈 세월을 많이 보냈어요. 구체적으로 죽음과 자살을 생각했지만, 그 고통이 저를 변화시켰어요. 제가 23년 만에 한국에 왔어요. 그 사이 조현병을 앓던 첫째 여동생은 유방암에 걸려 천국으로 갔어요. 가족들은 애통해했지만, 그 애는 괜찮다고, 하나님 만난다고 기뻐하더군요.


그런데 그 뒤에 셋째 여동생이 또 조현병에 걸렸습니다. 세자매가 한 방에서 오래 생활했거든요. 어머니 돌아가시고, 둘째가 결혼도 포기한 채 아버지와 함께 오랜 세월 언니와 동생을 돌봤어요. 그런데 지금 그 애가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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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의미를 찾지못했다면, 시간을 갖고 다시 찾아야합니다.”/사진=이태경 기자

-그 가정이야말로 영적인 전쟁터군요.


"저는 96년에 선교사로 샌디에이고에 파송돼서 지금까지 미국에서 뇌질환 환자와 가족을 돌보고 있습니다. 고통을 알기에 도울 수 있는 거지요. 지금 저의 궁금증은 ‘무고한’ 저희 둘째 여동생입니다. "하나님, 둘째의 인생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 숙제를 풀고 있어요. 고통의 의미를 찾지못했다면, 시간을 갖고 다시 찾아야합니다."


-그 말이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가 닿던가요?


"조울증이 심한 아들을 둔 어머니를 만난 적이 있어요. 맥도날드에서 만나 위로하고 헤어졌는데 왠지 마음이 급해서 며칠 후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그 어머니가 그러세요. 절 만났을 때 이미 자살 결심을 했었다고. 차로 할까, 투신할까, 약을 먹을까만 고민 중이었는데, 저를 만나고 마음을 돌리셨다고 해요.


제가 그랬죠. "어머니 잘못이 아니다. 아들이 아프지만, 그 고통을 겪게 하는 참뜻이 있다. 모르면 찾아야 한다. 반드시 뜻이 있으니 찾으라"고요. "아픔이 감사하다"는 제 고백은 진실입니다. 저는 눈물이 많아요. 그리고 제가 흘린 눈물만큼 감사했습니다. 지금 제 아내도 울며 기도하는 저를 궁금해하다 결혼했지요."


-모든 걸 가진 것 같은 스타들도 우울과 고통과 자살이라는 연쇄 고리를 피할 수 없더군요. 책에서 로빈 윌리엄스, 김광석 등의 사례로 죽음의 유혹을 설명했는데, 우리는 그들이 보내는 사인에 실제적으로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자살 충동이 있는 사람은 100% ‘우울하다'는 사인을 보내요. 그때 정확하게 물으세요. "너 혹시 자살할 생각이 있니?" "죽고 싶은 생각이 들어?’ "구체적인 방법도 생각한 거야?" 자살하려던 사람에게 기름 붓는 것 같지만, 직면시키면 그 충동이 현저하게 줄어듭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누군가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하면 대충 넘어가지 마세요. 자살을 결심한 사람은 주변부터 정리해요. "이 시계 너 가져라. 내 개 좀 맡아줘라. 우리 집은 나만 없으면 행복할 거야." 이때 타이밍을 놓치지 말고 치밀하게 물어줘야 해요. 언제부터 그랬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그러면 풍선에 바람빠지듯 자살 의지가 빠져요. 더 심각하면 의사와 상의하도록 조치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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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극소수며 99.9%의 조현병 환자들이 혼자서 숨어지내며 자기 삶을 슬퍼한다.

-하지만 우울증과 달리 조현병은 최근 한국에서 불특정 다수를 공격해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으로 알려져 그 공포가 심각합니다. 심할 경우 가족과의 격리를 최우선의 처방으로 제시하셨는데요.


"가족과 지낼 수 있느냐 없느냐는 첫째, 폭력성 여부. 둘째, 약을 잘 먹을 수 있느냐예요. 환자들은 약의 부작용을 염려해서 혀 밑에 감추고 안 먹는 경우도 많아요. 약을 먹는다는 건 병을 인정한다는 거죠. 제 막냇동생은 약은 못 챙겨 먹지만 다행히 폭력성은 없어요. 칼로 주먹으로 위협하는 것뿐 아니라 ‘죽이겠다'고 말로 협박하는 것도 폭력이에요. 이런 상황이 생기면 병원에 강제 조치해야 해요.


어렵다면 빨리 이사하고 접근을 막은 후 경찰에 신고하세요. 병원에 입원하면 자기 병에 인식이 생깁니다. 가족들도 그때부터 변화를 보여야 해요. "네가 어차피 그 모양이지?" 아픈 아이를 똑같이 대해 스트레스를 주면 100% 재발하니, 진심으로 사랑을 보여줘야 합니다."


-안타깝지만 얼마 전에는 한 조현병 환자가 의사를 찾아와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공격적인 정상인의 폭력성과 조현병 환자들의 폭력성을 비교하면 조현병 환자가 훨씬 낮아요. 사건이 한번 터지면 확대 재생산돼서 병에 대한 오해가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극소수며 99.9%의 조현병 환자들이 혼자서 숨어지내며 자기 삶을 슬퍼한다고 했다. 위가 아프면 위장약 먹는 것처럼, 뇌가 아파서 약을 먹는 사람들이라고.

조선일보

눈물 고인 눈동자로도 활짝 웃는 김영철 목사. 릭 워렌 목사가 운영하는 새들백 교회의 정신 건강 프로그램을 비롯해서, 미국에는 지역 사회의 학교나 종교 단체가 뇌질환자들을 효율적으로 상담 치료하고 있다고./사진=이태경 기자

-그렇다면 우리는 뇌질환자들과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뇌질환자 부모들이 신기해하며 저한테 물어요. "우리 애가 어떻게 목사님 하고는 대화가 되느냐"고요. 저는 제 동생을 겪어봐서 그들을 대할 때 "이상하다"는 생각을 전혀 안해요. "너 표정이 쿨해서 인기 많겠다" 농담하며 일반인과 똑같이 대하죠. 그들은 상대의 뉘앙스를 전부 읽어요.


바라는 건 부디 신문 방송에서 ‘조현병이 사람 죽이는 정신병'이라고 자극만 안 했으면 좋겠어요. 미국의 표준진단체계인 DSM-5 테스트에 따르면 정신질환이 아닌 사람이 거의 없을 거예요. 기자님도 저도 아픈 부분이 있는 환자예요. 다만 당장 약을 안 먹고 병원에 안 간다는 게 차이죠. 이것만 명심하세요. 그 누구도 정신질환에 예외는 없어요."


[김지수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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