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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조선일보

모던 보이·경성 아가씨… 개화기에 푹 빠진 1020

10~20대, 관습 무너뜨린 신여성 매력에 환호


회사원 김윤영(27)씨의 카카오톡 프로필 이름은 '모던윤영'이다. 그는 원룸 아파트에 북유럽 가구와 할머니가 물려준 자개장을 함께 놓고 산다. 커피는 소반에 받쳐 마시고, 주말엔 친구들과 서울 익선동에서 개화기풍 원피스를 입고 케이크 먹는 사진을 찍는다. 김씨는 "21세기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지만 각종 문물이 들어와 혼돈을 겪은 개화기 시절로의 시간여행이 즐겁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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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을 종로와 을지로엔 근대를 콘셉트로 한 식당과 카페들이 많다. 왼쪽부터‘경양식 1920’‘빠리가옥’‘경성과자점’에서 차와 과자를 맛보고 있는 젊은 손님들. /오종찬 기자

10~20대가 근대(近代)에 빠졌다. 그동안 근대는 일제강점기라는 어두운 과거를 떠올리게 했지만, 새로움 발견하길 좋아하는 청춘들은 관습이 무너지고 신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한 격동기의 매력을 캐낸다. 패션, 인테리어, 음식, 드라마까지 열풍이 거세다.


1020, 격동의 개화기에 반하다


서울 종로구 '경성의복'은 근대 유행을 뜨겁게 실감하는 곳이다. 1900년대 개화기 의상을 빌려주는 이곳에서 10~20대 여성들은 짙은 와인색 원피스, 망사 달린 모자, 팔꿈치까지 오는 장갑을 착용해보면서 경성의 모던걸로 변신한다. 대학원생 박지윤(22)씨도 이곳에서 하늘색 양장을 빌려 입은 뒤 남자친구와 덕수궁 중명전을 산책하며 놀았다. 박씨는 "근대 의상이 단정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매력이 있어 체험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구락부, 경성○○, ○○가옥 등 옛날식 간판을 단 식당도 '대세'다. 익선동 '경성과자점'은 알록달록 일본풍 그림으로 포장한 파운드 케이크와 차를 판다. 축음기에선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천장엔 화려한 샹들리에가 걸렸다. 육관영(37) 경성과자점 대표는 "이곳이 1934년에 지어진 한옥이 남아 있던 자리여서 그 시대 느낌을 재현하고 싶었다"면서 "인근 의상실에서 개화기 양장을 빌려 입고 차 마시러 오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최근엔 꽃·나비 문양의 귀걸이나, 자개 손거울, 복고풍 찻잔 판매량까지도 크게 늘었다. '모던 경성의 시각문화와 일상'을 쓴 김지혜 근대미술 연구자는 "근대는 의복·음식·주거·여가생활에 이르기까지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서구 문화가 확산하던 시기"라며 "전통과 이질적인 문화가 공존하던 특이한 시공간이라 요즘 젊은이들 눈엔 매력적으로 비칠 것"이라고 했다. 서울에서 가장 나이 든 골목 을지로는 이 열풍의 중심지다. 을지로입구역 근처 비좁은 골목엔 자개장과 괘종시계, 고가구로 개화기 다방 느낌을 낸 '커피한약방'과 양과자 전문점 '혜민당'이 마주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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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풍의 원피스와 양복 정장을 빌려 입은 박지윤 커플이 덕수궁 중명전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박지윤씨 제공

지자체에서도 근대를 테마로 한 관광 상품을 내놓기 바쁘다. 서울시는 매주 토요일 남산골한옥마을에서 '1890 남산골야시장'을 연다. 개화기 복장과 말투로 구한말 장터를 재현한다. 인천시는 9월 말부터 매주 토요일 '모던보이, 모던걸 인천 올드타운 탐방' 행사를 진행한다. 모던 복장을 입고 인천역부터 차이나타운을 거쳐 우리나라 최초 근대식 호텔인 '대불호텔'까지 둘러본다.


페미니즘, 뉴웨이브의 시작


격랑의 근대는 요즘 젊은이들의 상황과도 맞닿아 있다. 여혐과 페미니즘이 격돌하고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주연을 둘러싸고 입다툼하는 요즘이다. 근대도 비슷했다. 신여성이 태동했고, 유교적 문물과 서양의 관습, 기독교적 가치가 충돌했다. 사회 정의에 눈뜨는 이들, 개인의 욕망을 인정하는 이들이 뒤엉켜 살아갔다는 점에서도 근대는 2018년과 유사하다. 영화 '아가씨'를 비롯해 경성을 무대로 한 드라마 '시카고 타자기'와 영화 '석조저택 살인사건', 최근 종영한 '미스터 션샤인' 등이 모두 이런 흐름에서 나왔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신문물이 등장하면서 유교 관습이 무너지고, 페미니즘 운동의 원류라 할 '신여성'이 등장하는 등 이 시대의 다이내믹한 이야기들이 젊은 세대를 파고들고 있다"고 말했다.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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