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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시후레쉬 50년, “매일 껌 100개 씹으면서 신격호 회장과 만들었죠”

[아무튼, 주말] 롯데껌 반세기 산 증인 ‘껌 할아버지’ 권익부


1967년 3월 26일. 신격호 일본 롯데 사장(당시 직책)이 일본 롯데 한국지점 신입 직원 권익부를 서울 영등포 롯데화학공업사에 있는 사무실로 불렀다. 권씨는 당시 27세, 입사 3년 차로 껌 생산 기술을 연구하고 배우던 직원이었다. 45세 신 사장은 흰색 연구 가운을 입고, 스무 살 정도 어린 권씨와 단둘이 하루 종일 껌을 만들었다. 설탕과 물엿, 껌 베이스 등을 섞고, 껌을 씹었다 뱉기를 반복하며 맛을 연구했다. 권익부 전 롯데그룹 중앙연구소 소장(81)은 이렇게 회고했다. “재벌 총수가 직접 껌을 만들어 씹는 것을 보고 무척 신기했어요. 신 사장님은 이리저리 껌 맛을 개발하겠다며 열심히 뛰어다녔죠.”


1972년이 되자 우리나라 수퍼마켓에 가로 7.2cm, 세로 2cm 크기의 껌이 등장했다. ‘쥬시후레쉬’ ‘후레쉬민트’ ‘스피아민트’라 이름 붙은 세 종류의 껌은 각각 노란색과 녹색, 흰색 포장지에 싸여 팔렸다. 기존 껌보다 크기가 커서 ‘대형껌’이라 불렸다. 세 껌은 큰 인기를 끌었고,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이후 작은 껌들은 자취를 감췄고, 이 껌의 크기가 한국 표준이 됐다.


쥬시후레쉬 등 ‘롯데껌 삼총사’가 탄생한 지 올해로 50년을 맞았다. 2000년대 들어 입 냄새와 충치를 막아주는 껌이 인기를 끌면서 판매량은 예전보다 다소 줄었지만 작년에도 60억원가량 팔리면서 여전히 마트와 편의점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권익부 전 소장은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을 도와 세 껌을 탄생시킨 주역. 그에게 50년 껌의 생존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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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출시 당시 쥬시후레쉬, 후레쉬민트, 스피아민트의 모습(왼쪽)과 2021년 현재 모습. 출시 당시 가격은 껌 한 통당 20원이었다. 현재 가격은 1000원.

저작력을 아십니까?

롯데제과는 2017년 ‘후레쉬민트’ 생산을 중단했다. 삼총사 가운데 가장 안 팔리는 껌 생산을 중단하고, 자일리톨, 후라보노 등 인기 있는 껌들로 ‘선택과 집중’을 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올해 초 다시 제작·판매를 시작했다. 복고 제품을 원하는 고객들의 레트로 취향 때문이다. 세 껌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쥬시후레쉬(노란색)다. 쥬시후레쉬는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522억원어치 팔렸고, 스피아민트와 후레쉬민트의 판매액은 각각 406억원과 24억원이었다. 롯데제과 관계자는 “단맛을 중시하는 한국인의 기호가 반영된 것”이라고 했다.


-세 껌이 이렇게 오래갈 거라고 생각했나요.


“이 껌들은 미국 ‘리글리’라는 회사가 1800년대 후반에 개발한 것을 토대로 한국인 입맛에 맞는 향과 식감으로 개발한 겁니다. 미국에서 성공했기 때문에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아무리 맛있는 미국 껌이라고 해도 우리나라에 그대로 들여와 팔면 절대 성공할 수 없어요.”


-왜 그런가요.


