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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꿈 많은 비너스… 삶과 죽음 어차피 한 끗, 팔이 없어 슬프지 않다”

[아무튼, 주말] [최인준 기자의 줌인]

국민 대표로 대통령 취임식에 선 절단 장애 피트니스 스타 김나윤

조선일보

오토바이 사고로 왼팔을 잃은 절단 장애인 김나윤(30)은 장애로 인한 좌절감이 극심할 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비너스 상을 떠올렸다. 사진은 김나윤이 최근 비너스 상을 옆에 두고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모습. /스튜디오 케이랩

한 팔이 없는 보디빌딩 선수가 있다. 신체 좌우 근육을 고르게 단련해야 높은 점수를 받는 보디빌딩 세계에서 팔 하나가 없다는 건 극복하기 힘든 핸디캡. 그런데 이 ‘외팔 보디빌더’가 대형 사고를 쳤다. 지난해 9월 국내 최고 권위 대회 ‘WBC 피트니스 월드 바디 클래식’에서 비장애인과 겨뤄 4관왕을 차지한 것이다. 대회 사상 첫 절단 장애인 참가자이자, 피트니스 운동 경력이 2개월밖에 안 된 초보 선수의 깜짝 우승이었다. 심사위원 앞에서 팔이 없는 한쪽 어깨를 당당하게 내밀며 구릿빛 육체미를 뽐내는 그의 사진과 영상은 소셜미디어에서 폭발적 화제를 모았다.


주인공은 올해 서른 살의 김나윤. 그는 4년 전 오토바이 사고로 왼팔을 잃고 후천적 장애인이 됐다. 사고 이전 그의 직업은 헤어 디자이너였다. 열일곱 살 때부터 미용 일을 시작해 서울에서도 실력 좋은 사람만 일할 수 있다는 이화여대 앞에서 매출 1, 2위를 다투는 스타 미용사로 자수성가했다. 꽃길만 계속될 것 같던 그의 인생은 2018년 7월 15일, 지방의 한 국도에서 전복된다. 친구 5명과 함께 오토바이를 몰고 춘천으로 놀러 가던 길 굽은 길에서 균형을 잃고 넘어져 아스팔트 위를 정신없이 나뒹굴었다. 왼팔이 몸에서 떨어져 나가고, 척추뼈 19개가 부러지는 대형 사고였다.


고통스러운 수술과 지난한 재활 과정을 거쳐 1년 만에 미용실에 복귀했다. 빗을 들 왼손이 없으니 더 이상 미용 가위도 잡을 수 없는 노릇. 코로나로 상권이 무너진 이대 앞을 떠나 공덕역 부근 매장으로 옮겨 점장이 됐다. 하지만 이룰 수 없는 미용사의 꿈에 미련을 갖는 대신 새로운 꿈에 도전하기로 했다.


미용 업계를 떠난 그는 현재 장애를 극복한 경험을 살려 유튜브 방송인, EBS 장애인 예능 프로 진행자, 동기 부여 강사 등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올해 초엔 장애인 재활 분야를 공부하고자 체육학 전공으로 처음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얼마 전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으로 유명한 원로 배우 오영수와 함께 국민희망대표 20인에 뽑혀 제20대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다. 그는 이날 왼팔 소매가 없는 노란색 한복을 입고 행사 무대에 올라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와 더불어 취임식을 빛낸 패션 스타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취임식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지난 13일 김나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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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윤(왼쪽)이 지난 10일 원로 배우 오영수(오른쪽) 등 대통령 취임식에 함께 참석한 국민대표들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김나윤은 이날 한복을 입은 모습이 화제가 됐다. /김나윤 제공

“너 팔이 없어…” 흐느끼던 친구

-2018년 오토바이 사고에 대해 설명해달라.


