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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靑春들의 눈물겨운 짠테크

지난해 12월 취업준비생 최모(25)씨는 하반기 공채 마지막 일정이었던 한 기업의 최종 면접에서 떨어진 후 스마트폰에 애플리케이션(앱) 6개를 깔았다. 중고 거래를 할 수 있는 앱, 설문조사에 참여하거나 걷기 운동을 하면 포인트를 적립할 수 있는 앱 등 모두 일상생활에서 잔돈을 긁어모을 수 있는 앱이었다. "올해 상반기 공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까지 버티려면 '생활비를 바짝 아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최씨는 지난 2개월 동안 당장 필요 없는 신발과 옷, 휴대용 스피커 등을 중고 거래 앱에 올려 팔고, 설문조사에 매일 참여하는 식으로 20만원을 모았다. 최씨는 "앱으로 모은 돈을 스터디카페 이용료, 식비 등에 썼다"며 "최근 코로나 사태로 괜찮은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기도 어렵고, 집에서 생활비를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취업이 될 때까지 어떻게든 악착같이 버텨야 한다"고 했다.


극심한 취업난에 더해 최저임금 인상과 코로나 사태에 따른 경기 침체 등으로 아르바이트 일자리마저 꽁꽁 얼어붙으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의 호주머니 사정이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운 좋게 '바늘구멍'인 취업 문을 뚫은 새내기 직장인도 결혼 준비 등으로 생활비를 아끼느라 여념이 없다. 이런 분위기 속에 한 푼이라도 더 모으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 2030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른바 '소확쩐(錢)'이라 불리는 '짠테크(짠내 재테크)'를 실천하는 것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쩐' 모으기…2030 사이서 확산


소확쩐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쩐 모으기'의 줄임말이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줄임말)'이 소비에 초점이 맞춰진 트렌드라면 '소확쩐'은 1원, 10원 같은 푼돈 챙기기에 집중하고 어떻게든 돈을 안 쓰려는 노력을 말한다. 소확쩐을 가장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기업들이 홍보·마케팅 등의 목적으로 운영하는 앱을 이용하는 것이다. 2년 차 직장인 유모(28)씨는 매일 출근길 버스 안에서 KB국민카드 앱 '리브메이트'를 켜고 '오늘의 퀴즈' 이벤트에 참여한다. 답을 맞히면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포인트를 적립할 수 있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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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 설문조사 패널로 등록하고 조사에 응하면 1만원 이하의 문화상품권이나 현금을 주는 앱(엠브레인 패널 파워), 출석 체크하고 미션을 수행하면 최대 1000포인트 당첨 기회를 주는 앱(신한페이판), 특정 프랜차이즈 상점 영수증을 사진 찍어 올리면 30포인트나 50포인트를 주는 앱(캐시카우)도 있다. 직장인 김모(32)씨는 "편의점이나 프랜차이즈 카페에 가면 영수증을 꼭 챙겨서 캐시카우에 올린다"며 "건당 30원, 50원 정도의 푼돈이지만 티끌이라도 모으자는 생각으로 습관화하고 있다"고 했다.


◇걸으면 포인트 쌓이는 앱도


운동과 결부된 소확쩐 앱도 있다. 대학생 안모(24)씨는 지난해부터 '캐시워크'라는 앱을 쓴다. 걸음 수에 따라 포인트가 쌓이는데 하루 최대 100캐시(원)를 적립할 수 있다. 적립한 캐시는 프랜차이즈 카페나 편의점 등에서 쓸 수 있는 기프티콘이나 상품권으로 바꿀 수 있다. 안씨는 "열흘간 1000원을 모아 생활비에 보탠다"고 말했다.


송금 서비스 앱인 '토스'에는 만보기 기능이 있는데 혼자서 하루 1만보 걸으면 40원, 친구 맺은 사용자들과 합산해 하루 5만보 걸으면 60원(하루 최대 100원)을 받을 수 있다. 토스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기준 누적 가입자가 1600만명을 넘었는데 이 중 20~30대 비율이 절반을 넘는다"고 말했다.


'당근마켓'은 중고 거래를 통해 '소확쩐'을 추구하는 2030에게 가장 많이 활용되는 앱이다. 당근마켓은 거주지 기준 6㎞ 이내 이웃끼리 중고 물품 직거래를 하도록 만들어진 지역 기반 서비스다. 택배 거래에 대한 불신, 배송비 부담을 느끼는 청년들이 당근마켓을 통해 필요 없는 물건을 팔아 용돈을 버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와이즈앱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당근마켓의 이용자 수는 331만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161%나 증가했다. 김재현 당근마켓 대표는 "최근 2030 세대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고 했다.


◇"구직난 2030, '소확쩐' 불가피"


금융권도 소확쩐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타깃으로 한 상품을 내놓고 있다. 웰컴저축은행은 11일 최고 연 5%의 금리를 주는 적금을 출시했다. 월 최대 납입액이 20만원으로 적은 편이지만 재테크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출시 전부터 화제가 되는 등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하나저축은행이 지난 5일 출시한 '두배로 적금'(최고 금리 연 4%)은 하루 만에 한도가 소진돼 판매가 종료되기도 했다.


소확쩐 트렌드는 앞으로 더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아르바이트 등을 하면서 돈을 벌고 싶지만 경기 침체 탓에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청년층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청년층(15~29세) 확장실업률은 22.9%로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15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확장실업률은 취업 의사는 있지만 최근 구직 활동을 하지 않거나 취업 준비를 하면서 단기간 일하고 있는 사람까지 모두 포함해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실상 실업자를 반영한다. 즉 청년들은 아르바이트를 최대한 하면서 취업 준비를 하고 싶어 하지만 그럴 여건이 안 되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는 "'소확쩐'은 경제성장률 1%대라는 불황의 직격탄을 맞아 주머니 사정 때문에 고민하는 2030의 슬픈 자화상"이라고 말했다.




김지섭 기자(oasis@chosun.com);최은경 기자;신재현 인턴기자(이화여대 경제학과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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