“시대마다 인종마다 저작력(咀嚼力), 즉 음식을 입에 넣고 씹는 힘이 다르기 때문이죠. 예전에 숙명여대에서 신라 시대 궁중 음식을 옛 기록에 따라 복원해서 먹어봤는데, 도저히 먹기가 어렵더라고요. 너무 질기고 딱딱해서. 신라 시대 궁중 음식은 한 사람이 다 먹으려면 1600번을 씹어야 하는 데 반해, 비슷한 양의 현대 음식은 500번만 씹으면 됩니다. 신라 사람들이 지금의 우리보다 훨씬 저작력이 강했던 거죠. 우리가 먹는 음식은 지금도 점점 부드러워지고 있어요. 예를 들어, 1970년대 두부를 지금 가져오면 먹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예전에 두부 만드는 사람들과 저녁을 먹으면서 들었는데, 990원짜리 부침 두부가 단단하다고 자꾸 항의가 들어온다고 해요. 그래서 두부를 갈수록 부드럽게 만든다고. 껌도 마찬가지죠. 서양인은 동양인보다 씹는 능력이 강해요. 그러다 보니 껌도 딱딱한 걸 씹죠. 아무리 맛있어도 서양 껌이 한국이나 일본 같은 아시아권에 수입되면 팔리지 않아요. 껌을 잘 만들기 위해 사람들 씹는 능력을 늘 연구하고 조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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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껌 판매를 증가시키기 위해 승용차 등 푸짐한 경품을 내걸었다.

-옛날 자료를 보니 껌을 사면 황소를 경품으로 주기도 했더군요.


“롯데껌이 히트를 친 데에는 각종 경품이 큰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신격호 회장은 1950년대 일본 롯데에서 껌을 처음 팔 때, 바닥에 100엔짜리 지폐가 깔린 껌볼(풍선껌 60개가 담김)을 일부 내놨다고 해요. 당시 껌 한볼이 300엔 정도였으니, 운이 좋으면 껌값의 3분의 1을 돌려받았습니다. 그게 히트를 쳤죠. 돈 좀 있는 사람들이 껌을 몇 볼씩 사갔거든요. 신 회장은 한국에 와서도 과감하게 경품을 내걸었습니다. 100원짜리 껌을 사 잘 뽑으면 승용차를 줬고, 퀴즈를 맞히면 피아노나 황소 한 마리를 주기도 했습니다. 역시 대박이 터졌고요.”


-껌에 대한 한국인과 일본인의 취향이 다른가요.


“일본인은 스시를 많이 먹어요. 그러면 와사비 등이 이빨에 끼게 되죠. 스시를 먹은 뒤 입에 청량감을 주는 디저트가 필요하다 보니 스피아민트를 많이 씹어요. 반대로 한국인들은 일본인보다 단맛을 중시했죠. 그래서 쥬시후레쉬를 많이 씹고, 스피아민트를 덜 찾았지요.”

지난달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롯데제과에서 만난 권익부(81) 전 롯데 중앙연구소 소장. 그는 "껌을 오래 씹어, 음식을 씹는 능력이 좋아져 현재 신체나이가 62세"라며 웃었다.

매일 껌을 100개 이상 씹었다

권 전 사장은 부산대에서 화학을 전공한 뒤 25세에 롯데그룹에 입사했다. 껌 연구자가 돼 매일 껌을 100개 이상 씹었다. 삼총사 껌 등 여러 제품을 히트시키고 과자 분야에서도 일한 뒤 2005년 사장급인 롯데그룹 중앙연구소 소장을 끝으로 현업에서 물러났다.


-껌의 매력은 뭔가요.


“긴장 이완이죠. 전쟁에서 병사는 50미터 앞에 적이 보이면 총을 쏴야 합니다. 그때의 긴장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죠. 긴장감을 달래려면 타액(唾液)이 나와야 합니다. 껌을 씹으면 타액이 나오고, 안면 근육을 쓰게 돼 긴장감이 어느 정도 풀립니다. 처음 미국 군대에 껌이 보급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껌을 연구하는 게 꿈이었나요.


“원래는 대기업에서 2년여 동안 돈을 벌어 일본으로 유학 가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1964년 12월에 롯데그룹 공채 시험을 쳤죠. 서울 용산구 갈월동 롯데제과 2층 껌 포장실에서 시험본 150명 중 2명이 합격했는데, 제가 뽑혔어요. 당시 국립대학 졸업식은 대체로 2월 26일 전후에 있었는데, 기업들은 12월 말에 곧바로 합격자를 발표하고, 1월부터 월급을 줬습니다. 신입사원을 붙잡아 두려는 관행이었죠. 처음엔 조청 공장에 가서 조청 만드는 법과 고추장 만드는 법을 배웠고 그 후 회사에 들어가 껌 만드는 법을 배웠어요. 그러다 1967년 신격호 회장이 껌 연구 실무자인 저를 사무실로 불렀고, 하루 종일 신 회장님과 껌을 만든 겁니다.”


