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형차 한 대 값으로 누리는 별장? ‘농막’이 뭐길래
[아무튼, 주말] 부동산 규제, 코로나19에 주거지로 변신한 ‘농막’
“시골에 땅 사서 농막 주택 설치하니 펜션 갈 필요가 없어요.”
지난해 12월 ‘주말 미니별장으로 최고’라며 한 유튜버가 올린 영상. 진입로부터 자갈이 곱게 깔린 전남 영광의 한 시골집이 소개됐다. 20㎡(약 6평) 정도의 작은 크기지만, 냉장고·인덕션·에어컨·간이 소파까지 갖추고 있어 이 유튜버 말대로 별장으로 머물기에 손색이 없어 보였다. 매트리스가 놓인 다락은 침실 역할을 한다. 차양이 설치된 커다란 마당에선 캠프파이어를 하며 요즘 유행하는 ‘불멍(불 보며 멍하게 있기)’도 즐길 수 있다. 개집도 따로 두고 강아지도 키운다.
이 유튜버는 “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라며 “농막 주택이 요즘엔 진짜 잘 만들어져 세컨드 하우스(second house)로 손색이 없다”고 했다.
사실 이 주택은 불법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농막 주택’이란 말 자체가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농지법상 농막(農幕)은 ‘농작업에 직접 필요한 농자재 및 농기계 보관, 수확 농산물 간이 처리 또는 농작업 중 일시 휴식을 위하여 설치하는 시설’이다. 주거 목적으로는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유튜브나 포털사이트 등에 ‘농막’을 검색하면, ‘중형차 한 대 값으로 누리는 별장’ ‘6평의 세컨드 하우스’ 등의 글이 수백건 쏟아진다. 카페를 연상케 하는 세련된 디자인이나, 2층까지 증축해 실용성을 높인 곳도 있다. 농지에 세우는 6평짜리 가건물 농막, 도대체 왜 인기일까.
최근 강원도 횡성군에서 적발된 불법 농막들. 농막은 마당까지 포함해 6평 이내여야 하는데, 돌과 시멘트로 장독대를 설치하고 비닐하우스 안에 바비큐장을 만들었다. 규제 완화 목소리도 나온다. /횡성군 |
◇부동산 규제 피할 수 있다
도시에서 은퇴한 김모(64)씨는 3년 전 강원도 산골에 농막을 지었다. 김씨는 “은퇴를 생각해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농지를 사들였다”며 “농지에는 주택을 짓는 게 불가능해서, 설치가 가능하다는 농막을 지었다”고 했다.
농막은 원래 몇 년 전부터 은퇴자들 사이에 알음알음 알려졌다. 노부부가 살기에는 6평 이내의 규모가 크게 불편하지 않고, 큰돈 들이지 않고도 시골에 거처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게 장점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로 해외여행이나 호텔·리조트 숙박 등이 어려워지면서, 농막을 찾는 사람이 다양해졌다. 한 지방 소도시 공인중개사는 “코로나 이전에는 은퇴자 문의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아이를 둔 부부 등 젊은 세대의 문의가 크게 늘었다”며 “농막을 주말 별장이나 캠핑 텐트 대용으로 여기는 분위기”라고 했다.
컨테이너 가건물인 농막의 가격은 평균 1000만~2000만원 선. 농지에 설치할 수 있기에 토지 구입비도 크게 절감된다. ‘중형차 한 대 값으로 누리는 별장’이란 말이 나오는 게 이 때문이다. 설치는 하루면 가능하며, 추후 중고로 되팔 수도 있다. 물론 목재로 외벽을 시공하고, 단열을 강화한 고급 농막 주택의 경우 4000만~5000만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농막 주택 인테리어만 전문으로 하는 업체도 있다.
한 부동산 전문 유튜버는 “농막은 개발제한 구역으로 묶인 곳이나 땅값이 저렴한 농업 진흥 지역(절대 농지)에도 설치할 수 있다”며 “근교에 저렴한 농지를 사서 주말 농장이나 별장·사무실 등으로 활용하다가, 땅값이 오르면 농막은 중고로 처분하고 개발 수익은 그대로 가지면 된다. 이건 악용이 아니라 활용”이라고 했다. 최근 토지 투기 의혹을 받았던 LH 직원도 자신의 토지에 농막을 설치했었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가 강화되면서, 농막은 다주택자로 분류되지 않으면서 지방 소도시에 내 집을 가질 수 있는 대안(?)으로도 떠오르고 있다. 농막은 주택 수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등 부동산 규제를 피할 수 있다. 취득세나 재산세 등 부동산 관련 세금에서도 자유롭다.
