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년前 마차 바퀴 만들던 회사, 손놓고 달리는 도시 만든다
지난 3일 독일 북부 하노버시(市) 외곽에 있는 'ADAC(독일자동차운전자연맹)' 주행 시험장. 이곳에는 자율주행, 연결성, 전동화 등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결정지을 첨단 기술과 장비 전시품 20여 개가 한데 모여 있었다. 도심형 무인 자율주행 셔틀 '큐브'는 주행 중 앞으로 행인이 지나가자 스스로 서서히 멈췄고, 앞서 가는 자동차가 느려지자 덩달아 속도를 줄였다. 단거리 레이다가 장착된 차량이 우회전하려는 순간, 자동으로 비상 브레이크가 걸렸다. 뒤따라 달려오던 자전거를 레이다가 인식해 충돌 사고를 예방한 것이다.
독일의 글로벌 자동차 부품회사 콘티넨탈은 센서와 라이더(전자거리 측정장치) 등 자율주행차 핵심 부품에서부터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까지 기술 기업으로 변신을 모색하고 있다. 사진은 콘티넨탈이 그리는 미래 도심 속 자율주행차의 모습. /콘티넨탈 |
스마트 시티에서 볼 수 있는 지능형 교차로와 가로등도 공개됐다. 각종 센서가 설치된 교차로는 운전자 시야에 가려진 보행자나 차량을 미리 인식해 운전자에게 경고해 주고, 차량 흐름 데이터를 수집해 신호등 신호를 조절한다. 지능형 가로등은 도로 상황에 맞게 스스로 조명을 조절할 뿐 아니라, 빈 주차 공간을 찾아 인도해 주거나 앞선 도로의 사고 상황 등도 운전자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차량이 이동하면서 얻게 되는 도로 상황, 날씨 등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다른 차량 운전자에게 판매하는 내용의 블록체인 기반 데이터 수익화 플랫폼도 선보였다.
이날 선보인 다양한 기술은 모두 하나의 기업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독일 타이어 회사로 잘 알려진 글로벌 자동차부품 회사 콘티넨탈이 그 주인공이다.
마차 바퀴 만들던 기업, 세계적 테크 기업으로 도약
1871년 독일에서 마차와 자전거 바퀴 타이어 제조로 시작한 콘티넨탈은 지난해 기준 전 세계 60개국에서 24만400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연 매출 444억유로(약 59조원)의 세계 5대 자동차 종합 부품 기업으로 성장했다. 1900년대에는 자동차 타이어 생산에 주력했지만, 2000년대 들어 전자회사 테믹, 모토롤라, 지멘스로부터 전장 부문을 인수, 사업을 확장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전 세계 230여 곳에서 만들어지는 콘티넨탈 부품이 단 하나라도 안 들어 있는 자동차는 없다"는 말도 있다.
1892년 콘티넨탈이 생산한 자전거용 공기압 타이어를 보여주는 기업 포스터. /콘티넨탈 |
자동차 전장 하드웨어에 집중하며 승승장구하던 콘티넨탈 관계자들은 그러나 지금이 최대 위기 상황이라고 말한다. 10여 년 전부터 시작된 자율주행, 전동화 등의 기술 변혁이 내연기관과 운전자로 대변되는 전통적인 자동차 산업 생태계를 뿌리째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차량 공유 등으로 자동차 판매 성장률이 둔화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고, 자율주행 등 미래 모빌리티 기술을 선점하기 위해 자동차 업계뿐만 아니라 IT 업계의 기술 경쟁도 나날이 치열해지고 있다. 자동차 하드웨어인 부품 납품에만 의존했다간 생존 기반이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콘티넨탈이 찾은 돌파구는 소프트웨어였다. 미래 자동차 산업의 성장을 이끌 열쇠를 소프트웨어 기술이 갖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가 지난해 발표한 분석에 따르면, 2030년쯤 자동차 산업 하드웨어 분야 매출은 현재 2조5000억달러에서 2조8000억달러로 늘어나는 데 그치는 반면, 같은 기간 소프트웨어 매출은 3100억달러에서 2조7000억달러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M&A·R&D·인력 투자로 기술 혁신 자산 확보
콘티넨탈은 이에 맞춰 자동차 전장에 강점을 둔 기술 기업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4년여 전부터 자율주행 핵심 기술인 거리 측정 장비와 사이버 분야, 교통 데이터 관리 관련 기업을 잇달아 인수하며 미래 자산을 확보했다. 지난해에만 신규 기능 기술 개발과 관련된 R&D에 30억유로(약 3조9500억원)를 투입했고, 현재 약 1만9000명인 소프트웨어 관련 회사 엔지니어 인력을 향후 2~3년 내에 2만5000명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대대적인 조직 개편도 추진하고 있다. 브레이크·센서 등을 개발 생산하는 섀시 안전 사업본부와 계기판·제어장치 등을 담당하는 인테리어 사업본부는 내년부터는 '자율주행 기술'과 '차량 네트워킹 기술'로 명칭이 변경된다. 타이어 사업본부도 '타이어 기술'로 이름이 바뀐다. 회사 정체성으로 '기술'에 방점을 찍고, 미래 성장 동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안이라는 것이다.
콘티넨탈이 개발한 단거리 레이다가 차체 앞뒤에 장착된 차량이 우회전하려는 순간, 레이다가 뒤따라 오는 자전거를 감지하고 자동으로 비상 브레이크를 작동시켜 충돌 사고를 예방하는 모습. /콘티넨탈 |
행사장에서 만난 콘티넨탈의 한 직원은 "콘티넨탈은 자동차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그 너머(beyond)를 내다본다"고 말했다. 자율주행 기술로 대표되는 자동차의 미래도 결국 이를 뒷받침해 줄 인프라와 연결 기술이 있어야 완벽해지고 진화할 수 있다는 대답이었다.
엘마 데겐하르트 콘티넨탈 CEO는 "소프트웨어 개발 역량이 앞으로 자동차 업계의 성공을 가르는 척도가 될 것"이라며 "기술 혁신을 통해 차 사고와 사망자를 줄이고, 깨끗한 환경을 구현하는 일이야말로 자동차 산업의 사회적 책임이며 콘티넨탈이 추구하는 목표"라고 말했다.
콘티넨탈은
-설립: 1871년 독일 하노버
-진출 국가와 직원 수: 60개국, 24만4000명
-제품 생산 지역: 233곳
-매출액: 444억유로(약 59조원)
-주요 제품: 타이어, 자동차 브레이크 시스템, 구동과 섀시 관련 시스템·제품, 계측 기기, 인포테인먼트 설루션
하노버(독일)=이송원 기자(lssw@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