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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양공주였지만 부끄럽지 않아… 나한테는 영웅이니까”

[아무튼, 주말]

[박돈규 기자의 2사 만루]

‘전쟁 같은 맛’으로 전미도서상 후보

한국계 미국인 사회학자 그레이스 조


엄마는 양공주였다. 부산 어느 기지촌에서 청춘을 보냈다. 이름은 군자(1941~2008). 사회학자인 딸 그레이스 조(Grace M Cho)는 엄마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6·25전쟁, 가족 상실, 굶주림, 미군 기지촌, 혼혈아 출산, 미국 이민, 사회적 죽음 등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몸과 정신에 진열해 놓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레이스 조는 미국 브라운대를 졸업한 뒤 하버드대에서 교육학 석사를 받았고 현재는 뉴욕시립대 사회학·인류학 교수다. 엄마의 생애를 복기한 회고록 ‘전쟁 같은 맛(Tastes Like War)’은 2021년 전미도서상 논픽션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고 시사주간지 ‘타임’은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다. 2022년에는 아시아·태평양 미국인 도서상을 받았다.


최근 국내에 번역된 ‘전쟁 같은 맛’은 들추기 겁나는 세계로 독자를 잡아끈다. 책장이 바삐 넘어간다. 군자는 전쟁으로 오빠와 아버지 등 가족의 절반을 잃고 기지촌 클럽에서 일하다 상선 선원이던 백인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1971년 혼혈아 그레이스를 낳고 추방되다시피 미국 워싱턴주의 시골로 이민을 갔지만 인종차별이 심한 그곳도 피난처가 되진 못했다. 군자는 조현병을 앓으며 망상과 환청에 시달리다 2008년 생을 마감했다.


지난달 11일 서울 광화문에서 그레이스 조를 만났다.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사회학자는 첫인상이 견고해 보였다. 두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간 그녀는 “아이구! 답답으라” 등 몇몇 단어 말고는 한국어를 하지 못했다. “이 책은 상실의 슬픔을 글쓰기로 달래고 엄마라는 존재를 되살리려 시작한 프로젝트였어요. 한국어판이 나오고 한국 사람들이 엄마와 나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니, 기적적인 귀향(miraculous homecoming) 같아요.”


◇엄마의 삶은 추방의 연속이었다


비가 내려 축축한 날이었다. 인터뷰에는 그레이스의 아들 펠릭스(10)가 함께했다. 13년 만에 한국에 왔다는 그레이스는 “이번 방한은 내 자식과 같이 왔다는 점이 특별하다”며 “고향 부산을 비롯해 엄마와 외할머니의 나라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독자에게 이 책을 소개한다면.


“크게 두 갈래예요. 하나는 어머니에게 발병한 조현병의 사회적 근원에 대한 연구입니다. 상당 부분은 전쟁과 가족 상실, 미군을 위한 매춘 등 한국에서 비롯된 것이니까요. 다른 하나는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10여 년 동안 제가 엄마를 위해 해드린 한국 음식에 대한 회고록입니다.”


-제목은 왜 ‘전쟁 같은 맛’인가요.


“말년에 엄마는 식욕을 잃고 음식을 거부하곤 했어요. 라면과 과일 통조림만 드실 뿐 단백질 섭취가 부족했습니다. 올케가 분유를 드렸더니 ‘그 맛은 진절머리가 나. 전쟁 같은 맛이야’라고 하셨지요. 미국이 식량 원조로 준 분유를 먹고 (유당 불내증 때문에) 복통과 설사로 고생한 사람이 많았다는 자료를 본 기억이 났습니다.”


-그것은 어떤 맛이었을까요.


“냄새를 맡거나 맛을 볼 때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장면이 있잖아요. ‘전쟁 같은 맛’은 잊고 싶은 시절의 고통을 불러내는 맛이겠지요. 듣는 순간 ‘책 제목이 되겠구나’ 직감했어요. 음식 회고록은 따뜻하고 아름다운 추억만 소환하는 게 아니라 훨씬 더 복잡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과거에 끝난 전쟁이 아니라 현재에도 무엇과 연결돼서 사람들에게 어떤 기억을 불러일으키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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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이 Grace M Cho인데 외할머니의 성(姓)이라고 들었습니다.