◇불법 농막과의 전쟁
농막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원주민들의 불만은 폭주하고 있다. 지난 2~3월 강원도 횡성군이 군민 32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10명 중 8명 이상(84%)이 농막으로 인해 부정적 피해를 겪었다고 답했다. 주거 시설이 아닌 농막은 대개 별도 배수로가 없어, 오·폐수 등으로 인한 악취나 오염 문제가 생긴다. 또 외지인이 마을에 진입하면서 위화감을 조성하거나, 농지 훼손 등으로 주거 환경을 해치기도 한다. 주거 시설로 지어진 게 아니기 때문에 화재 등 각종 재해와 안전사고에도 취약하다. 횡성군청 관계자는 “농막에 일가 친척을 초대해 늦은 시간까지 바비큐 파티를 벌이고, 노래방 기계를 틀어 놓고 고성방가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주민들 민원이 빗발치자 횡성군은 작년 9월부터 농막 단속에 나섰다. 최근까지 총 85건의 불법 농막을 적발했다. 농막은 마당까지 포함해 6평 이내여야 한다. 가정집처럼 별도 마당을 두고 장독대를 설치하거나, 아예 농막 앞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바비큐장을 운영하는 경우 등이 단속에 걸렸다.
단속에 나선 군청 관계자는 “인력이 부족해 기준 면적 초과나 농지 훼손 등 누가 봐도 구별할 수 있는 불법만 따진 게 이 정도”라고 했다. 적발된 불법 농막에는 원상 복구 명령이 떨어졌다. 1·2차 시정명령을 통해서도 복구되지 않으면, 행정처분을 통한 과태료가 부과된다.
횡성뿐 아니다. 강원 원주시, 인천 강화군 등도 최근 ‘불법 농막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들 지역은 수도권과 가깝고 교통이 좋으면서도 농지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강화군은 작년 5월 농지관리팀을 신설했고, 원주시도 불법 농막 단속을 위한 6개조 12명 규모 조사팀을 꾸렸다. 일부 주민들은 아예 일정 규모 이상의 토지를 경작하는 외지인만 농막을 설치할 수 있게 해달라는 민원도 제기하고 있다.
농막 규제를 현실에 맞게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는 A씨는 “최근 들어 농막 설계 의뢰가 급증했는데, 그만큼 농촌에서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수요가 있다는 뜻 아니겠느냐”면서 “지방 인구 감소가 중요한 사회문제가 된 만큼, 지자체에서 차라리 농막을 양성화하는 정책을 펴면 해당 지역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인천 강화군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B씨도 “몇 년 전 정부가 농촌과 도시 간 결연 사업을 펼치는 등 5도 2촌(5都2村· 평일 닷새는 도시에서 일하고 주말 이틀은 시골에서 사는 삶)을 강조하지 않았느냐”면서 “도시 사람들이 농촌에서 주말 농장을 운영한다고 했을 때, 이동 거리도 있는데 어떻게 하룻밤 쉬지도 않고 다시 도시로 가겠느냐. 하루 자고 가려면 취사 도구도 있어야 하고, 씻을 물도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지자체마다 규정이 다른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농지법상 농막에서 ‘일시 휴식'은 취할 수 있게 돼 있지만, 어디까지가 휴식이고 주거인지 분명하게 나누는 기준은 없다. 그렇다 보니 특정 지역에서는 정화조 설치 등이 허용되기도 하지만, 다른 곳에선 불법이 된다.
공인중개사 B씨는 “지금 지자체는 농막에서 휴식의 개념은 빼고 창고 기능만 내세우고 있다”며 “농막 주변에 꽃 조금 심고 야간 조명 설치해놓으면 ‘별장형이다’ ‘펜션이다’ 하면서 단속을 한다. 6평짜리가 별장이래 봤자, 얼마나 대단하겠느냐”고 했다.
[남정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