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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by 조선일보

새 옷 갈아입는 여권, 투표 전에 알아보자

녹색에서 남색으로, 보안성 강화… 내달 14일까지, 여권 국민 투표

파란색은 희망 상징... 미국, 호주, 북한 등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써

붉은색은 유럽 연합 상징, 녹색은 이슬람 대표색으로 여겨져

새 옷 갈아입는 여권, 투표 전에 알

현행 녹색 여권(왼쪽)과 차세대 여권의 남색 표지. 외교부 홈페이지에서는 다음 달 14일까지 차세대 여권에 대한 국민 투표가 진행한다./외교부

해외여행을 가거나 출장을 갈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여권 간수 잘해라." 여권은 해외에서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신분증이다. 여권을 잃어버리거나 손상되면 출·입국은 물론 숙소에 들어갈 때도 문제가 생겨 꿈 같은 여행을 망쳐버릴 수도 있다. 그 때문에 처음 해외여행을 가는 어르신들 중엔 여권 보관용 주머니가 달린 속옷을 입는다는 웃지 못할 소리도 나온다.


한국 여권이 가지는 힘이 남다르다. 헨리 여권 지수(Henley Passport Index)에 따르면 한국 여권을 갖고 있으면 비자 없이 188개국을 여행할 수 있다. 190개국 입국이 가능한 일본, 189개국이 가능한 싱가포르에 이어 독일과 공동 3등급으로, 신뢰도가 높은 만큼 절도범들의 타깃이 되기도 한다.


한국 여권은 2020년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외교부 여권안내 홈페이지에서 다음 달 14일까지 진행되는 국민 투표를 거쳐 2가지 디자인 중 최종 디자인이 결정된다. 당신에게도 투표권이 있다. 어떤 걸 뽑을지 망설여진다면, 투표 전에 여권에 대해 알아보는 건 어떨까?

녹색→파란색으로 바뀌는 여권, 북한과 비슷하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와 외교부는 지난 15일 2020년부터 발급할 예정인 차세대 전자여권 디자인 시안을 발표했다. 2007년 문체부와 외교부가 공동으로 주관한 ‘여권 디자인 공모전’ 당선작(김수정 서울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을 기초로 수정 ·보완한 것이다. 국민 의견을 수렴해 올해 12월 말까지 최종 디자인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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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표지 색으로 보편적으로 쓰이는 색은 파란색, 붉은색, 초록색, 검은색으로 이중 파란색 계열이 가장 많이 쓰인다./그래픽=송윤혜

차세대 여권은 새로운 디자인을 적용하고 보안성을 강화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표지 색상으로, 기존의 녹색에서 남색으로 바뀐다. 그동안 여권의 형태와 양식은 계속 바뀌어 왔지만, 표지만은 녹색을 고수해왔기에 많은 논란이 제기됐다. "멀쩡히 잘 쓰는 여권을 왜 바꾸냐"는 의견부터 "북한 여권과 디자인이 비슷하다"는 정치적인 해석까지 다양하다.


세계 각국 여권 정보를 제공하는 패스포트 인덱스에 올라 있는 199종의 여권을 살펴보면, 가장 많이 쓰이는 여권 표지 색은 파란색, 붉은색, 초록색, 검은색 순이다. 가장 선호되는 색은 파란색 계열로 78개국이 채택했다. 붉은색을 쓰는 나라는 68개국, 초록색은 43개국, 검은색은 10개국이다. 북한, 미국, 캐나다, 홍콩, 호주, 브라질 등이 파란색 계열을 쓴다. 여권의 색은 보통 국가 정체성을 기반으로 선정된다. 패스포트 인덱스를 운영하는 아톤 캐피털 측은 "파란색은 새로움과 희망을 상징하는 색으로 북아메리카·오세아니아와 같은 신대륙에 있는 국가들이 주로 쓴다"고 했다.


