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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2만원, 치맥값 빼준다고?" 열받은 민심

"꼴랑 만원 2만원 내려준다고 그런 호들갑을 떤 거냐… 생색은 엄청 내더만."(아이디 'sene****')


"에어컨은 필수고 이젠 생존권이 달린 문제라서 누진세를 폐지해야 합니다."(아이디 'raon****')


8일 인터넷에선 전날 발표된 정부의 폭염 전기료 한시 인하 대책에 대한 비판글이 잇따랐다. 한 포털사이트에 게재된 본지 기사에는 이날 오후 3시 30분까지 7572개의 댓글이 달렸다. 이 중 긍정적 내용은 240개로 3.17%에 불과했다. 나머지 96.8%는 부정적·비판적 반응이었다.


전기료 20만원 나오는데 할인은 2만원


정부 대책에 따르면 7~8월 가구당 전기료는 한 달 평균 19.5%(1만370원) 인하된다. 정부는 누진제 2단계 이상에 속한 1512만 가구의 전기료가 7~8월 두 달간 평균 2만원 정도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누진제 완화로 국민이 혜택받는 전기료 총액은 2761억원이다.


하지만 전기료 폭탄의 주범인 누진제의 골격 자체를 건드리지 않다 보니 전기 사용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할인율은 줄어든다. 이에 대해 '너무 늦게, 너무 찔끔 내렸다'는 비판이 많았다. 네티즌들은 "국민을 우롱하고 있네요. 국민 재난이라더니 진짜로 생색 내기 그지없네요" "청와대에 2만원 돌려주기 운동 합시다. 청와대에 항의합시다" 등의 댓글을 달았다.

조선비즈

/그래픽=김성규

실제 에어컨 가동 시간으로 따져보면 전기료 인하폭은 가구당 최대 2만원 남짓이다. 월평균 350kWh를 소비하는 4인 가구가 스탠드형 에어컨(1.8kW)을 한 달 내내 하루 5시간씩 틀면 전기료가 14만2420원에서 12만1300원으로 2만1120원(14.8%), 하루 10시간씩 틀면 22만8560원에서 20만7270원으로 2만1290원(9.3%) 감소한다.


기록적 폭염이 지나간 뒤 정부가 마지못해 '뒷북 대책'을 내놨다는 비판도 많았다. 정부는 이미 7월 전기료 청구서를 받은 가정에 대해선 8월 요금 청구 때 소급해서 할인해준다고 했지만 요금 걱정 때문에 푹푹 찌는 폭염에도 에어컨을 제대로 켜지 못하고 고생했던 국민 입장에선 늦은 감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7일 "(대책 마련) 속도가 늦은 점은 국민께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누진제 유지에 대한 불만 높아


누진제 문제를 중장기 검토 과제로 넘긴 데 대한 불만도 컸다. 네티즌들은 "2016년 박근혜 정부 때 누진제 폐지 외치던 민주당은 어디로 갔나?" "문 대통령님, 정말 실망입니다. 말을 하지 마시든지, 누진세 폐지를 해주셔야지" 등의 반응을 보였다.


정부도 누진제의 근본적인 개편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다. 백운규 장관도 전날 "국회와 긴밀히 상의하면서 누진제를 포함한 전기요금 체계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제도 개편 방안을 공론화 과정을 거쳐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전기료 누진제는 1973년 오일 쇼크 이후 도입됐다. 공장에서 사용하는 산업용이나 상가가 쓰는 일반용(상업용) 전기와 달리 주택용에만 누진제가 적용된다. 전력 과소비를 막자는 취지다.

이 때문에 형평성 논란은 거의 매년 여름마다 반복됐고, 지난달 중순 폭염이 시작된 후 국민 불만도 누진제로 향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여름 폭염 때도 에어컨 가동이 늘면서, 고액의 전기료 고지서를 받아든 시민들은 누진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요구했다. 당시 정부는 6단계로 되어 있던 누진 구간을 3단계로 줄이면서 개편 전 가장 높은 구간의 전기 요금을 kWh당 709.5원에서 280.6원으로 절반 이상 낮췄다. 대신 월 100kWh 이하 구간은 kWh당 60.7원에서 93.3원으로 높였다.


산업화 시대 도입된 누진제 재검토해야


2년 전 누진제가 한 차례 완화됐는데도 불만은 여전하다.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하지만 정부는 전력 과소비를 막고, 전기 저소비층과의 형평성을 내세워 난색이다.


하지만 전체 전력 사용량 중 주택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1985년 19%에서 매년 낮아져 작년엔 13%까지 떨어졌다. 전체 전기 사용량의 절반 이상인 56%가 산업용이고, 상업용 전력도 21%에 달한다. 장기적으로 누진제를 통해 전력 과소비를 막는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2007~2016년 평균 주택용 전력 비중은 14.2%지만 주택용의 전기료 비중은 17.8%에 달했다. 일반 가정이 10년 동안 실제 사용한 것보다 15조원 많은 전기료를 부담하면서, 서민한테서 전기료를 더 거둬 기업이나 상가 전기료를 보전해준다는 불만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일각에선 누진제 폐지로 자칫 에너지 과소비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문 열어 놓고 냉방기를 가동하는 상점들이 흔한 것도 현행 제도의 맹점 탓이다.


가천대 김창섭 교수는 “누진제는 수요관리형 요금제라고 해서 징벌적 요금제”라며 “그동안은 대한민국 소비자들이 수용해왔지만, 이제는 기후체제 변화로 에어컨이 생존의 문제가 됐기 때문에 누진제에 대한 국민적 논의를 다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화 시대에는 국민들이 ‘산업보국’을 위해 에너지 절약에 동참했지만, 이제는 시대가 달라진 만큼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현묵 기자(seanch@chosun.com);안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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