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없는 설움을 해결하러 건축계가 나섰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웃기면서 슬픈 말이 있다. 집값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니 건물을 지배하는 자가 권력의 우위를 차지한다. 이 땅 위에 두 다리 뻗고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내 집 마련'이 인생 최대 목표가 돼버렸다.
집 없는 설움이 어디 우리만의 문제일까. 전 세계 집값 역시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독일에서 한 여대생이 비싼 월세를 못 이겨 10개월간 기차에서 생활하고, 영국에선 초선 의원이 보트에서 생활했다는 이야기는 그냥 웃고 지나치기에 씁쓸한 우리의 자화상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재난, 전쟁, 빈곤의 양극화 등 초 국가적 문제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집을 잃어 가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 이슈에 발맞춰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은 건축가의 사회적 책임에 높은 점수를 주어 평가하고 있다. 이처럼 사회 문제 해결을 고민해온 프리츠커상의 역대 수상자 3명과 그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1. 알렉한드로 아라베나 (2016, 칠레)
알렉한드로 아라베나는 프리츠커상 최연소 수상자이자 실용성 높은 건축을 추구해 온 사회 참여 건축가다. 그는 건축 설계나 도시 계획을 할 때 공동체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해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반영하는 데 적극적이다.
대표작인 ‘반쪽짜리 좋은 집(half of a good house)’은 이름 그대로 한 지붕 아래 집이 절반만 지어져 있다. 하지만 집 안에는 부엌, 침실 등 기본 시설이 다 갖춰져 있어 입주민이 살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다. 훗날 형편이 나아지면 입주민은 나머지 빈 곳을 자유자재로 증축해 사용할 수 있다.
반쪽 집은 칠레의 북부 이키케 도심 슬럼가에 위치한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주택으로 2004년 칠레 도심을 30년간 불법 점거한 빈민들을 위해 고안됐다. 그는 도시의 비싼 땅값과 제한된 정부 지원금을 고려해 1채에 900만 원이라는 저렴한 비용으로 집을 절반만 완성하는 해결책을 제시했으며 이를 빈민 100여 가구에 제공했다. 덕분에 10년이 지난 지금 주민들은 안정적으로 동네에 자리 잡고 살아가고 있다. 이 실험적인 칠레의 공공주택은 현재 멕시코를 포함 13개 도시 2,500가구로 퍼져갔다.
2. 반 시게루 (2014, 일본)
반 시게루는 종이 건축가로 통할 정도로 종이를 자유자재로 사용한다. 그는 종이로 만든 자재가 생각보다 단단하며, 어디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라는 점에 착안했다. 종이집은 얼핏 통나무 집처럼 보이지만, 기둥과 지붕 모두 종이 튜브를 사용해 지어졌다.
보통 종이로 된 건축물이라 하면 방수와 단열을 걱정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방수에 대한 해법은 이미 시중에 나와 있는 오렌지 주스나 우유 등이 담긴 종이팩을 떠올리면 쉽다. 또 단열은 건물 뼈대의 재료보다 건물 뼈대 사이, 벽에 무엇을 채워 넣느냐의 문제로 뼈대로 사용한 종이 튜브 사이에 다른 자재를 넣어 해결했다.
반 시게루가 이와 같은 종이 튜브로 처음 집을 지은 건 1994년 르완다 내전 때였다. 당시 그는 유엔난민기구(UNHCR)와 협업해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난민들을 위해 임시 거주지를 지었다. 이후 비영리단체를 설립해 20년 동안 일본을 비롯해 1999년 터키, 2001년 인도, 2004년 스리랑카, 2008년 중국 등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집을 짓고 있다. 그때마다 그는 전통적인 건축 재료에서 탈피하여 그 나라의 기후와 특성에 맞게 여러 재질의 종이를 섞어 튜브를 만들거나 대나무를 자재로 사용하는 등 과감한 도전을 이어오는 중이다.
3. 프라이 오토 (2015, 독일)
2015년 프리츠커상을 받은 독일의 건축가 프라이 오토는 생태 건축가로 불린다. 그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대표작은 1972년 지워진 뮌헨 올림픽 경기장이다. 건축물이 있는 공간은 경기장과 공원이 조화롭게 한데 어우러져 생태 공원으로 조성됐다.
경기장은 텐트 형태의 구조물로 이뤄져 있는데 여기에는 자연계의 신비가 숨어 있다. 자연계는 표면적을 가장 작게 하면서 가장 튼튼한 구조를 가지려는 성향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비눗물에 둥근 철사를 담갔다 꺼낼 때 생기는 ‘비누막’ 구조로, 프라이 오토는 이러한 성질을 이용해 최소 넓이로 매우 안정된 구조의 경기장 지붕을 지었다. 이 방식은 당시 혁신 그 자체로 평가받았으며, 오늘날도 대형 경기장이나 각종 구조물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문제를 고민하며 건축가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찾아 나선 프리츠커상 수상자를 살펴봤다. 이들은 저마다 서로 다른 문제와 해결책을 내놓았지만, 그 안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건물 그 자체의 미학보다 그 안에서 숨 쉬며 살아가는 사람과 공동체에 주목했다는 점이다.
프리츠커상의 역대 수상자들이 건축계에 중요한 흐름이 되어 큰 영향을 끼쳐 온 것처럼, 이들 역시 건축이 어떻게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images courtesy of 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
글. 이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