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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by 조선일보

때 이른 더위도, 숙취도… '이것' 한 그릇이면 풀리더라

빙수의 진화

 

코코넛 빙수, 실타래 빙수… 개운함에 '아재 입맛'도 사로잡아

비즈니스 미팅으로 호텔 찾는 중장년층 겨냥한 쑥 빙수도 인기


프리랜서 작가 양희문(50)씨는 술 많이 마신 다음 날이면 해장으로 빙수를 먹는 사람이다. "빙수의 고운 얼음이 해장에 아주 괜찮아요. 적당한 단맛이 활력을 주고, 멀리 나가 있던 정신이 돌아온다고 해야 하나?(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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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누하동 '서촌음료연구소'의 '코코넛 아포가토 빙수'. 잘 익은 코코넛에서 나온 코코넛 물을 코코넛 우유와 섞어 빙수 얼음을 만든다. 취향에 따라 에스프레소 샷을 부어 아포가토를 만들어 먹어도 된다. 하루 20그릇 한정. /고운호 기자

한동안 빙수는 10~20대가 즐겨 먹는 디저트로 여겨졌다. 요즘은 아니다. 중장년층이 가장 즐겨 찾는 디저트로 꼽힌다. 서울 누하동 '서촌음료연구소'의 사장 송아영(37)씨는 "동네 할머니나 중장년층 직장인들끼리 와서 빙수를 먹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단맛이 강렬하지 않은 데다 개운하다고들 하시죠." 매해 더 뜨거워지는 여름. 빙수를 찾는 가족 단위 고객도 많아지면서 이젠 '아재 입맛'까지 빙수가 점령했다. 몇몇 특급 호텔에선 중장년 비즈니스맨들을 공략한 신메뉴까지 내놨다.

4050 아저씨도 반한 '해장 빙수'

프랜차이즈 '설빙'의 윤명석 대리는 "판매 1위 메뉴는 인절미 설빙이고, 그다음으로 꾸준히 팔려나가는 게 팥인절미 설빙이다. 두 메뉴 점유율만 작년 5월에 비해 18.1%에서 21.4%로 증가했다"고 했다. "연령층이 갈수록 넓어져서 그래요. 빙수도 중장년층 입맛이 중요해진 거죠." 서울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호텔에서 내놓은 '레트로 쑥 빙수'도 비슷한 맥락에서 나왔다. 우유와 생크림으로 만든 눈꽃 빙수에 쑥 아이스크림, 쑥 젤리, 쑥 연유, 인절미, 팥 등을 얹었다. 오흥민(50) 총주방장은 "비즈니스 미팅 등으로 자주 호텔을 찾는 40대 이상 남성들을 위해 내놓은 메뉴"라고 했다. "그 세대가 편하게 즐기는 디저트가 빙수죠. 이들에게 친숙한 식재료를 고민하다가 쑥을 떠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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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호텔의 '클라우드 망고 빙수'. 화이트 초콜릿 스틱에 솜사탕을 얹었다. 가운데 사과모양 초콜릿을 깨면 망고 퓨레가 흘러나온다. 썰어 먹는 빙수로 유명한 '카페 티라벤토'의 녹차 맛 실타래 빙수. '설빙'의 '리얼통통흑수박설빙'. 서울 신라호텔의 '애플망고 빙수'. 잘 익은 애플 망고 1.5~2개를 두툼하게 썰어 올렸다. 망고 셔벗이 함께 제공된다. /고운호 기자·설빙

서촌음료연구소의 '코코넛 아포가토 빙수'는 점심시간마다 아저씨들이 서넛씩 몰려와 각자 한 그릇씩 비우고 가는 메뉴로 이름났다. 바닐라 아이스크림, 코코넛 칩, 코코넛크림, 타히티 차(태국 홍차)로 만든 캐비아 젤리와 민트 잎을 올려 해장 빙수로도 인기가 높다. 자동차 동호회·카메라 동호회·산악회 카페는 '해장 빙수 했습니다'라는 고백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 곳. '원석 아빠'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직장인 김유진(52)씨는 "며칠 전에도 인절미 빙수를 해장용으로 먹었다는 글을 올렸다"고 했다. "더울 땐 설렁탕 국물보다 가볍고 산뜻해서 좋아요."

치열해지는 빙수 전쟁

중장년층까지 가세하면서 빙수 전쟁은 해마다 치열해지는 추세. '새롭지 않으면 안 팔린다'는 비장한 각오로 나오는 메뉴도 많다. 서울 이태원 '카페 티라벤토'의 칼로 썰어 먹는 '실타래 빙수'가 대표적. 얹어내는 과일도 점점 더 화려해진다. 큼직한 애플망고·멜론부터 수박 한 통을 통째로 붓거나 블루베리를 와르르 쏟아주지 않으면 눈길을 끌기 힘들다. '사진발'도 중요하다. 그랜드 인터컨티넨탈의 '클라우드 망고 빙수'는 화이트 초콜릿 스틱 위에 솜사탕을 얹었다. 폭신한 구름을 얹은 듯해서 인기가 많다.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은 유리 뚜껑 안에 드라이아이스 냉기를 채우고 그 안에 빙수를 넣어 내놓기도 한다. 인증 샷 성지이자 망고 빙수의 정석으로 불리는 서울 신라호텔 '더 라이브러리'의 '애플망고 빙수'는 통상 6월부터 개시했지만, 올해는 지난달 24일부터 판매를 시작했다. 무더운 날씨에 제주산(産) 애플망고 수확이 빨라져서다. 주말엔 200그릇 이상 팔려나가는 이 빙수는 5만4000원이라는 비싼 가격에도 적어도 한 시간 이상은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빙수 중 하나다.


황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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