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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이 꼴보기 싫은가? 적어도 사기꾼은 아니다"

그림 대작 사건 무죄 판결

本紙 조영남 자택 인터뷰

"유명인에 대한 질투도 한 몫

…논란 억울해도 얻은 것 많아"

조선일보

25일 서울 청담동 자택에서 만난 조영남이 자신의 그림을 들어보이고 있다. "지난달 공개 변론 당시 대법관에게 보여주기 위해 법정에 가져갔지만 너무 오버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차마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상혁 기자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


가수 겸 화가 조영남(75)씨는 ‘그림 대작(代作) 사건’에 휘말렸다가 25일 최종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날 서울 청담동 자택에서 만난 조씨는 “지난달 공개 변론 분위기가 일방적으로 내게 유리해 무죄를 예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4년만의 승소 통보를 받아든 조씨는 본지 인터뷰 도중에도 빗발치는 지인들의 전화를 응대하느라 분주했다.


―큰 풍파를 겪었다.

“사는게 만만치 않다는 걸 절감한다. 이 일로 수모를 치렀지만 언젠가는 내가 그렇게 비도덕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걸 사람들이 알아주리라 믿었다. 이번 사건으로 얻은 게 많다. 자연히 친구와 적을 구분할 수 있었고, 시간이 많아져 그림을 열심히 그리게 됐다. 그리고 내 하나 뿐인 딸과의 결속이 단단해졌다.”


조씨는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송모(63)씨 등 화가 2명을 고용해 화투 그림 26점을 그리고, 자기 작품이라고 속인 혐의로 재판을 받아왔다. 송씨 등이 거의 대부분을 완성한 그림에 조씨가 가벼운 덧칠과 서명만 한 뒤 전시·판매한 것은 사기 행위에 해당한다는 주장이었다. 대법원은 그러나 미술품 제작에 제3자의 도움이 있었는지 여부가 구매자에게 꼭 필요한 정보로 확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며 조씨의 손을 들어줬다.


―억울한가?

“억울한 면이 왜 없겠나. 검찰이 나를 사기꾼으로 몰았다. 그렇게 자꾸 내가 사기꾼으로 인식되는게 너무 억울했다. 나도 모르게 한(恨)이 쌓였던 것 같다. 그래도 그간 내가 사회로부터 받은 게 컸으니 그걸로 퉁 쳤다.”


―이 사건에 선입견이 작용했다고 보나?

“그게 거의 전부 아니었을까. 돈 잘 버는 유명 대중가수가 그림까지 그린다니 못마땅했을 것이다. 잘 나가는 사람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은 자연 현상이다. 이건 무죄가 나왔어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기 죽어서 할 일 못할 필요는 없다. 미술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다. 별 볼 일 없던 그림 그리는 가수한테 ‘너 그림 제대로 그려라’고 본격적인 사명감을 줬다. 대한민국 법이 나를 화가로 만들었다.”


대체로 미술계에서는 이번 사건이 애초에 사법 판단에 기댈 성격이 아니라는 데 의견이 모인다. 저작권 측면에서는 다툼의 여지가 없고, 조수를 쓰는 것도 이미 널리 퍼진 관행이기 때문이다. 특히 열성적으로 조씨의 편에 섰던 평론가 진중권은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인데, 아이디어는 조영남이 냈고, 시장에 예술적 논리를 관철시킨 것도 조영남이고, 화투 그림을 그리라고 지시한 것도 조영남이고, 마지막으로 작품을 확인하고 사인을 한 것도 조영남”이라며 옹호했다. 하지만 일반 대중의 시각은 싸늘했다. 고가(高價)의 그림값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송씨의 작업 보수가 알려지자 인터넷에는 조씨를 비판하는 게시글이 빗발쳤다.


―일각에선 “조영남은 화가가 아니다”라고 한다.

지난달 공개 변론 당시 검찰 측 증인으로 나온 신제남 화가가 ‘조영남은 캔버스를 액자에 끼운 채로 그림을 손본다’고 뭐라고 하는데, 그건 내 취향이다. 나는 액자도 그림의 일부로 생각한다. 미술에 얽매여야 할 규칙 같은 건 없다. 규칙과 연마가 중요한 음악과 달리, 미술은 거의 100% 자유다. 그게 미술의 매력이다. 내가 좋으면 좋은 거고 싫으면 아닌 거다.”


―법정에선 이겼지만 도덕적 차원의 비판은 여전하다.

“작품 대부분을 조수에게 맡기고 관리·감독이 미진했다고 하는데, 송씨가 우리 집에서 3개월간 같이 살았다. 서로 이미 원하는 걸 다 아는데 관리·감독 할 이유가 어디 있나. 그냥 ‘이대로 똑같이 그려오라’고 하는건데. 돈 문제도 그렇다. 만약 제대로 안줬다면 그가 가만히 있었겠나.”


―이후 송씨와 연락 안했나?

“2018년 2심에서 무죄 판결 나온 날, 전화가 왔다. 다시 같이 일 할 수 없겠느냐고 묻더라. ‘지금은 내가 너 보기 서먹하니 시간을 두고 생각하자’고 말했다. 그게 마지막이다.” 그는 현재 다른 조수를 한 명 두고 있다.

조선일보

조영남 자택 현관 입구에 놓여 있는 화투 그림. /정상혁 기자

그는 집에 1000점의 그림을 보관하고 있다. “매일 아침 일어나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지난 4년간 완성한 그림만 수백점이다. 싸리 바구니 등을 활용해 초가집을 형상화 한 콜라주 작품 등이 방 곳곳에 널려있었다. 이날도 조씨는 시인 이상(1910~1937)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정신병자 소리까지 들었던 사람인데 지금은 누구보다 추종자가 많다. 내 처지에 빗댄 건 아니다.”


―승소하자마자 책도 냈는데.

“법정 싸움을 하면서 사람들이 현대미술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4년 전부터 쓴 책이다.” 현대미술의 계보와 자신의 지향을 담은 책 제목은 ‘이 망할 놈의 현대미술―현대미술에 관한 조영남의 자포자기 100문100답’이다. 그는 이 책에서 실제 똥을 통조림 통에 담아 봉인한 뒤 ‘예술가의 똥’이라 이름 붙인 이탈리아 작가 피에로 만초니를 인용하며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모든 예술이 다 아름답지는 않다는 것, 똥조차 훌륭한 예술이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올해 전시도 여나?

“서울 윤갤러리, 경기도 이천의 한 미술관에서 전시가 예정돼 있다. 앞으로도 화투 그림은 계속 그릴 것이다. 잘 팔리니까. 내 그림은 어렵지 않다. 어떤 화가들은 그림 위에 서명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 하지만 나는 아예 그림 위에 제목을 적어버린다. 영어제목, 한글제목, 거기에 낙관까지 찍는다. 나는 말하자면 트로트파(派)다. 누구나 봐도 쉽게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으니까. 트로트파가 많아져야 한다고 본다. 사람들이 그림에 조금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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