“모계를 기억하기 위해서예요. 다른 이유도 있는데, 오빠와 올케 등은 과거를 덮어두고 싶어합니다. 저는 엄마의 진실을 말하되 다른 가족은 보호해야 했어요. 그래서 엄마의 엄마, 외할머니의 성을 사용합니다.”


-가족사를 세상에 공개하는 게 두렵지 않았나요?


“공포보다 해야 한다는 욕구가 더 강했어요. 엄마가 말하지 않은 비밀이자 트라우마,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침묵은 우리 가족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크게 보면 가족을 넘어서는 거대한 역사의 일부라서, 숨기지 말고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선택에 어머니도 동의하실까요.


“2008년 펴낸 학술서 ‘한인 디아스포라의 출몰: 수치심, 비밀 그리고 잊힌 전쟁’에서 양공주 문제를 다룰 때 엄마가 지지해줬어요.”


그 책에 따르면 6·25전쟁 이후 미군을 상대로 술이나 성(性)을 파는 서비스업에 종사한 한국 여성은 약 100만명에 이른다. 10만여 명은 미군과 결혼해 미국으로 이주했다. 정부가 사실상 기지촌을 운영했고, 혼혈아가 태어나면 해외 입양을 권장한 시절이었다.


-책에 ‘군자의 삶은 추방의 연속이었다’고 썼는데.


“정말 그랬습니다. 군자는 일본으로 강제징용된 가정에서 태어나 해방 후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전쟁을 겪으며 가족을 잃었고 ‘외국인과 살을 섞었다’는 경멸과 낙인 때문에 사실상 쫓겨났어요. 아이들에게 더 나은 삶의 조건을 마련해주기 위해 이주한 미국에서도 차별을 당하고 환청에 시달리며 방에 틀어박혔습니다. 생물학적 죽음 이전에 사회적 죽음을 맞은 거예요.”


-어머니를 사회학적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습니까.


“엄마에게 제 학업은 당신의 과거와 얼룩을 지워내는 방편이었어요. 그런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사회정의에 대한 제 의식은 가족사와 더 밀접하게 얽혀 갔습니다. 오랫동안 연구 주제가 ‘트라우마로 점철된 역사’였기 때문에, 엄마의 질병 밑에 숨어 있는 뿌리가 무엇인지 궁금했어요.”


-어머니가 함구한 비밀을 알게 되고 글로 옮기는 과정은 고통스러웠을 것 같습니다.


“엄마의 이상한 증상은 제가 열다섯 살 때 시작됐는데 조현병이라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어요. 올케가 ‘어머님이 매춘부였대요’라고 한 스물세 살부터는 엄마 인생의 맥락을 이해해보려고 애쓰며 성인기를 보냈으니 긴 여정이었습니다. 엄마의 비밀은 내 정체성의 일부가 된 셈이에요. 고통요? 과거에는 괴로웠지만 진실을 파헤치고(excavate the truth) 글쓰는 일로 옮겨간 다음부터는 고통스럽지 않았어요. 정면으로 마주할 만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마침내 고향에 돌아온 기분


이렇게 말할 때 그레이스는 엄마의 진실을 발굴하는 고고학자처럼 보였다. 과거를 한 꺼풀씩 들추다가 깜짝 놀라 다 덮어버리고 싶은 적은 없었을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그녀는 답했다.


-왜 불가능합니까.


“가족 중에 ‘그만 멈추라’고 한 분들이 있었고 학계에서도 ‘그것은 진짜 사회학이 아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반대가 심할수록 중요한 뭔가가 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했어요. 엄마는 거대한 억압의 역사로 가는 입구이기 때문입니다.”


-진짜 사회학이 아니라는 비판은 핵심이 뭐였나요.


