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체 밑부분 다 날아가… 이란, 격추 증거 쏟아지자 자백
군부 "새빨간 거짓말" 격추부인 하루만에 "실수"라며 공개사과
美, 증명자료 보낸 것도 한몫… 캐나다 등 배상·책임자 처벌 요구
이란 군부가 지난 8일(현지 시각) 이란 수도 테헤란 인근에서 추락한 우크라이나 국제항공(UIA) 752편 사고에 대해 11일 '의도하지 않은 사람의 실수'라며 격추 사실을 인정했다.
전날까지 격추 의혹은 "새빨간 거짓말"이고 "이란을 겨냥한 심리전"이라고 하다가 하루 만에 말을 바꾼 것이다. 미국과 우크라이나 등에서 격추를 입증할 증거를 제시하자 어쩔 수 없이 입장을 바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격추된 비행기는 이란이 이라크 내 미군 주둔 기지를 공격한 지 약 5시간 만인 8일 오전 테헤란 국제공항에서 이륙한 직후 교신이 두절됐다. 이 사고로 이란인 82명, 캐나다인 63명, 우크라이나인 11명 등 탑승자 176명 전원이 사망했다.
처참한 조종석 - 우크라이나 조사관들이 지난 8일(현지 시각) 이란 테헤란 인근에서 추락한 우크라이나 국제항공(UIA) 752편 여객기의 잔해를 살펴보고 있다. 11일 우크라이나 보안위원회는 이 사진을 공개하며 사고 여객기 동체의 윗부분은 거의 멀쩡한데 아래쪽은 형체가 없어진 것을 근거로 “이란이 미사일로 여객기 조종석 밑을 쐈다고 결론 내렸다”고 밝혔다. /AP 연합뉴스 |
테헤란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아미르 알리 하지자데 이란 혁명수비대 방공사령관은 11일 "미사일 운용병이 (테헤란 공항에서 이륙한 여객기를) 크루즈 미사일로 오인해 격추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사고 소식을 듣고 죽고 싶었다"면서 "고위층과 사법부에서 어떤 책임을 묻더라도 따르겠다"고 했다.
이란 체제를 지탱하고 있는 군부 세력인 혁명수비대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 것은 드문 일이다. 자칫 여론을 악화시켜 체제가 흔들릴 수도 있는 데다, 외교적으로도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희생자에 대한 배상 문제도 있다. 자국민이 다수 희생된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나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배상·진상규명·책임자 처벌을 포함한 정의(正義) 실현'을 요구하고 있다.
이란이 이 같은 정치·외교적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격추 사실을 인정한 것은 이른바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으로 불리는 물증들이 나왔기 때문으로 외신들은 분석한다. 사고 다음 날인 9일 우크라이나 보안위원회는 정보 요원들을 테헤란 현지에 급파했다. 우크라이나 요원들은 사고기 동체에 있는 손톱만 한 구멍들을 다수 발견했다. 현장에서 발견된 캐나다인 승객의 여권에도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이는 발사 명령을 내리면 5초 만에 5㎞를 날아가 목표물 바로 앞에서 터지면서 탄환 같은 쇠붙이를 쏟아내는 지대공미사일 M-1 토르 미사일의 특성을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이란이 쏜 것으로 파악되는 미사일 파편도 찾았다. 사고기 잔해를 살펴보면 동체가 윗부분은 멀쩡한데 아래쪽은 형체가 남아 있지 않았다. 알렉세이 다닐로프 우크라이나 보안위원회 사무총장은 "이란이 미사일을 여객기 조종석 밑으로 쐈다고 결론 내렸다"고 했다.
미국 언론을 통해 밝혀진 현장 영상들도 이란 정부엔 부담이 됐다. 미 CNN은 테헤란 인근 축구장에서 폭발한 비행기 파편이 우수수 떨어지는 영상을 공개했다. 앞서 뉴욕타임스도 미사일이 여객기로 접근해 폭발하는 것으로 보이는 영상을 보도했다. 미국 정부는 이와 별도로 자국의 이익대표부 역할을 하는 주이란 스위스대사관을 통해 이란 당국에 격추를 증명하는 자료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이란은 외교적으로 수세에 몰릴 전망이다. 격추 시인 직후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했다. 미 재무부는 10일 이란에 대한 추가 경제 제재를 발표했다. 미국은 이란 최대 철강업체인 모바라케철강을 비롯, 건설·제조·섬유 업체들과 알리 샴커니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 등 이란 당국자 8명을 제재 대상으로 추가했다.
입장이 난처해진 이란이 앞으로 미국과의 핵협상 테이블에 나설지도 주목된다. 도미닉 라브 영국 외무장관은 선데이텔레그래프 기고문에서 "지금이야말로 이란 정권이 협상 테이블로 나설 때"라고 했다.
[이현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