“미용사는 휴일이 거의 없는데 일요일이었던 그날 월차를 내고 닭갈비와 막국수를 먹을 겸 친구들과 오토바이를 타고 춘천을 향해 달렸다. 국도 커브길에서 미끄러져 우당탕 하고 넘어졌는데 처음엔 (왼팔 부분이) 아린 느낌이었다. 그런데 친구가 ‘너 팔이 없어...’ 하며 울고 있었다. 오른손으로 왼팔을 만졌는데 팔이 없더라. 놀란 나머지 몸을 오른쪽으로 틀었더니 피가 몸통으로 쏟아졌다. 본능적으로 빨리 왼팔을 찾아야 접합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도로에 쓰러진 채 친구에게 팔을 찾아달라고 외쳤다. 병원에서 접합 수술을 받았다.”


-어렵게 붙인 팔을 결국 절단했다.


“처음엔 수술에 성공했다. 이후 병실에 있는데 어디서 썩는 냄새가 났다. (접합 부위의) 내 살이 썩는 냄새였다. 마침 으스러진 척추 뼈에 핀을 박는 수술을 받기 직전이었다. 몸에서 열까지 심하게 나자 의사가 ‘접합한 부위에 패혈증이 있어 그대로 두면 몸이 위험하다’며 절단 수술을 먼저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로 수술해달라고 했다.”


-왜 더 고민하지 않았나.


“고민할 시간이 길어지면 ‘한 팔로 사는 게 맞아?’ 이런 생각만 날 것 같았다. 그래서 순간 의사에게 (수술하자고) 말하고 절단했다. 첫 번째로 팔이 잘린 건 사고였지만, 두 번째 절단은 자의였던 셈이다.”


-도로에 넘어졌다고 팔이 잘리나.


“기억이 정확히 나지 않는다. 다만 당시 병원에선 ‘넘어지면서 가드레일의 날카로운 금속 면에 잘린 것으로 추정된다’는 말을 들었다.”


-재활 과정은 어땠나.


“병실 침대에서 화장실까지 가기가 첫 도전이었다. 두 달 동안 침대에만 누워 있으니 근육이 싹 빠졌다. 기립성 저혈압이 있어 누워 있다가 앉으면 빈혈이 심해져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침대 각도를 5도, 10도, 15도 이렇게 올리면서 조금씩 일어서는 연습부터 했다.”


-의수 고르는 것도 힘들어했다.


“제작 업체에 10번이나 의수를 다시 만들어달라며 밉상을 보였다. 미용업을 오래 한 내 눈엔 의수 디자인이 내 팔 모습과 달라서 너무 보기 싫었다. 값싼 의수는 영화 ‘내부자들’에서 이병헌이 한 의수처럼 나무토막 같았다. 고가 제품도 막상 보니 내 손과 피부 톤이 달라서 의수 위에 직접 색연필로 혈관 무늬를 칠하고 가짜 손톱도 붙였다.”

스스로 벗어던진 의수(義手)

김나윤의 사연을 처음 접했을 때 지난 2000년 오토바이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가수 강원래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재활 전문가들은 후천적 장애가 생기면 사고의 아픔을 딛고 장애를 인정하기까지 통상 5년에서 10년 이상 걸린다고 말한다. 김나윤은 1,2년 만에 트라우마를 극복했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 자신이 겪은 사고 상황과 장애에 대해 거리낌 없이 말했다. 올해 초부턴 의수도 차지 않는다. 강원래의 재활을 맡았던 국내 장애인 1호 체육학 박사 이용로씨는 “이런 빠른 회복은 매우 드문 일”이라고 했다. 이 박사는 김나윤의 재활도 지도했다.


-어떻게 사고 후유증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었나.


