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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by 조선일보

벙어리찰떡·이티떡·말차소보로인절미… 전국 떡집 찾아 '떡후'들이 간다

아무튼, 주말

지역 유명 떡집들 떡지순례

 

안동 '벙어리찰떡'_4대째 떡메 치기 방식 고집, 치는 방식 따라 식감 달라져

문경 '뉴욕제과'_만생종 쌀로 만든 찹쌀떡 물에 삶아내고 식혀 재반죽

강릉 '참순찰떡방'_주먹만 한 찹쌀떡 안에 몽글몽글한 밥알 숨어 있어

대전 '공주떡집 용문본점'_흑임자가루로 덮인 인절미, 포장 벗기는 순간 향 진동

남해 '중현떡집'_친환경 우렁농법 쌀 고집, 봄철 자란 여린 쑥잎만 써

서울 망원동 '경기떡집'_삼형제가 의기투합 운영, 단호박소담떡 등 큰 인기

서울 연남동 '조복남' 젊은 감각으로 메뉴 개발, 팥소보로인절미 등 다양

벙어리찰떡·이티떡·말차소보로인절미…

떡은 한때 억울했다. 탄수화물 덩어리 고칼로리 간식으로 지목됐다. 불명예로 인기가 주춤했다가 최근에 한을 풀었다. 떡은 떡수기(떡이 많이 소비되는 명절 성수기)와 관계없이 바쁜 현대인을 위한 한 끼 식사이자 사철 간식이다. '떡을 좋아하는 사람'을 가리켜 '떡후'라고 한다. 겨울밤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지던 "찹싸알 떠~억" 소리가 아득하다. 떡후들 발길이 이어진다는 '떡지순례(떡의 성지 순례)'길에 올랐다. 떡메를 쳐서 만드는 떡부터 이색 디저트까지 떡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인생 떡' 이야기.

4대째 떡메로 친 찰떡만 고집

벙어리찰떡·이티떡·말차소보로인절미…

벙어리찰떡의 답례품 세트

서울에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낙원떡집이 있다면, 경북 안동엔 벙어리찰떡이 있다. 벙어리찰떡은 1920년쯤 안동시 안흥동 철둑 길 밑에서 찰떡 장사를 시작했던 1대 고 김노미씨, 김씨의 장녀 2대 고 권차임씨, 3대 권씨의 장녀 고 천영조씨에 이어 현재 천씨의 장남인 배재한씨가 4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곧 100년을 바라보는 긴 역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박한 규모인 이유가 있다. 오랜 기간 전수가 되다 보니 비슷한 떡집이 생겼고, 그들이 마케팅과 스토리텔링으로 사세 확장을 하는 동안 그저 바라봐야만 했던 것. '원조' 타이틀을 두고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어머니 혼자 힘으로는 벙어리찰떡을 지켜갈 수 없다는 판단 때문에 배씨는 2004년 잘 다니던 직장을 접었다. 하지만 가업을 잇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2009년쯤 방송 나간 직후엔 밀려드는 주문에 배송 기한을 훌쩍 넘겨 경찰서에 신고 당한 적도 있었고, 2012년쯤엔 호기롭게 성남시 분당에 분점을 냈다가 운영 미숙으로 철수하기도 했습니다. 떡이고 뭐고 다 싫어지더군요. 그때는 많은 걸 잃기도 했죠."

 

모든 걸 다 잃은 순간에도 배씨가 놓지 않은 것 하나는 어머니가 자신에게 물려준 떡메였다. 대대로 내려온 벙어리찰떡만의 떡메 치는 방식은 지키고 싶었다고. "찰떡은 떡메로 쳐야 찰기가 제대로 생겨요. 어떻게 쳤느냐에 따라 찰기와 식감이 달라지죠. 과하게 치면 너무 차져서 식감이 쫄깃해지고, 덜 치면 찰기가 떨어지는 대신 목 넘김은 부드러워져요. 기계로 찰떡을 만들면 찰기와 맛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는 있지만, 떡메로 친 찰떡의 맛은 절대 못 따라갑니다." 전통 방식을 따르는 건 떡메뿐만이 아니다. 팥 등도 모두 맷돌로 갈아 넣는다. 매일 떡메와 맷돌을 이용해 떡과 재료를 준비하고 배씨의 아내가 일일이 고물을 묻혀 100년 전 벙어리찰떡 그대로의 맛을 완성한다고 한다. 쫄깃하면서도 씹을 때마다 담백한 맛이 난다. 고물의 종류는 붉은팥, 검은팥, 청태, 백태로 깨를 제외하고 모두 국산만 고집한다.