“미국 사회학계에는 백인 중심으로 어떤 관행과 역사가 있어요. ‘전쟁 같은 맛’은 동양적 의미의 영혼이나 귀신, 목소리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기 때문에 사회학에서 벗어나 있다는 지적을 받은 겁니다. 이 일은 2008년 엄마의 이른 죽음을 애도하며 심리치료 겸 추도사처럼 시작한 거예요. 글로 애도하는 장례식과 같았습니다. 쓰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어요.”


-2021년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호평이 쏟아졌습니다.


“올해의 책은 금방 잊히지만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로 뽑힌 책은 기록이 남고 꾸준히 읽힙니다. 강연과 인터뷰 등으로 바빠졌지만 정말 뿌듯했어요.”


-이렇게 한국어판이 나온 감회라면.


“초조하고 불안해요. 혼혈인인 저는 한국과의 관계에서 아웃사이더(국외자)였습니다. ‘전쟁 같은 맛’이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몰라 감상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분명한 건 딱 하나, 기적 같은 일이라는 점입니다.”


-왜 기적이라고 생각하나요.


“제 복잡한 내면을 설명하고 싶었는데 그동안 언어 장벽 때문에 답답하고 슬펐거든요. 이 땅에 남겨둔 모든 사람, 모든 것을 이어주던 엄마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책으로 내가 누구인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지 한국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됐어요. 엄마와 저 같은 혼혈 가족은 한국이 오랫동안 잊고 싶어한 존재라서 더 감격적이에요.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온 기분입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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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내도 들어줄 사람이 없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책이라고 썼는데.


“어떤 여성이 기지촌에서 일했다는 비밀을 말할 수 없을 때, 그 트라우마는 무의식에 선명한 자국을 남깁니다. 다음 세대로도 전달되고 유령(ghost)처럼 출몰하게 돼요. 제 정신과 무의식에 그런 유령이 존재한다고 저는 생각했어요. 긴 침묵을 깨야만 했습니다. 소외돼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이 목소리를 들었으면 좋겠어요. 사회에서 거부당한 사람들의 초상을 완전한 인간으로 그려내는 것이 제 목표 중 하나예요.”


-사회가 그들에게 진 빚도 있다고 생각하나요.


“미국 사회는 음식을 만들고, 화장실을 청소하고, 자녀를 양육하는 이민자들에게 빚을 지고 있습니다. 국가 안보의 최전선에서 제 몸과 성노동을 바쳤지만 사회악 취급을 받은 기지촌 여성들에게 한국 사회가 진 빚도 있어요. 그렇게 만든 구조가 문제이지 그들이 수치심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숨죽인 채 유령처럼 살지 않아도 돼요.”


-아들 펠릭스에게 당신은 어떤 엄마인가요.


“엄마가 그랬듯이 저도 아이에게 굉장히 열정적이고 때로는 불같이 화를 냅니다(웃음). 내 안에 엄마가 있구나 느낄 정도로. 그런데 저는 어떤 비밀도 없어요. 아이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합니다.”


지난해 9월 대법원은 기지촌에서 미군에게 성매매를 제공한 여성들이 “정부의 기지촌 조성·운영·관리 등 불법행위로 피해를 입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6억7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그레이스는 “한국 사회가 이 여성들을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보상할 준비가 됐다는 신호이기를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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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물려준 가장 귀한 선물


딸의 성공은 엄마가 명예를 회복하는 길이었다. 그레이스는 “내 교육은 엄마에게 다시 주어진 기회라는 것을 깨닫는 데 평생이 걸렸다”고 썼다. “엄마는 제가 클 때 부엌엔 얼씬도 못 하게 했어요. 한번은 나중에 요리사가 되고 싶다 했더니 ‘안 돼! 열심히 공부해서 멀리멀리 제일 좋은 대학 가야지. 넌 의사, 변호사, 교수도 될 수 있어!’라고 소리를 질렀어요.”


-어릴 적엔 어머니가 당신을 ‘순희’라 부르곤 했다면서요.