“나도 처음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지’ 하며 괴로웠다. 이런 생각이 쌓여 ‘화’로 뭉쳤다. 치약도 혼자 짤 수 없는 신세를 한탄하며, 나를 밤낮으로 보살피던 엄마에게 짜증만 부렸다. 두 번째로 간 국립교통재활병원에서 이런 생각을 고쳐먹었다. 휠체어를 탄 척추 손상 마비 환자들을 보고 ‘내 장애는 좌절할 장애가 아니구나’ 했다. 부정적인 생각만 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 뒤로 목이 아니라 팔이 터진 것, 오른팔이 아니라 왼팔이 사고를 당한 것, 척추뼈가 부러졌지만 신경이 있는 척수가 눌리지 않아 마비를 피한 걸 감사하게 여기며 살았다. 이런 생각의 전환이 나를 일으켰다.”


-의수를 아예 안 하고 다니던데.


“어느 날 TV에서 한 외국 관광객이 ‘한국엔 장애인이 없는 줄 알았다’고 한 말을 들었다. 왜 없다고 할까 생각하다가, 나도 장애인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의수를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남들한테 받지 않아도 될 시선을 받는 걸 피하겠다고 의수를 착용했던 것이다. 이날 이후 난 의수를 하지 않는다.”


-의수가 없는 게 오히려 사람들 시선을 더 받지 않나.


“처음엔 의수를 가리려고 긴소매 옷만 입었다. 그런데 인생은 짧고 삶과 죽음은 굉장히 가까운데 남의 시선에 맞추는 게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때가 가장 멋있고 아름다운 것 같다. 이게 의수를 착용하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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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전 헤어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모습. /김나윤 제공

-원래 똑 부러지는 성격인가.


“미용 업무를 하면서 (정신이) 단련됐다. 10대 때부터 까다로운 고객에게 무시당하기도 하고 상사에게 구박도 받았는데, 마음의 상처를 받아도 바로 회복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내면이 강해진 것 같다. 덕분에 팔을 잃은 사고처럼 인생에 큰 시련이 왔을 때도 ‘어쩔 수 없어’ ‘바꿀 수 없는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미용사 시절이 그립진 않은가.


“내 직업이 아깝긴 하다. 지금도 가끔 커트를 하거나, 미용 기술을 검색하는 꿈을 꾼다. 그래도 12년 동안 그 시간을 치열하게 보냈기 때문에 깔끔하게 ‘내가 사랑했던 직업이야’라고 말하고 잊어버릴 수 있었다. 인생에 많은 교훈과 삶의 지혜를 준 직업이었다.”


-간병한 어머니에 대해 말해달라.


“엄마가 가정 폭력 상담사다. 사람 심리를 잘 간파하다 보니 딸인 나까지 객관적으로 본다. 내가 방송에서 ‘이제 장애 아픔을 극복했다’고 말하고, 의수를 벗고 다녀도 엄마는 아직 내가 정상이 되려면 멀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도 이제는 조금씩 내가 장애를 극복하고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 같다.”


-피트니스 대회에서 1등 한 비결은.


“(우승한) 비키니 부문은 단순히 근육이 우락부락한 것보다 엉덩이와 허리 선이 가는지, 대둔근의 형태가 어떤지 중점적으로 본다. 왼팔을 절단하면서 팔에 붙어 있는 광배근이 줄어 등 근육에 자신이 없었지만 (운이 좋았다). 매일 아파트 100층을 오르내리고, 식단 관리를 철저히 했다. 아직도 흉추에 금속 핀이 박혀 있어 고중량 운동은 못 해 적은 중량을 여러 번 반복하는 식으로 보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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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WBC 피트니스 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든 김나윤. /김나윤 제공

“난 장애인 네 살... 모든 걸 혼자 배운다”