지정학적인 위치도 여권 색에 영향을 미친다. 유럽연합(EU) 국가들은 대부분 붉은 계열의 여권을 사용한다. 그 때문에 브렉시트(EU 탈퇴)를 선언한 영국은 내년 3월부터 현재의 붉은색 계통(적포도주색)의 여권을 남색으로 바꿀 방침이다. 이를 두고 테리사 메이 총리는 "자랑스러운 시민권을 상징하는 독립과 주권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1921년부터 남색 여권을 써온 영국은 1988년 유럽 공동체 유대 강화 차원에서 여권 색을 적포도주색으로 교체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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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현행 여권(왼쪽)과 내년부터 바뀔 차세대 여권./gov.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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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은 이슬람을 대표하는 색으로 여겨지는데, 사우디아라비아,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등 이슬람 국가들이 초록색 여권을 쓰고 있다. 이를 근거로 한국의 여권 색인 녹색이 적절치 않다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지난 3월에는 여권 표지를 파란색으로 변경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등장하기도 했다.

예술작품 같은 세계의 여권 디자인

정경원 세종대 석좌교수는 여권을 ‘조용한 외교관’이라고 했다. 여권만 보아도 그 사람의 나라와 품격을 한눈에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국가가 여권 디자인에 공을 들인다.


2003년 도입된 스위스 여권은 ‘아트북’과 같은 외관으로 세계인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스위스 국기를 모티브로 높은 채도의 빨간색 표지에 십자 문양을 넣어 누가 봐도 ‘스위스다움’을 드러냈다. 내지도 남다른데 취리히의 시청사 건물, 루체른의 카펠교 등 26개 주를 상징하는 성과 궁전 등을 각 페이지에 그려 넣었다. 스위스 여권은 여권에 디자인을 도입한 최초의 사례로 평가받았다. 덕분에 여권 유효기간이 지나지 않은 이들마저 여권을 교체하려고 몰려들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2012년 도입한 핀란드의 여권도 신선한 디자인으로 관심을 끌었다. 겉보기엔 평범해 보이지만, 펼치면 신세계가 열린다. 순록의 일종인 무스를 페이지마다 다르게 그려 넣어, 페이지를 빠르게 넘기면 마치 무스가 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표지도 감각적인데 자줏빛 표지에는 한 칼을 발로 밟고 다른 한 칼을 손에 든 채 왕관을 쓴 사자 문양의 국장을 새겼고, 표지 뒷면에는 크고 작은 눈꽃 문양을 넣었다.

속지도 특별하게…디자인과 결합한 위조 방지 기술

여권의 속지(사증면)에는 각국의 명소와 역사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새겨지는데, 이때 위조 방지를 위한 장치가 삽입되기도 한다. 이 장치 덕에 여권이 더 아름다워지기도 한다.


노르웨이가 2014년 새롭게 선보인 여권은 속지에 하늘과 땅, 바다 등 노르웨이의 자연환경을 묘사한 그림이 그려졌다. 평범해 보이지만 자외선을 비추면 마치 오로라가 펼쳐진 밤처럼 환상적인 광경이 연출된다. 캐나다와 중국, 헝가리 등도 비슷한 기술을 도입했다. 캐나다 여권에 자외선을 비추면 나이아가라 폭포와 단풍나무 등 캐나다의 명소와 상징들이 나타나고, 중국 여권은 만리장성이 튀어나오는 것처럼 표현된다.


호주 여권은 자연환경을 주제로 했다. 내지에는 코알라와 캥거루, 오리너구리, 주머니쥐, 유칼립투스 등 호주를 상징하는 수십여 종의 동식물이 그려져 있는데, 여권을 기울이면 그림이 위로 떠 오르는 것 같은 입체적인 효과를 낸다.


한국의 차세대 여권도 속지에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상징하는 다양한 이미지를 담을 예정이다. 현재 남대문과 다보탑으로 통일된 구성에서 반구대 암각화, 신라 금관총 금관, 고려청자, 훈민정음 등 페이지별로 시대별 대표 유물을 배치한다. 종이 재질도 폴리카보네이트로 변경해 내구성과 보안성을 강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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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송윤혜

[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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