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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조선일보

늦깎이 '조폭 사진가'의 고백 "하고싶은 일 하니 행복하더라"

재일 사진가 양승우 '나의 다큐사진 분투기' 펴내


“어느 날 신주쿠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야쿠자 5명이 걸어왔다. 찍고 싶었지만 겁이 나서 말도 못 걸었다. 그날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았다. (중략) 며칠 뒤 똑같은 상황이 발생했다. 이번에는 맞을 각오를 하고 사진 공부하는 학생인데 찍어도 되냐고 물었다. 그들은 의외로 멋있게 잘 찍어달라며 포즈까지 취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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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우 작가

재일 사진작가 양승우(54)는 최근 펴낸 ‘나의 다큐사진 분투기’에서 사진을 시작하던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는 다른 작가들은 엄두 내지 못하는 환락가 풍경과 인간 군상(群像)을 카메라에 담았다. ‘조폭 사진가’라는 별명을 안겨준 그 사진으로 2017년 일본 최고 권위의 도몬켄 사진상(마이니치신문사 주최)을 외국인 최초로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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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우 작가

화려한 이력만 보면 엘리트 작가의 길을 착실히 걸어왔을 것 같지만 책에 소개된 그의 성장기는 정반대에 가깝다. 그는 사진이 “온갖 난관을 겪은 후에 응결된 하나의 결정(結晶)”이라고 했다.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청춘을 보내다 서른에 도일(渡日), ‘아무 데나 좋으니까 원서만 내면 받아 주는 곳’을 찾다가 간 곳이 사진학교였다. 중학 시절부터 밤마다 친구들과 카세트 메고 술 마시며 춤추던 이야기며 일본 술집에서 시비 끝에 야쿠자 두목과 대작(對酌)한 무용담이 펼쳐진다. 코로나로 아르바이트와 촬영이 모두 끊긴 김에 그동안 메모해뒀던 자료를 모아 글을 썼다. “지금 안 쓰면 평생 못 쓸 것 같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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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우 작가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들을 찍을 수 있는 것은 그들과 깊이 어울리고 마음이 통한 뒤에야 카메라를 꺼내기 때문이다. 올해 출간 예정이었으나 코로나로 연기된 데키야(노점상 하는 사람) 시리즈 취재는 함께 먹고 자고 장사하며 8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 사진 작업이 이렇게 오래 걸린 이유는 장사를 한번 시작하면 바빠서 사진 찍을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늦게나마 자신의 길을 발견했고, 그 길에 평범하지 않은 방식으로 몰입해온 양승우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어중간하게 튀어나온 돌은 정에 맞아도 아주 많이 튀어나와 버리면 절대 정을 맞지 않는다.” 그는 “일류대학, 좋은 회사에 못 들어갔어도 나처럼 3류 인생 하류계층의 사람도 진짜 자기가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면 행복하다”면서 “젊은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조금 늦었다고 포기하지 말고 자기 길을 찾아가라는 것”이라고 했다.


[채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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