-껌을 만들면서 신 회장이 뭐라고 하던가요.


“잔뜩 긴장해서 설탕을 두어 숟갈 실험하는 테이블에 쏟았어요. 회장님이 ‘테이블에 있는 설탕을 다시 담으라’고 하더군요. 그땐 ‘돈 많은 재벌이 뭐 이리 쩨쩨하나’ 생각도 들었는데요, 그게 절약과 절제를 가르치는 거였어요. 또, 새로 준비하는 껌 맛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제조부장을 부르더군요. 껌 맛을 향상시키기 위해 제조부장과 연구원은 공장에서 먹고 자게 하면서 연구하도록 했지요. 물엿과 설탕을 수백 번 섞던 기억이 납니다. 돌아보니, 기업 오너가 직접 껌을 연구하고 제작하고 마케팅에 힘을 쏟은 것이 3종 껌이 성공한 이유중 하나가 아니었나 생각해요. 일부 롯데껌은 신 회장이 직접 관여하지 않았는데, 그런 껌들은 출시됐다가 금방 시장에서 사라져버렸죠.”


-최근에는 자일리톨 껌 등이 인기입니다.


“시대마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껌이 달라요. 간식이 변변치 않던 1970~80년대에는 단맛이 얼마나 오래가느냐가 중요했는데, 이후에는 맛보다 향의 지속력이 중요해졌지요. 그러다 2000년대 초 핀란드 나무에서 추출되는 자일리톨을 바탕으로 단맛을 내는 껌이 대세를 이뤘죠. 단맛이 나면서도 충치에 도움이 된다는 점이 먹힌 거예요. 그때부터는 껌이 플라스틱 통에 담겨 판매됐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약통에 있는 제품은 뭔가를 치료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점을 고려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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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가 내걸었던 경품. 황소와 오토바이 전축, 피아노 등이 눈에 띤다.

-껌을 많이 씹어 생긴 습관, 직업병 같은 게 있나요.


“40년 동안 하루 평균 20분씩 껌을 씹다 보니 저작력이 좋아진 것 같아요. 껌 씹는 습관 덕에 음식물을 오래 씹고, 잘게 빻아서 소화하다 보니 건강해질 수밖에 없죠. 자동차로 치면 연소 능력이 좋다고 할까. 얼마 전 신체검사를 했는데, 제 신체 나이가 62세로 나왔어요(웃음).”


-한국 껌의 미래, 어떻게 봅니까.


“동남아 시장으로 진출해야 합니다. 인구 6억 명이 넘는 큰 시장이죠. 동남아 사람들은 우리보다 씹는 능력이 더 떨어집니다. 한국보다 더 연한 껌을 제작해 판매하면 큰 이윤을 남길 수 있을 겁니다.”


-롯데는 경영권 분쟁을 겪었고, 일본 기업 아니냐는 논란도 있습니다.


“신격호 회장은 일본에서 우유와 신문을 배달하다 성공적으로 창업했고, 한국에도 많은 일자리를 만들었습니다. 미국으로 건너가 성공한 사람은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칭송하는데, 일본에서 성공했다는 이유로 그 의미를 깎아내리는 건 맞지 않다고 봅니다. 형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어릴 적부터 봤습니다. 전자공학을 전공한 형은 이과(理科)적인 생각이 강하고 자유분방했습니다. 한번은 어머니가 자동차를 사주면서 타고 다니라고 했는데, 거부했어요. 전철을 타는 게 좋다는 거였죠. 동생은 그와 달리 종합적으로 사고하고, 행동을 했습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동생에게 경영권이 갈 거라고 속으로 생각했는데, 결국 그렇게 되더군요.”


[곽창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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