전 과정을 손으로 만드는 벙어리찰떡은 자연스레 '한정판'이 될 수밖에 없다. 찰떡은 주문 판매하며 여분으로 만든 떡들을 매장에서 판매한다. 벙어리찰떡이라는 상호는 철둑 길 밑에서 상호 없이 찰떡을 팔던 시절에 시작됐다. 김노미씨의 둘째 아들이자 배씨의 둘째 외할아버지인 고 권봉필씨가 농아여서 사람들이 '벙어리찰떡'이라 부르면서 시작된 것. "떡메를 오랫동안 치다 보니 팔꿈치 통증이 생겨 둘째 아들에게 가업 승계를 생각하고 있다"는 배씨는 곧 다가올 벙어리찰떡 100주년을 앞두고 매장 이전 준비(15일쯤 이전 예정)를 하고 있다. 새 매장에선 떡메 치는 과정도 볼 수 있게 꾸밀 예정이다. "어무이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항상 하신 말씀이 있어요. 다른 건 다 잃어도 떡 인심은 잃지 말고 살라고. 그것만은 꼭 지켜 드리고 싶습니다."

 

택배 가능하며 오전 9시부터 떡 소진 시까지 영업. 일요일 휴무.

오직 '찹쌀떡' 하나로 '떡지' 등극

벙어리찰떡·이티떡·말차소보로인절미…

1 100% 떡메를 쳐서 찰떡을 만들어 온 안동 ‘벙어리찰떡’의 주인 배재한씨. “떡메로 친 찰떡은 밥알이 중간중간 살아 있다”며 갓 만든 찰떡을 들어 보였다. /양수열 영상미디어기자 2 인절미에 말차 고물을 입히고 있는 서울 연남동 떡집 ‘조복남’.

경북 문경시 산북면 뉴욕제과에 가면 삐걱거리는 문을 밀고 들어서는 사람마다 "모찌(찹쌀로 만든 떡의 일본 이름) 주이소~" 한다. 뉴욕제과는 제과점으로 시작했으나 찹쌀떡이 맛있다고 소문나면서 현재는 찹쌀 도넛과 찹쌀떡만 만든다. 이 집 찹쌀떡은 개량종 쌀이 아닌 만생종 쌀(성숙기가 늦은 벼)로 반죽을 만드는 것이 특징. 일반적으로 수증기에 찌는 방식 대신 물에 살짝 삶아내 식히고 재반죽하는 방식을 고수한다. 창업주 배운현씨의 가업을 물려받은 사위 박종환씨는 "그래야만 말랑말랑한 듯 찰기가 더 좋아진다"고 했다. 찹쌀떡 속 붉은색 팥소는 팥 알갱이가 적당히 씹히면서도 부드럽다. 택배 불가. 오직 방문 구입만 가능하다. 찹쌀떡은 예약 없이 들렀다간 빈손으로 돌아가기 쉽다. 찹쌀 도넛은 오전 시간대 선착순으로만 판매한다. 영업시간은 월요일을 제외한 오전 8시~오후 4시.


강원도 강릉시 포남1동 참순찰떡방은 '밥알 찹쌀떡' 성소다. 강릉 기정 떡 맛집인 동해기정과 함께 강릉 떡지 순례 코스로 꼽힌다. 주먹만 한 찹쌀떡 안에 몽글몽글한 밥알이 숨어 있다. 강릉역에서 도보 10분 거리 한적한 주택가 골목에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간판이지만 이곳 창업주 김영순씨가 TV 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에서 '찹쌀떡 달인'으로 소개된 후 밀려드는 주문과 예고 없이 찾는 손님들 때문에 분주하다. 택배 가능, 영업시간은 오전 9시부터 찹쌀떡 소진 시까지.

흑임자, 쑥 '인절미' 맛집

벙어리찰떡·이티떡·말차소보로인절미…

1 문경 찹쌀떡 맛집 ‘뉴욕제과’ 창업주 배운현씨와 아내. 사위에게 가업을 승계한 배씨는 이따금 나와 손을 거든다.2 대전 ‘공주떡집 용문본점’의 흑임자인절미와 콩인절미.3 경기떡집의 대표 메뉴인 이북식 인절미 ‘이티떡’

흑임자인절미로 소문난 서울 압구정 공주떡의 흑임자인절미는 떡후가 아니어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떡 맛집이다. 이 흑임자인절미의 고향은 대전 서구 용문로에 있는 공주떡집 용문본점이다. 본점은 떡후뿐 아니라 떡 전문가들의 발길도 이어진다.