“순희는 ‘가장 순진한 소녀’라는 뜻이었어요. 엄마가 내 순진함을 그토록 바란 이유는 당신에게는 그럴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지촌에 발을 들이기 전 엄마의 삶에서 엄마가 깨끗하게 간직하고 싶었던 건 아무것도 없었는지도 몰라요.”


-어머니의 소망을 이뤄드렸다고 생각하나요.


“하하. 매우 그렇습니다. 엄마는 제가 박사가 됐을 때, 교수가 됐을 때 굉장히 좋아했어요. 미국에서 책으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영광을 누린 데 대해서도 엄마가 영혼으로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한다는 걸 느낍니다.”


-책에 ‘내게는 세 엄마가 있었다’고 썼는데.


“유년기의 엄마는 요리를 좋아했고 활기찼고 이상적인 엄마에 가까웠어요. 낯선 미국 사회에 적응하려고 애썼지요. 두 번째 엄마는 조현병으로 아프고 아무것도 못한 채 사그라들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때 저는 엄마를 잃어버렸어요. 세 번째 엄마는 나를 당신의 요리사로 받아들이고, 외할머니가 해주셨던 한국 음식을 내게 가르쳐주며 되살아난 엄마예요. 마지막 10여 년간 같이 밥을 먹으며 옛날 이야기를 빵 부스러기처럼 흘려주시곤 했지요. 연구를 시작하도록 추동한 사람은 두 번째 엄마였지만, 그것을 끝마치도록 자양분을 준 사람은 세 번째 엄마예요.”


-콩국수, 생태찌개, 쇠고기국, 생선조림 같은 음식을 나누며 관계를 회복하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어요. 가장 좋아하는 한식이라면.


“(주저 없이) 미역국요! 어린 시절과 연결돼 있는 음식입니다. 아침에 미역국 냄새가 나면 제가 금세 일어나서 밥을 먹고 제 시간에 등교한다는 걸 엄마는 아셨어요. 하나 더 꼽자면 비빔밥을 좋아합니다. 엄마가 해주시던 비빔밥은 간단했는데 한식당에서 주문한 비빔밥에는 온갖 재료가 들어가더군요. 그때 깨달았어요. 비빔밥은 무슨 재료로든 만들 수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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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에서 특별히 경험한 게 있나요.


“제가 미국으로 가기 전에 부산에서 살던 집을 찾아냈어요. 형태는 달라졌지만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주인 허락을 받고 마당에 들어가 사진도 찍었어요.”


-지금 어머니가 생존해 계시고 이 책을 읽는다면 뭐라고 하실까요.


“글쎄요, 상상이 잘 안 되지만 ‘아이구! 답답으라’는 아닐 것 같아요. 엄마는 늘 내 편을 들어주셨으니까 아마도 ‘우리 딸, 잘했다’ 하지 않을까요?(웃음)”


-당신에게 어머니는 어떤 분인가요. 물려받은 가장 귀한 것이 있다면.


“엄마는 타락한 여자라는 꼬리표에도 불구하고 명예로운 삶을 살았고, 정신병자라는 꼬리표에도 불구하고 이성적인 존재였어요. 저는 엄마가 처한 삶의 조건은 단순한 망명 상태가 아니라 도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자녀들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기, 미국에서 삶을 꾸려나가 보겠다는 의지, 음식을 만들며 생존하려 한 방식까지. 엄마는 그런 도전 정신을 물려줬어요. 저는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아요.”


‘전쟁 같은 맛’의 끄트머리에 모녀가 나눴다는 대화가 나온다. “준비 중인 책에 양공주(yanggongju)라는 단어가 등장한다”고 하자, 그레이스의 눈을 피하며 군자가 지적한다. “오, 그건 나쁜 말이야.” 딸은 이렇게 대꾸한다. “내가 글쓰기로 그 의미를 바꾸려고 해요. 그 단어가 더 이상 수치스러운 말이 아니었으면 해요. 그 여자, 내게는 영웅이니까. 나는 엄마가 조금도 부끄럽지 않아요.”


[박돈규 주말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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