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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by 조선일보

구입까지 5분…날조된 수능성적표 1만원에 거래

단돈 1만원에 날조 수능성적표 거래 횡행

재수학원 제출·과시용 등으로 활용

"파는 쪽이나 사는 쪽이나 중죄"


"수능성적표 구할 수 있나요?"

"네 가능합니다. 편집은 본인이 하셔야합니다."


스마트폰 화면 속의 ‘성적표 브로커’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의 직인(職印)까지 찍힌 날조 수능성적표의 가격은 1~3만원.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주문한 지 불과 5분만에 이메일이 울렸다. 완벽한 형태의 백지(白紙) 수능성적표가 파일 형태로 날아왔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은 다양한 주제로 익명으로 대화하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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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오픈채팅창을 통해 날조 수능성적표를 구매하는 상황/전효진 기자

◇양식 (樣式) 만 거래되는 ‘수능성적표’

지난 4일 현금 결제만 한다는 한 판매자에게 접촉했다

"수능 성적을 직접 넣어줄 수 있나요?"(기자)

"죄송요.그건 법적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요. 본인이 직접 하셔야 됩니다."(브로커)

"(교육과정평가원장)도장도 찍혀 있나요?"(기자)

"찍혀진 것처럼 인쇄됩니다. 구매하실건가요?"(브로커)


수능성적표 배부일인 5일 또 다른 판매 브로커와 접촉했다. 시가보다 다소 저렴한 1만원에 백지 수능성적표를 판매하고 있었다. 그는 "실제 수능성적표와 똑같다"면서 "입금만 확인되면 파일을 바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판매자가 ‘샘플’로 보낸 날조 수능성적표는 앞서 구매한 것과 한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았다. 심지어 교육과정평가원장 직인의 왼쪽 아래 모서리 부분이 살짝 덜 찍힌 것마저 유사했다.


하나의 원본이 반복 판매되고 있는 셈이다. 2019학년도 날조 수능성적표 원본을 사들인 누군가가 이것을 되파는 식으로 하나의 ‘시장’이 형성된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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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에서 거래되고 있는 수능성적표 양식./박성우 기자

◇날조된 수능성적표, 실제로 어디에 쓰일까

날조된 수능성적표는 대입(大入)에 활용할 수는 없다. 수험생 성적이 전자 시스템으로 각 대학에 전달되기 때문이다. 1~3만원짜리 날조 수능성적표가 쓰이는 곳은 따로 있다. 바로 사(私)교육 시장이다. 일부 입시학원은 수능 성적을 근거로 상위권 반을 나눈다. 날조 수능성적표를 학원 측에 제출, 상위권 반에 진입하는데 쓴다는 것이다. 지난해 강남의 한 대형 재수학원에서는 ‘언어 만점’을 맞았다며 가짜 성적표를 제출한 재수생이 3명 있었다고 한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재수학원에서도 등급에 따라 장학제도도 있어서 이를 악용할 가능성도 있어 이를 걸러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주변인들에 대한 과시용·설득용으로도 활용된다. 날조 수능 성적표를 구한다는 한 수험생은 인터넷 공간에 "부모님에게만 재수(再修)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어서 (날조 수능성적표) 양식을 구하고 있다"고 썼다. 또 다른 수험생은 "수시를 이미 합격해서 수능을 볼 필요가 없었는데 생각보다 점수가 나쁘게 나왔다"며 "올해는 어렵다는 ‘불수능’이라서 잘본 것 처럼 주위에 인증하려고 한다"고 했다.


이 밖에 날조 수능성적표를 토대로 과외나, 학원 아르바이트를 구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입시업계 관계자는 "학원가에서는 수능시험 점수가 '꼬리표'처럼 달려서 포트폴리오가 되기도 한다"며 "대학생이 학원에 아르바이트를 하러올 때 수능 언어영역 1등급이라고 하면 그냥 써줄 때도 있다"고 전했다.


◇날조된 수능성적표 거래는 중죄

사적으로 사용한다면 문제가 없지 않을까. 경찰 대답은 "아니오"였다. 날조된 백지 수능성적표를 제공한 쪽이나, 이것을 받아 숫자를 집어넣어 사용한 쪽이나 수사대상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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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학년도 대입 수능 성적표가 배부된 5일 오전 제주시 영평동 신성여자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성적표를 살펴보고 있다./뉴시스

형법 제 225조(공문서 등의 위변조)는 공(公)문서를 위조·변조했을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모바일 메신저로 거래되는 가짜 수능성적표 양식의 경우에는 평가원장의 직인이 찍혀 있다. 이 때문에 형법 제 238조(인장 관련 죄)도 추가로 적용될 수 있다. 빈 성적표 양식만 판매해도 중죄(重罪)에 해당한다는 얘기다. 허윤 법무법인 예율 대표변호사는 "평가원장 도장이라는건 일반 대중들이 신뢰할 수 있는 표상이기 때문에 결코 가볍게 처벌되지 않는다"며 "성적표 양식의 사용 의도(위조)를 알면서도 ‘도구’를 빌려준 것이니 방조까지도 적용될 수 있다"고 했다.


날조 수능성적표를 구입, 사적으로 활용한 사람은 형법 제 229조의 허위공문서 등 행사 혐의가 적용된다. 직접 제시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이 이것을 ‘볼 수 있도록’ 두기만 해도 혐의가 적용된다.


경찰 관계자는 "직접적으로 금전적 이득을 취하지 않았더라도, 사적으로 남을 속이기 위해 쓰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공문서 위조 행사"라며 "사용 목적과 이유를 불문하고 수능성적표를 위조하는건 범죄"라고 했다.


[전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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