압구정 공주떡집은 창업주 박옥분씨의 큰딸이, 용문본점은 현재 막내아들이 운영하고 있다. 압구정 공주떡집을 비롯해 직영점이나 백화점 입점 매장 모두 기본적으로 같은 방식으로 만들지만 본점은 매장 위층에 박옥분씨가 거주하며 떡 만들 때마다 내려와 직접 '감독' 하는 게 차이라면 차이다. 소포장 떡이 진열된 매대 앞엔 시식용 떡이 있어 맛보고 살 수 있다. 까만 흑임자가루로 뒤덮은 흑임자인절미는 포장을 벗기는 순간 고소한 향이 진동한다. 콩가루인절미는 콩가루향과 생강향이 은은하다. 카스테라 가루를 뿌려낸 호박인절미도 인기다. 김효상 총괄관리과장은 "이곳 본점은 1965년 떡 방앗간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지금도 여전히 동네 방앗간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지역 농협 쌀만을 사용하고 인절미의 고물을 모두 직접 볶아 만들고 있다. 쑥도 전남 장흥산 섬 쑥 5~6t을 봄에 사들여 냉동 보관해 1년 내내 쓰고 있다고. "압구정 공주떡집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이곳이 본점인 줄 모르는 분들도 많아요. 하긴 이곳의 총매출이 압구정 공주떡집 흑임자인절미 하나의 매출을 못 따라가기도 한답니다." 김 과장이 웃는다. 떡의 종류에 따라 택배 가능, 영업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1978년 문 연 남해 중현떡집도 떡 방앗간으로 출발했다. 2017년 인터넷 맘카페와 인스타그램 등 'SNS 품절 대란 떡'으로 소문난 건 쑥인절미. 깐깐하게 고른 재료들만 사용하는 게 이 집 떡의 인기 비결이다. 친환경 우렁이 농법으로 직접 농사지은 1등급 찹쌀이나 동일 품종으로 계약 재배된 찹쌀만 쓴다. 쑥도 남해안 일대에서 자란 봄철 여린 쑥잎만 따서 사용한다. 아버지와 함께 떡집을 운영하는 정지훈(36)씨는 "쑥향을 강하게 내려면 줄기까지 쓰기도 하지만 부드러운 먹는 느낌 유지를 위해 거친 쑥이나 줄기는 쓰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정씨는 "소문이 나면서 남해 여행 시 불쑥 들르는 여행객들도 많은데 원칙적으로는 주말에만 방문 판매를 하고 있으니 꼭 문의 후 방문해 달라"고 부탁했다. 택배 가능, 영업시간은 오전 9시부터 떡 소진 시까지.

최연소 떡 명장, 크리에이터가 만든 '젊은 떡'

벙어리찰떡·이티떡·말차소보로인절미…

1 서울 ‘경기떡집’의 장남이자 운영을 맡고 있는 최대로씨.2 젊은 떡후들의 실험실 같은 서울 ‘조복남’.

입맛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떡의 선호엔 개인차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서울 망원동 경기떡집은 1958년 종로 흥인제분소에서 시작했다. 주인인 김장섭 명인의 떡 제조 기술을 경기떡집 1대인 최길선(65)씨가 이어받았고 지금은 최씨의 사형제 중 삼형제가 의기투합해 운영하고 있다. 서울의 오래된 떡 맛집이라 이미 중장년층 단골이 많다. 젊은 층에까지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2011년 최씨의 둘째 아들인 최대한(33)씨가 한국쌀가공식품협회와 경기농림진흥재단 주최 대한민국 떡명장대회 때 당시 25세 나이로 최연소 떡 명장 자리에 오르면서부터다. 최대한씨가 개발한 단호박소담떡은 토종 찹쌀 인절미에 거피 팥소를 붙여 만든 이북식 인절미 이티떡과 함께 이 집의 베스트셀러다. 여기에 큰아들 최대로(38)씨가 젊은 감각으로 운영에 뛰어들었다. 재무 담당은 막내아들 최대웅(33)씨가 맡고 있다. 2017년 현대백화점 압구정점 팝업스토어 참여 당시 이티떡 단일 품목으로 일 매출 1000만원을 올린 것도 삼형제의 의기투합 덕분이다.


이른 아침에 최대한 씨가 떡제조실에서 떡을 만들어 놓으면 최대로씨가 출근해 매장과 주문 현황을 체크한다. 매장은 가격대에 따라 떡을 분류해 놓아 고르기도 쉽다. 직접 만든 식혜, 수정과, 강정류, 약과 등도 있다. 택배 가능, 영업시간은 일요일을 제외한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서울 연남동 조복남은 '젊은 떡집'으로 주목받고 있다.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도훈·정재헌씨는 경기떡집 최대한씨를 찾아가 기본기를 익힌 뒤 '크리에이터'를 자처하며 다양한 떡 메뉴를 개발하고 있다. 떡메를 사용해 떡을 만들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전자레인지를 이용한 초간단 떡 만들기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전파하기도 한다. 대표 메뉴인 팥소보로인절미는 살짝 얼려 먹어야 맛있다. '말차' 가루를 뿌린 말차소보로인절미는 올해의 주력 메뉴다. 쌉싸래한 잔향이 매력적이다. "조복남이 누구냐고요? 저희 할머니요. 할머니가 집에서 만들어주시던 떡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킬 겁니다." 정씨가 말했다. 목~일, 주 4일 영업. 오전 10시부터 소진 시까지. 서울 지역 퀵서비스 배송 가능.


강릉·대전·제천·문경·안동=박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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