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명소로 재탄생한 다케오 시립 도서관의 비결
“오늘날 나를 만든 건 유년시절을 보낸 동네의 작은 도서관이다."
세계적인 기업가,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의 말이다. 그만큼 도서관 속 수많은 책은 한 사람의 인생에 영감을 불어 넣어주기에 충분하다. 도서관이 어디 사람만 변화시키랴. 도서관은 지역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빈부 격차가 극심한 영국 타워 햄리츠 구에 생긴 ‘아이디어 스토어’는 주민 누구나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며 지역 사회의 놀라운 변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국내 지역 사회 안에서 도서관 운영은 그 중요성에 비해 축소되고 입지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독서 인구가 줄어들면서 공공도서관은 이용률이 낮아지는 추세기 때문이다. 특히 연령대가 높을수록, 지방 공공도서관의 경우 이러한 양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관련 기사)
여기 비슷한 고민에서 출발해 변화를 넘어 혁신을 만든 지역 공공도서관이 있다. 바로 일본 사가(佐賀)현 다케오 시에 위치한 다케오 시립 도서관이다. 다케오 시립 도서관의 변화를 이끌어낸 배경에는 컬처 컨비니언스 클럽(이하 CCC) 최고경영자 ‘마스다 무네아키’가 있다. 그의 저서 <지적자본론>에는 다케오 시립도서관이 처한 문제 상황부터 해결방법이 자세히 정리되어 있다.
컬처 컨비니언스 클럽 마스다 무네아키 대표 |
일본 다케오 시는 인구 5만 명 정도의 지방 소도시다. 2012년 다케오 시민 중 약 20%만이 다케오 시립 도서관을 이용했다. 이에 다케오 히와타시 시장은 시민의 20%밖에 이용하지 않는 시설을 운영하기 위해 세금을 쏟아붓는 일은 시민 전체의 이익 측면에서 아깝다고 생각했다.
다케오 시장은 CCC의 최고경영자 마스타 무네아키를 찾아가 도서관 관리를 맡아 달라고 제안했다. 마스타 무네아키가 만든 츠타야 서점은 출판업계가 하락세임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변화를 시도하며 서점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런 노하우를 살려서 마스타 무네아키는 시립 도서관이 지역의 자랑스러운 자산으로 남을 수 있게 대대적인 변화를 실행했다. 이후 2013년 4월 다케오 시립 도서관은 새 옷으로 갈아입으며 재개관했다. 그 결과 13개월 만에 연간 이용자는 100만 명에 이르렀고 이 중 40만 명은 다른 지역에서 방문까지 할 정도다. 이처럼 다케오 시립 도서관의 놀라운 변화를 이끌어낸 비결은 무엇일까?
다케오 시립 도서관의 표본,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 |
1. 언제라도 찾아올 고객을 위해 영업시간을 늘리다
보통 사람들은 여유 시간이 생기면 친구를 만나거나 영화관을 가거나 피시방을 간다. 여기에 도서관은 보기에 들어 있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다. 다케오 시립도서관은 선택사항에 도서관이 들어가지 않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를 운영시간이라고 봤다. 그래서 시간이 생기면 ‘도서관에 갈 수 있다'는 선택의 여지를 만들 수 있도록 만들었다. 기존 10시에서 18시라는 개관 시간을 9시로 앞당기고 21시까지 연장했다. 그리고 연간 34일로 설정해 놓은 휴관일을 연중무휴로 바꾸었다.
2. 편안하게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다
다케오 시장 히와타시는 편안하게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형성되면 사람들이 모여 결집력이 생기면서 그곳 안에서 새로움이 탄생할 것이라고 여겼다. 이를 반영해 시민들이 편안함을 느끼도록 다케오 시립 도서관을 바꿨다. 온라인에는 없고, 물리적인 장소에만 있는 바람이나 빛을 활용한 환경을 조성했다. 최대한 채광을 이용하고, 숲 속의 도서관을 표방하며 도서관의 외관이나 인테리어에 변화를 줬다. 또 도서관 내 커피점을 입점시켜 커피를 음미하면서 오랜 시간 독서가 가능하도록 했다. 여기에 책뿐만 아니라 음악 소프트웨어나 영상 소프트웨어 대여 공간을 마련했고, 잡지를 포함한 서적을 판매하는 서점도 함께 배치했다. 도서관이라는 한 공간에서 시민들이 편안하게 오랜 시간 머무르면서 독서 이외 문화 활동으로 여가를 보낼 수 있도록 했다.
3. 책으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다
다케오 시립 도서관의 장서 분류와 진열 방식의 변화는 가장 어려우면서 큰 개혁이었다. 기존에는 ‘일본 십진분류법'을 기준으로 장서를 관리했다. 이 방식은 동네 도서관을 떠올리면 쉽다. 만약 역사 분야를 ‘2’라는 숫자로 분류한다면 일본 역사는 ‘1’을 붙여 ‘21’이 되고, 한국 역사는 ‘2’를 붙여 ‘22’가 되는 거다. 하지만 이 방식은 1928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급변하는 현대 사회 라이프 스타일과 동떨어져 있었다. 이대로 그냥 둘 순 없었다.
다케오 시립 도서관은 현실 생활과 밀접한 ‘22종 분류법'을 도입했다. 이는 CCC가 직접 만든 것으로 책 내용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책이 어떤 독자들을 대상으로 쓰였는지 좀 더 세밀하게 파악해 분류하는 방식이다. 이런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약 18만여 권의 도서를 시내 체육관으로 모두 옮겨 내용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새롭게 분류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사서는 장서를 진열하는 방식도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객이 원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하며 그들에게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했다. 그래서 시립도서관 사서는 재단장 후 접객 담당자로 그 역할이 변했다. 또 일부 책의 경우엔 서고에 저장돼 있어 고객이 요청하면 사서가 찾아 주는 폐가식이었는데 이를 개가식으로 바꿔 고객들이 언제라도 직접 책을 찾아볼 수 있게 진열했다.
새롭게 다시 태어난 다케오 시립도서관의 변화는 지역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도서관을 보기 위해 다케오시를 방문하는 사람이 늘어나 주변 숙박이나 식당까지 번화하게 됐다. 물론 도서관이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내기까지 변화에 대한 의심이나 반발도 많았다. 하지만 다케오 시립도서관은 ‘도서관은 이러해야 한다’는 기존 관습이나 선입견을 던져버리고 문제에만 집중했다. 시민의 발길이 끊긴 도서관에 주목하며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도서관을 찾아오게 할 수 있을까?’ 고객의 입장에서 고민했다. 해결책의 실행 가능성 여부를 미리 걱정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변화를 만들어 나갔다. 응당 그래왔던 것에서부터 의문을 품으며 문제를 찾아 정의하고 이를 바꿔나가는 것. 혁신은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
Images courtesy of CCC
에디터 이연주