김나윤은 지난해 11월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다. 장애를 주제로 한 유튜브 채널은 많지만 그의 방송은 한 가지 특별한 점이 있다. 절단 장애인으로서 어떻게 일상생활을 하는지 알려주는 ‘하우 투’ 코너가 그렇다. 예를 들어 여자 속옷은 어떻게 입는지, 한 손으로 손톱 깎기, 신발 끈 묶는 방법을 체험 형식으로 영상에 담아 올리는데 절단 장애인뿐 아니라 손발을 다친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좋다. 아이디어도 반짝인다. 8kg 역기를 한 손으로 들 수 없어 핸드백 가죽 끈을 역기 손잡이에 묶고 이 끈을 목에 걸고 앉았다 일어서는 운동을 한다. 휴대폰 거치대에 헤어 드라이어를 올려 머리를 말리고, 플라스틱 판에 박힌 못에 음식 재료를 꽂아 한 손만으로 재료 손질을 할 수 있는 도마를 쓰는 등 집 안 물건들도 ‘한 손 생활’에 맞춰 바꿨다.


-왜 이런 방송을 시작했나?


“병원에 있을 때 절단 장애인은 어떻게 일상생활을 하는지 스마트폰으로 검색했는데 상지 절단 사례를 찾을 수 없었다. 이렇게 정보가 많은 세상에 절단 장애에 대한 정보가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결국 내가 직접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우투 영상 콘텐츠로 나와 같은 절단 장애인이 위로받고 힘을 냈으면 좋겠다.”


-시행착오가 많았을 텐데.


“등 씻기가 어려워서 때밀이 기계를 알아보다가 결국 사지 않았다. 엄마가 처음엔 내 자취방에 손으로 눌러 비누·치약을 짜내는 펌프 방식 제품을 가져다 놨는데, 의외로 한 손으로 하기엔 불편했다. 결국 뚜껑을 열어 내용물을 짜는 제품으로 모두 바꿨다. 뭐든지 생각한 것과 너무 달라서 직접 해봐야 했다.”


-오른팔은 어떻게 씻나.


“샤워 막대기를 쓴다. 팔뚝 길이의 플라스틱 막대 끝 부분에 샤워 타월이 달려 있는 도구다. 막대기 끝을 양 무릎으로 고정한 다음 비누 거품이 묻은 샤워 타월에 오른팔을 문지르면 빈틈없이 씻을 수 있다.” (김나윤은 샤워 막대기를 사용해 과거 재활할 때 입었던 검정 전신 수영복에 비누 거품을 온몸에 묻히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한 팔 샤워 방법을 알려주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한 손으로 하기에 가장 어려운 건 무엇이었나.


“양말 신기와 지퍼 올리기였다. 지금도 지퍼를 채우는 데 5분 넘게 걸릴 때도 있다. 바늘로 옷 한쪽을 찔러 바지에 고정하면 지퍼를 채우기 쉽긴 한데 옷에 구멍이 나서 잘 안 한다. 지금도 어려운 게 있지만 뭐든지 혼자 하려고 노력한다. 친구들과 달리기하다가 편의점에서 음료를 사 먹을 때도 내 캔 음료 뚜껑은 직접 딴다.”


-간단한 일은 주변 도움을 받아도 되지 않나?


“엄마나 친구가 언제까지 내 옆에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혼자 해야 한다. 현재 내 나이는 서른 살이지만 장애인으로는 네 살이다. 장애인으로서 아기가 어른이 되는 과정에 있다. 혼자 살아도 부모에게 의존한다면 자립이 아닌 것처럼 내가 계속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데 익숙하다고 말하려면 나 혼자 일상 살기가 몸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래도 비장애인으로 27년을 살 때보다 (장애인으로서) 성장 속도는 더 빠르지 않을까.(웃음)”


-유튜브 채널명이 ‘윤너스TV’다. 무슨 뜻인가.


“처음 혼자 샤워를 하러 화장실에 갔다가 한쪽 팔이 없는 내 모습을 거울로 보니 기괴하고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양팔이 없는 밀로의 비너스상(像)이 떠올랐다. 장애를 다룬 방송을 하려면 내 실명보다 직관적 닉네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름의 끝 자와 비너스를 합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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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같은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선 절단 장애인 김나윤. 그는 "올해 22학번 새내기가 됐다"며 "장애인 재활, 복지 분야 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한 팔을 잃었지만 꿈을 얻었다”

-지난달부터 다른 장애인 3명과 함께 EBS에서 장애를 다룬 예능 프로그램 ‘세상을 비집고’를 진행하고 있다.


“절단 장애인인 나와 청각·시각·뇌성마비 장애인이 나와 각자의 일상을 얘기한다. 예능 형식으로 한 이유는 장애를 주제로 한다고 해서 감동 서사를 그리거나 우중충하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장애를 가진 진행자에게 ‘네가 못 알아들어서 답답해’ 이런 농담을 하면서 밝은 분위기로 만들고 있다.”


-새로운 경험이겠다.


“장애인끼리도 서로 이해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장애인이어도 다른 장애를 가진 사람의 불편은 알기 어렵다. 시각 장애인을 위해 지하철역 바닥에 설치한 점자 블록은 휠체어를 탄 마비 환자에겐 불편하게 작용할 수 있다.”


-장애인 정책에 관심을 갖게 됐나.


“일상 곳곳에서 복지 정책의 문제를 본다. 의수 하나당 300만~500만원인데 국가 지원은 50만원 정도다. 이마저도 14년째 금액이 묶여 있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을 위해 가사를 도와주는 활동 보조 서비스는 65세가 지나면 이용 가능한 시간이 줄어든다. 나이가 들면 손길이 더 필요할 텐데 아쉽더라. 장애인은 문화 생활도 쉽지 않다. 장애인 복지 카드가 있으면 영화 표가 50% 할인되는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은 이용객이 적은 오후 2~3시대라 일하는 사람은 쓰기 어렵다. 장애인 주차 구역도 법에 정해진 규격보다 좁아 차에서 휠체어를 내리기 어려운 곳도 자주 봤다. 우리나라가 그 나름대로 복지 시스템이 잘돼 있는 편이지만 다양한 복지 제도가 적재적소에 적용되길 바란다.”


-장애인의 삶은 어떤가.


“사고 이전엔 장애인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을 쳐다본 적도 없다. 막상 내가 당사자가 되니 달라지더라. 그렇다고 ‘장애인이라서 차별을 없애주세요’라고 하는 게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서 동등하게 인정해달라는 얘기를 한다. 네일 아트를 좋아하는데 한 손만 있어서 가격이 절반이 되는 건 좋더라.(웃음)”


-취임식에 한복을 입고 갔다.


“한복 장인인 박술녀 선생님이 예전 방송에서 내 사연을 보고 왼팔 소매가 없는 한복을 만들어 선물해주셨다. 나는 정치에 관심도 없었고 취임식에 참석하는 게 특정 정치색을 띠는 건 아니지만, 국민 대표 20인에 뽑힌 것이니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싶어 한복을 입었다. 취임식에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를 만들겠다’고 한 윤석열 대통령의 말이 생각난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 문제를 비롯해 어디에 가든 차별이 있다. 장애인 차별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차별 문제가 해소됐으면 좋겠다.”


-앞으로 꿈은 무엇인가.


“사고로 팔을 잃었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도전을 하게 됐다. 장애인 재활 운동 분야 전문가가 되는 게 1차 목표다. 어린아이들이 장애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장애 인식 교육에도 관심이 있다. 사회복지를 공부하면서 느낀 건 후천적 장애인이 병원에 있을 때는 재활 운동을 하지만 그 뒤에는 체계적으로 재활하는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장애인이 퇴원해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오랫동안 재활을 겸한 운동을 할 수 있는 센터를 만들고 싶다.”


인터뷰가 끝나고 사진 촬영을 하면서 김나윤은 비너스상 포즈를 잡았다. 같은 듯 다른 모습. 비너스를 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비너스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난 살아있고, 활짝 웃을 줄 알고...아, 팔은 내가 하나 더 많아요!”


[최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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